나의 계절이 여름에서 멈춰 버렸다는 걸 가장 먼저 느꼈다
입국 직후 약 2주간의 생존기
한국을 떠나오던 날은 10월의 끝자락으로, 더웠던 날씨가 비로소 긴팔이 조금씩 어울려갔고, 아우터를 입기에는 무언가 조금은 습습하고 어색한 날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인천공항으로 떠나오던 새벽에는 제법 서늘했던 공기가 기억나지만 말이다.
나는 언제나 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했다. 일 년의 모든 행복하고 신나는 일은 완연한 봄부터, 초여름으로 들어갈 쯤부터 생기기 시작했고 여름의 정중앙에 들어설 때쯤 그 절정을 선보였다. 그러다가 더위가 꺾이고 '정말 딱 좋은 날씨야'라고 느끼는 선선한 가을을 더도 말고 덜도 아닌 딱 2주를 만끽하다가 곧바로 몰려드는 추위와 함께 긴긴 겨울을 보내며 따뜻했던 날들의 추억을 곱씹으며 보내는 게 나의 사계절이었다.
에어아시아 항공기를 타고 쿠알라룸푸르 KLIA2에 내렸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동남아 특유의 습한 공기의 냄새, 나를 감싸는 뜨거운 열기, 그리고 여름에 어울리는 뭉게구름 가득한 청명한 하늘이었다. 그토록 내가 좋아하는 계절 여름을 다시 만났지만 동시에 그 여름은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는 여름이었다.
게임 메이플스토리에는 유저의 반대편인 악의 편에 선 군단장들 중 하나인 '루시드'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루시드는 환상을 펼쳐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능력을 기반으로 영원히 축제와 노래가 끝나지 않는 '꿈의 도시 레헬른'이라는 곳을 만들어낸다. 레헬른의 사람들은 매일 매 순간마다 계속 춤추고 노래해야만 하며 영원히 쉴 수 없는 운명이다. 이곳의 여름은 어쩌면 나에게 그 레헬른과 같은 여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공항에서 그랩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로 들어오면서 잠시 해보았다.
바르셀로나에서 한번 짐이 오지 않았던 경험 있어 트라우마가 늘 있었지만 이번에는 탈 없이 위탁했던 짐을 무사히 찾았다. 그 와중에 핸드폰 유심칩도 개통시키고, 그랩 택시도 무사히 잡아서 회사가 있는 동네인 브릭필드(Brickfield)라는 곳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랩에 불렀던 차가 하필이면 우리나라의 모닝 같은 작은 차였는데, 거대한 내 캐리어 가방 두 개를 어렵게 어렵게 집어삼킨 채로 달리고 있던 모습이 마치 한동안 이곳에서 지내게 될 내 모습을 예고하는 것만 같아 퍽이나 우스웠다.
브릭필드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2주였다. 이 2주 동안 해야 하는 일은 회사에 무사히 합류하여 트레이닝 세션들을 이수하여 무사히 소속 예정인 팀에 최종 합류하여 업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이 시간 동안 내가 이곳에서 살게 될 집을 구해야만 했다.
다민족 국가임과 동시에 다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인 말레이시아는 크게 세 개의 민족이 주를 이룬다. 말레이-말레이와 말레이-인디아, 그리고 화교라고 일컫는 말레이-차이니즈가 그들이다. 그리고 브릭필드는 그중에서도 말레이-인디언들의 모여사는 동네였고, 아마도 한국인 정서와는 가장 이질감이 심할 수밖에 없는 동네일 것이라고 감히 한국인의 시선에서 이야기해본다. 인도의 축소판과 같은 동네라고 보면 될 것이니,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것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겨본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트레이닝 기간은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 기간 동안 계속해서 중간 점검 개념의 시험들을 수행했고, 마지막 최종 평가에서 특정 점수 이상을 맞아야만 정식으로 업무를 보는 팀에 합류가 가능했다. 즉, 다시 말해 시험을 '죽을 쑤어버린다면' 최악의 경우 회사에 공식 합류가 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무사히 통과 후에 다시 뒤돌아 회상했을 때 그렇게까지 걱정할 일은 아니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꽤나 무거운 중압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그대로 한국에 돌아갈 수는 없었으니까, 불과 떠나온 지 2주 만에 작별했던 모두에게 '나 결국 그냥 돌아오게 됐어'라며 멋쩍은 표정을 애써지어 보여 야만 하는 나 자신을 떠올리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모든 중압감을 짊어지면서 동시에 '내 삶의 전반을 책임지는' 집이라는 중요한 이슈를 해결하는 것은 마냥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각 동네별로 치안, 상권, 주를 이루는 사람들의 특징들을 조사해야 했고 그 동네에 있는 집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돌아보며 점검해야 했다. 그 와중에 매물로 나온 집도 정말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부동산 중개인들에게 매물 별로 일일이 연락하고 이미 나간 매물들을 소거하며 보러 다니는 게 꽤나 고역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해연도에 외노자들이 182일을 채워야만, 이곳의 거주자 자격을 획득한다는 조항 때문에 대부분 12월에 빈 집 매물들이 많이 풀리고, 새로 계약을 한다고)
이런 극 초반부의 이야기에 사진이 많지 않고 글이 좀 더 빼곡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첫 2주의 압박감이 생각보다 무겁게 다가왔으며, 이 모든 위기를 이제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오롯이 헤쳐나가야만 했다. 막막한 감정이 앞섰지만, 이러한 서사 또한 어쩌면 이곳으로 오게 된 의미 그 자체였다. 대학교 시절 교환학생 신분으로 스페인에 있을 때는 '제법 어른 같다고 생각했었지만 여전히 애 같았던' 시기였고, 그 이후의 한국에서의 나는 그때보다는 노련해졌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마음속 심지가 약한 것이 아닐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고, 이곳에서는 내 앞에 놓인 모든 '막막함'들을 극복해 나가면서 더욱더 강해져 가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때 처음 했다.
굳이 스스로 발을 떼어 사지로 들어갈 이유도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서사이자 결론임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알고도 그 길을 향해 발을 떼어야만 했다. 그 생각과 결심을 하는 것이 바로 이 낯선 땅에서 내가 첫 번째로 마음속에 새겨 넣었던 결심이었고 나를 지탱하는 의지의 씨앗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