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던 일상을 여기에서 한 조각씩 차례로 다시 맞춰간다
한국의 나에겐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발품을 팔았던 덕에 입주한 집은 '나의 기준에서는 꽤나 괜찮다'였고, 이곳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면 나쁘진 않아요' 정도의 이야기를 할만한 집이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테라스의 좌중간으로 캄펑바루와 초우킷 시장이 보이는 뷰였고, 오른편으로는 빌딩숲 사이로 살로마 링크라는 다리와 KLCC가 부분적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나름 정 붙인 집이라고 팀 합류 이후로 고정 오프인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느지막한 아침에 늦잠을 잘 때면,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맞으며 꽤나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이곳에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퍼즐을 맞췄다.
집을 구하고 나서 가장 먼저 머릿속에 생각난 것은 나만의 부엌을 구축하고 내 입맛대로 요리를 하는 일이었다. 이케아에서 각종 집기류와 필요한 생필품들, 그리고 침구류까지 몽땅 사가지고 오니 어마어마한 길이에 약 800링깃이 넘는, 한화로 약 24만 원 정도의 가격이 찍혀 있었다.
"도대체 말레이시아 물가 싸다고 누가 그래?"
혼자서 투덜거리던 시간은, 이케아에서의 큰 드잡이질에 이어 다시 한번 마트에 가서 식재료까지 약 250링깃어치의 장을 시원하게 보고 온 영수증을 바라보고 있을 때쯤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부엌이 온기를 잃지 않은 채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광경이었지만 그 조차도 크나큰 위안과 힘이 된다. 더 이상 바깥의 낯선 밥에만 의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사실. 온전히 나의 통제권이 딸린 부엌을 갖게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삶을 구축하는 아주 크나큰 퍼즐 한 조각이었다.
부엌을 한바탕 대청소하고, 원했던 것들로 채워 넣고 나니 그다음에는 한국에서 박스 채 들고 온 맥미니 컴퓨터를 스테이션으로 구축할 차례였다. 집주인이 넣어준 책상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지만, 야구의 김성근 감독이 남긴 명언, '언제나 주어진 것에서의 최선을 뽑아낸다'는 일념으로 접근해야지 어쩌겠는가. 마음에는 썩 들지 않지만 어쨌든 침구류의 세팅과 그 맞은편 벽 쪽에 워크스테이션도 함께 완성한다. 나의 유튜브 머신과 사진, 글쓰기 작업을 함께하게 될 자리가 될 것이었다.
집안의 대부분 급한 것들을 정리하고 나니 그다음은 한국을 떠나온 후에 약 한 달 반이 되도록 운동을 못하고 있던 나 자신의 근성장을 위한 헬스장을 찾는 일이었다. 그냥 집 가까운 헬스장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속된 말로 '헬창'인 이들에게 헬스장을 고르는 일은 마치 여성들이 자신의 주력 화장품 라인을 고르는 것 이상으로 매우 섬세하고 디테일한 고려가 필요하다.
KLCC 주변의 모든 헬스장들을 아마 한 번씩은 다 가보고 일일권도 몇 번씩 끊어보며 고민했고, 나의 선택은 라라포트라는 쇼핑몰에 있는 이 헬스장이었다. 물론 20% 정도 아쉬운 헬스장이었지만 한국에 있는 헬스장들과 비교해도 이 정도면 중급 이상의 수준이라고 할만했다. 기존에 진행하던 루틴을 그렇게 이곳에서 다시 이어간다. 회사에서 퇴근 후, 헬스장에 들려,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집으로 가는 하루 동선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대략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시 모노레일에 오르는 길에는 부킷빈탕을 꼭 고가도로 위에서 바라보며 지나게 된다. 항상 지나는 번화가이면서도 아직 저곳의 모든 구석구석을 다 가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는데, 늘 해오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과, 늘 주어진 시간을 소중이 대하자는 생각을 이 뷰를 지나칠 때마다 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후다닥 저녁을 챙겨 먹고 나면 하루에 다섯 번 울리는 모스크의 기도 소리 중에 마지막 기도소리가 들려오고, 남은 집안일을 해치우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눈앞이다. 지루한 하루 같지만, 그러한 일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곳에서 겪을 수 있는 놀라운 일들에 대한 가능성 또한 열어두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한국에 살 때보다는 꽤나 근사한 야경과 함께 살고 있잖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 작은 것에 행복을 찾고,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없어지니 하나하나가 저 멀리 흩어진 퍼즐 조각이 되어버려 그것들을 하나하나 차례로 찾아가며 맞추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한국에서 익숙함에 젖어 있던 나 자신이 하나하나 더 강해져 가는 시간들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느린 듯하지만 제법 빠르게 이곳 쿠알라룸푸르의 시계는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