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함 그 와중 속에서도 놓치지 않은 기록들
필름 속에 있던 건 첫 2주간의 내 모습과 생각의 뒤엉킴이었다
쿠알라룸푸르에 온 직후의 시간들은 새로운 세계와 만난 설렘과 낭만이 아닌 치열한 생존과 낯선 감정과의 싸움으로 요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교환학생이나 여행과 같은 '일시적인 시간'과 이곳에서 '살아남고 버텨야'하는 것의 차이였다. 그럼에도 사진가로서의 자아는 죽지 않았으나, 현실 세계의 나 자신과 빠르게 그 모습을 그때그때 바꾸었다.
마케터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 중에 '멀티 페르소나'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사람을 대표하는 모습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대변된다는 것인데, 나의 경우에는 여행자, 사진가, 커피 애호가, 글쓴이 등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멀티 페르소나가 꽤나 많다고 자부하며 살았지만, 어쩌면 나는 말레이시아에 들어오고 난 이후 그 조차도 모두 잃어버린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즉, 하나하나 다시 되찾아야 할 것은 집을 이루는 살림살이나, 일상의 루틴이 아닌 나라는 사람 그 자신도 포함이었던 것이다.
필름 초반부에는 회사가 있는 NU Sentral 주변이 찍혀 있었다. 아마 저 날의 하늘과 날씨가 유독 마음에 들었기에 내가 그것을 찍으려 했을 것이다. 또한 임시 숙소였던 호텔 유리문으로 스며들어오던 채광과, 객실의 낡은 나무문을 열면 근사한 뷰는 아니지만 바쁘고 지저분한 이 동네의 뷰가 나오던 모습이 있었다. 필름으로 날리기엔 평범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기록의 퀄리티를 떠나 그 순간의 감정과 공기를 기억하게 해 준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던 사진들이었다.
나는 명부와 암부의 극명한 대비를 사실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사진가들에 비해서 그렇게까지 '기막히게 잘 쓴다'의 느낌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걸 '그럼에도 해야겠다'라고 의식하고 있었다. 그걸 가장 잘 보여준 사진이 라라포트의 철창 사이로 찍은 이 역광 사진이었다. 철창 프레임의 암부를 그대로 포기해 버리고, 바깥의 풍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이곳에서의 내 삶도 '무엇에 집중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내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 고민들과 뒤엉켜, 이후의 내 사진들은 동선이 일관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가 뒤엉켜 있었다. 말레이시아 입국 후 2주 동안 집 구하겠다고 나름의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의 발자국들이었다. 어느 정도 도시 사정에 밝아진 지금에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진에 상당수 찍혀 있는 Bangsar South 지역은 그때는 참 매력적인 동네라고 느꼈는데 지금 내 시선에서는 아마도 지금 집에서 이사를 가더라도 절대 갈 일 없을 동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근처에 좋은 헬스장이 없어서가 이유였다)
그 이후 필름 막바지까지 내려가서야, 비로소 현재 집 주변인 Dang Wangi 지역을 산책하며 찍었던 어느 날씨 좋던 날의 사진들이 보였다. 아마 그 시점쯤까지나 되어서야 비로소 집을 구하고, 집 주변을 느긋하게 산책하거나 인근 마트까지 천천히 걸어가 장을 봐오곤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첫 필름 한골을 다 찍는 데에만 꼬박 3~4주가 걸렸다는 것이기도 했다. 평소 필름 한롤을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찍어내는 내 성향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곳에서는 스스로가 정해놓았던 그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규정하던 일들에 대해 내려놓거나, 재정의 하거나, 일종의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아는 법을 위한 연습 등이 이때쯤부터 필요했다. 그것이 이곳에서 첫 2주를 바쁘게 뛰어다니던 내가 마음속에 새기고 배웠던 가장 첫 번째 교훈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만 머물던 나의 인생의 흐름이 크게 한번 물길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