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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Apr 25. 2022

첫 순간의 기억은 봄이었다

대숲사진가의 가장 오랜 동행 '김콩'과의 첫 촬영

인물 스냅 촬영을 처음 시작한 것은 2017년이었다. 2022년인 올해를 이미 '라스트댄스'로 규정하였지만, 올해까지만 해도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요즘 많이들 쓰는 속된 말로 '고일대로 고여버린 고인물'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숲사진가라는 호칭을 처음 쓰게 된 것은 모교의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에서 잘 나온 학교 풍경 사진들을 제보 하면서 올리며 쓴 닉네임이었다. 이후에 정말 감사하게도 모교의 일부 사람들이 대숲사진가라는 사람이 학교 사진 찍고 다니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그 이름을 후에 그대로 들고 나와 나의 개인 프로젝트에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2017년에 대숲사진가라는 나의 프로젝트는 세상에 던져졌지만, 사실 2017년도 첫 해의 촬영물들은 유일하게 난 지금까지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나 명료했는데, 열심히 힘을 줘보겠다고 용써보았지만 어딘가 엉성하고 어색했다. 지금의 내가 보고 있자니 그 때의 나에겐 저게 최선이었겠거니 싶지만서도 결과물은 참으로 내가 봐도 민망하다. 2017년에 다녀간 분들이 만약에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정말 다시 한번씩 찍어 드리고 싶다고 느낄 정도다.




그렇게 조금은 성숙한 2018년의 대숲사진가는 그 해의 봄에 김콩으로부터 처음으로 문의를 받게 되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느끼는 부분이지만 김콩 특유의 말투와 성향이 있는데, 자신감과 확신에 가득차고도 똑 떨어지는 말들이다. 본인이 무엇을 원하며 또 그 것을 실행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매사에 잘 알고 있는 듯한 그런 똑부러짐이었는데, 첫 인상부터 지금까지 이 대목은 변함이 없없다. '컬러 프로파일 보정까지만 해서 주면 나머지 리퀴파이 (피사체의 라인을 정리 하는, 요즘 속된 말로 '돌려깎기')는 본인이 직접 하고 싶다' 라는 요청도 6년간 대숲사진가를 하면서도 김콩이 유일했다. 덕분에 난 촬영하고 색감만 만져서 넘겨주고 기다리면 됐었으니 언제나 일말의 마음 속 편안함이 존재 하곤 했다.


이 날 작업에 나름 큰 각오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컷들은 필름으로 한 장 한 장 눌러담듯 찍었다. 필름은 이제는 구하기도 어려워진 월그린 필름으로 찍어 보았다.


김콩과 나는 취향이 큰 갈래에서는 비슷했고, 디테일에서 조금씩 갈리곤 했다. 하지만 대체로 인물 사진 쪽에서는 취향이 비슷해서 기획 단계에서 서로 무던하게 지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봄이라는 계절은 또 그런 계절이기도 했다. 겨울에 움츠러들었던 나날들 만큼에 상응하는 밝음과 화사함을 찾는 계절이었다. 자연 배경에서 완연한 봄꽃과 함께 담아내는 순간들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기획이었지만 그것은 가장 쉽고도 간단한 의견 합치였다. 


그 시절의 내 음악 플레이리스트들을 떠올려 보면 순수함, 밝음, 청순 정도의 이미지 일변도였던 기억이 난다. 볼빨간사춘기의 <우주를 줄게>라거나 여자친구의 <너 그리고 나> 같은 노래들이 플레이리스트에 주로 존재했으니, 당연히 가장 최근의 관심사들이 촬영 기획과 이미징에 많이 반영 되곤 했다. 모델의 이미지와 캐릭터에 맞게 그 것을 녹여내는 것에 대한 궁리는 그 때부터 나의 몫이 된다.


은은하게 퍼져가는 듯한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이 또한 봄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친구의 이미지는 내 플레이리스트와 같은 봄과는 살짝 다른 이미지였다고 현장의 첫 인상에서 생각했다. 지금도 농담처럼 이야기 하는 소재인데, 굉장히 차갑다고도 느껴지는 첫 인상이었다. 화사하고 해맑은 이미지보다는 좀 더 차분하고도 은은한 이미지로 비춰졌는데,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나갈수록 막 만개를 보여내는 화사한 봄꽃 보다는 봄날의 따뜻한 공기에 눈들이 서서히 녹아 내려가는 듯한 그런 이미지였다. 내가 생각한 그 완연하고도 전형적인 봄은 아니었지만 그게 김콩만의 봄이 주는 이미지이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다만 그 덕에 나는 촬영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적 거리감을 좁혀 나가는 촬영을 선호하는데, 그때는 김콩의 다소 차갑다고도 느꼈던 인상이 어렵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반대 시점에서 낯가림이 심했던 이 친구도 그 때는 촬영 때 리액션이 굉장히 큰 대숲사진가가 그렇게 부담스러웠단다. (나중에는 적응하고 나니까 오히려 '그 리액션'이 안나오면 좀 아쉬웠다고) 그런데 또 그게 김콩의 가장 큰 강점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자신이 무얼 해야 가장 잘 해낼 수 있고 성공적으로 산출물을 낼 수 있는지를 안다. 그리고 잘 해낸다. 이 강점은 후에 사진 뿐 아니라 커리어와 업무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닿았던 시간들 속에서도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지금 시점에 와서는 솔직하고 무던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대숲사진가는 늘 사람이 끊임 없이 붐비던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또한 인물 사진을 하면서 모든 포토들이 부딛히는 고민의 장벽이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사진'과 현실적인 관점에서의 '내가 할 수 있는 사진' 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 대목에서 '내가 하고 싶은 사진'을 위한 모험을 현실과 타협해가며 계속 해오던 대숲사진가에게 김콩은 지금까지도 고마운 친구이다. 서로가 같이 내놓을 수 있는 산출물이 각자의 취향에 통했다는 그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포토와 모델로서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고, 이후에도 함께 많은 촬영을 하며 영감과 긍정적인 영향들을 얻곤 했다. 대숲사진가는 그렇게 '하고 싶은 사진'을 이어오는데에 필요한 동력을 만날 수 있었다. 많은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던, 2018년의 봄이었다.




그때는 내가 생각한 봄하고 묘하게 달랐다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다시 회상해보니 봄이었다 여러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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