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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May 01. 2022

오래 볼수록 진가를 알게 된다

또 다른 오랜 동행자 '신다짤'과의 만남

신다짤로부터 처음 대숲사진가가 문의를 받았던 것은 꽤 오래 전 이야기였다는 기억이 또렷하다. 사람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는 내 눈썰미 덕분이었다. 대숲사진가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던 2017년 여름, 신다짤로부터 오픈 채팅방에서 문의를 받았었으나 이내 기약 없이 사라졌었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으로부터 이번엔 개인 촬영을 하고 싶다고 문의가 왔던 것이다. 날씨가 더움에서 서늘함으로 바뀌어갈 즈음의 경계의 계절이었다.


대숲사진가를 하면서 가장 감사한 부분들이 있다. 한번을 찾아오면, 포토와 모델의 일적인 관계이다. 두번을 찾아오면 그 때부터는 '지인'이라고 생각한다. 세번째부터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숲사진가를 해오는 동안 사진세계관과 얽힌 나의 인간관계는 '친구'와 '사진 작업 같이 했던 분' 사이에서의 모호함으로도 통한다. 하지만 그만큼 대숲사진가의 사진을 믿고 다시, 그리고 또 와주심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 중에서도 김콩과 더불어 신다짤은 지금은 '오랜 친구'이다. 사진과 일상 속에서 미처 내가 보지 못했거나, 조급함에 간과 하던 것들을 특유의 넉살 좋음으로 짚어주곤 한다. 


2018년의 나는 회사 생활에 정말이지 치이며 산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때였다. 그러다가 기분 전환 겸 부산여행을 주말에 잡게 되었는데, 그 부산여행의 출발 하루 전날 저녁이 신다짤과의 촬영 약속 날이었다. 그래서 지금 회상해보자니 좀 부끄럽고 미안한 이야기인데 '너무 진 다 빼지 말고 들어가서 여행 짐 싸자' 라는 생각을 시작 전에는 잠깐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진짜 힘 다 빼고 작업한건 아니었단다. 오해하지 말아줘.


가장 처음의 그 때 스물한살이었던 신다짤은 이제까지 봤던 사람들 중에서도 정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저녁 시간의 녹사평역 앞에서 만나서 사진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대로변 육교에서 첫샷을 날리는데, 예나 지금이나 이 친구는 "일단 하고 보시죠" 라는 자세이다. 그래서 이 날 컨셉도 별 다른 테마는 따로 없었구 "그냥 스물한살의 나를 기록하고 싶어요."가 곧 이 날의 주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나긴 동행의 또 다른 한 갈래의 시작이었다.


"처음에 본 신다짤은 학생회 열심히 하는 '좀 놀 줄 아는 선배' 같은 인상이었다."

훗날의 신다짤은 이 날 처음 봤던 나에 대해 '다소 딱딱한 인상' 정도로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완벽하게 헛짚었다.) 반대로 이 쪽도 완벽하게 헛짚었는데, 신다짤의 엄청난 텐션과 시원시원한 수용력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과에서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굉장히 좀 잘 노는데 두번째 가라면 서러운 선배' 정도의 이미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날의 촬영에 그게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소위 말하는 '아싸'였던 내게는 주변에서 흔하게 겪어보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웃으면 파하하 하고 웃는다'라면서 웃는 연기보다는 다소 여유 넘치는 표정 연기로 변하는 것도 일상 속 본연의 캐릭터와 간극이 처음에는 매우 크게 다가왔다.


당시의 나는 한장 한장을 매우 신중하게 찍는 편이었는데, 밤에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더더욱 그러한 성향을 보였다. 밤에는 카메라 기기 자체도 AF가 느려지고 신중해지는 시간이 됨도 한몫했다. 그래서 자세나 연기가 굉장히 휙휙 지나가는 편이었던 신다짤의 템포에 맞추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거침 없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로부터 긍정적인 힘을 보았다. 기운이 없는 모델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보다는 오히려 함께 포르티시모의 상태가 되는 것이 낫고 훨씬 쉬운 일이라고 난 지금도 믿는다.


신다짤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수년전 녹사평의 저녁에서의 나와 같이 첫 인상의 마냥 밝은 모습만 보게 된다. 하지만 꽤 긴 시간을 겪어보고 난 이후에는, 밝은 에너지 뒤에 숨겨진 이 친구의 또 다른 번득임과 책임감, 승부욕 등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기회가 닿아 커리어를 함께 하기도 했던 이후의 시간상에서는 비교적 걱정이 많은 성격인 나에게 있어 나와는 다른 관점의 것들을 많이 내놓기도 하여 새로운 시야를 제시해주기도 하였다.


세상은 한 눈에 곧 바로 알아보는 존재들도 있었지만 반면에 오래 겪어야만 숨겨진 진가를 볼 수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이 촬영 이후에 신다짤과 더 많은 작업들을 하면서, 이 친구의 캐릭터 분석도 나름대로 해보고 그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거쳐온 시간들의 가장 첫번째 시작점이었던 이태원과 해방촌의 밤에서 대숲사진가는 이후의 거대한 탑이 될 또 한 채의 이야기들의 초석을 쌓았다. 


사진과 실제 일상 캐릭터에서의 표정이 완전 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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