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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Jun 27. 2022

나의 '라스트 솔져'에게

훈 전역 D-3

“우리의 최후의 군인이 마지막 순간만을 남겨두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훈이와 우리가 걸어온 길은 독특하고 많은 부분들이 달랐다. 나와 탁과 익스타는 ‘남들  한다는전공과 복수전공 수업들을 들으며 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의 길을 갔다. 모두가 으레   밖에 없는 ‘경제 활동 인구로서 거듭나고 스스로의 앞가림을 하기 위함이었다. 남들에게 당당하게 나의 목소리를   있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이어갈  있는 힘을 갖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 그리고 때로는 싫은 일도 해야하며 결론이 뻔히 보이더라도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가 사회인으로서 걸어가며 느끼게 되는 점들이다. 그에 반해 훈이는, 식품생명공학과를 공부하며 동시에 글에도 관심이 많아 문창과를 복수 전공 하는, 어찌 보면 ‘ 둘이 어찌 양립하고 공존하나싶은 일들을 학생  이루어 냈다. 그러더니 뒤늦은 군생활을 돌연 ROTC 길을 선언하며 형들이 모두 사회인으로서  몸부림 치고 있을  혼자 군대로 떠났다. , 익스타, 탁과 훈이는 넷이 계속 사이를 유지해 왔고 모일  있는  최대한 자주 시간을 함께 하며 서로의 처지에 대해 무감할 때가  많지만 훈이가 혼자 특별한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이따금씩 느끼곤 했다.


곧 군복을 벗겠구나.

훈이는 적어도 나에게는 ‘최후의 군인’ 이다.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이제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모두 군대를 다녀왔거나, 가지 않았거나 등이 다수이다.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주변 사람들도 함께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망각했다가 놀랄 때가 많지만, 이번에도 또 그렇게 한번 놀라면서 나의 ‘최후의 군인’이 곧 군생활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나도 함께 자각하고 있었다. 내 달력에도 표시 해두었던 전역 날짜가 캘린더 앱의 손가락 한두번 정도의 스크롤 간격 이내로 좁혀져 올 때쯤에 훈이가 넷이 있던 단톡방에 자신의 제복 입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부탁을 해왔다.


“가까이서 날아드는 부탁일수록 어찌 받아 들고 풀어갈지 고민이 많다.”


한창 대숲사진가 스냅 촬영을 할 때의 내가 가장 슬펐던 순간은 ‘나만 즐겁다’ 라고 느낄 때였다. 나만 신나고, 열정적으로 기획하고 촬영에 임할 때 분명 그만큼의 등가교환이 어려웠던 방문자들도 있었다. 어릴 때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렇게 아쉽다고 느낄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도리가 나에게 “남다른 너의 텐션을 다 따라가는 사람이 이상한 거다.”라는 말을 해준 이후에는 그냥 ‘그런 사람들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동행자의 발걸음에 맞춰갈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가까운 사람이 부탁을 해오면 ‘그래도 가까운 사람일 수록 최선을 다하는게 도리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부탁을 받고 촬영을 돕는 것보다도 ‘어떻게 행하느냐’에 대한 무게감을 많이 고민했다. 물론 훈이는 거창한것이나 꾸밈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결국 ‘라스트 솔져’가 원한대로 전쟁기념관에서 제복 입은 채, 그가 원하는 씬들을 중점적으로 찍기로 했다. 원하는 장면들은 대충 : 모자 던지는 장면,  전쟁기념관 석조 건물 배경, 거수 경례 사진 정도였다. 언제나 걱정은 많았지만 결국 끝을 보지 않은 적은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늘 그렇듯 '가보자고' 를 외쳤다.




덕분에 전날 저녁부터 우리 넷이 오랜만에   하며 회동도 했고, 나도 ‘누군가를 찍어주는사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훈이를 알고 지낸 것이 6 정도가 되었고, 녀석의 군생활도 2 6개월이 되어 가고 있었지만  제복 입은 훈이의 모습을   촬영 준비를 하면서 처음 봤다. 훈이의 인상은 우직하도 단단한 모습인데, 그런 모습과 제복 특유의 듬직한 이미지가 어우러져 견고한 이미지를 주었다. 촬영 직전부터 예감이 나쁘지 않았다. 나 뿐만 아니라 익스타와 탁도 각자의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일시에 우르르 달려들며 우리의 라스트 솔져를 위한 예우를 힘껏 다 할 심산이었다.


훈이 시점에서 보이던 우리.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자기만 찍어대니 퍽 웃긴 광경이었을 것이다.


사실 난 훈이와 촬영을 해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의 가능성을 무시한 것이 아닌, 같이 해볼 기회 자체가 없었고 한때 자주 하고 싶어하던 주제의 인물 사진들이 훈이와는 ‘제법 맞지 않는 옷’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사진 욕심이 딱히 없는 훈이도 굳이 나를 부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실 훈이가 카메라 자체를 무서워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을 촬영 전에 많이 했던 것 같다. 포토나 모델이나 현장에서 긴장하고 얼어버리면 사실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존재하고 지난 바 능력과 잠재력이 있음에도 그 것들을 해를 가려버리는 먹구름처럼 숨겨버린다. 나 같은 경우는 그래서 촬영 초반부에는 중요한 씬들을 많이 넣지 않는다. 가볍게 툭툭 치면서 시작하고, 카메라 렌즈도 정면으로 아이컨택을 지시하지도 않는다.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간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며 평정심들을 꼬이게 할 것이다. 그리고 한번 삐그덕거리는 순간 겉잡을 수 없게 된다.


촬영 오프닝 컷들인데, 제법 표정에 여유가 있다. 이 때 본인은 긴장 많이 했단다.


그런데, 훈이가 제법 긴장을 하지 않는다. 촬영의 첫번째 컷부터 ‘제법 나쁘지 않다’ 라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이내 또 이 분위기에 적응을 했고 여유까지도 보여준다. 오프닝 컷에서 몇가지 자주 사용하는 구도들을 사용하며 탐색전을 시작한다. 제법 잘 해내고 있다는 말들도 잊지 않았다. 어차피 모델이 긴장하는 초반부에는 설령 모델이 정말 나의 기획 의도대로 수행해주지 못하더라도 액면 그대로 못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는게 나의 중론이다. 말하는대로 가버린다고, 잘한 것 위주로 찝어서 이야기 해주고 잘한다고 말해줘야 계속해서 상승세 흐름을 타고 '해피엔딩'으로 가는 것이다. 한 마디 말이 주는 힘은 그만큼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 촬영날이 낀 주말 내내 훈이는 우리들에게 '회사 다니는 형들이 정말 대단해요.' 라고 말을 했다. 자신은 도저히 사회에 뛰어들고 어느 새로운 한 조직의 구성원이 된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온몸으로 표현한 것이다. 끝자락에 다다른 라스트 솔져에게는 이제 더 이상의 상부의 명령이나 지시가 내려오지 않는다. 이제 오로지 스스로의 지휘통제실에서 모든 작전을 구상하고 홀로 돌격해야 하는 신세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니 그 두려움이 우리들 모두가 또한 사회라는 문턱을 막 들어서면서 느꼈던 '막연함의 미래'가 주는 두려움으로부터 기인하는 그 것이었다. 그냥 훈이에게도 응당 느낄 두려움의 시간이 다다른 것 뿐이다.


요즘에는 오히려 '평범하게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명제를 수용한 채 평범함을 위해 달려가는 우리와 달리 훈이가 가는 길은 조금은 더 독특하고 특별한 길이니까. 그 시간을 내 입장에서 규정하기 보다는 그저 그가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특별한 가능성이 앞으로 또 어떻게 우리 앞에 구현되어 나타날지를 더 기대가 간다는 생각을 촬영하며 가져보았다. 그 특별함이 펼쳐졌을 때 이 기록들을 다시 본다면 아마 또 이 날의 다짐과 처지에 대해 좀 더 가벼운 어조로 회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대숲사진가 하면서 본 것 중에 가장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웃음이라 생각한다.


그런 상념에 잠겨 사진을 찍고 있자니, 어느 새 훈이의 현장 적응력은 절정을 달리기 시작한다. 아, 정말 이 사진들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대숲사진가 촬영 하면서 '열연'을 하는 웃음과 '찐웃음'이 있는데 대체로 이 '찐웃음'이 담긴 사진들은 모델분들의 호불호가 꽤나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다. 너무 찐웃음은 헤프게 보인다라는 반응도 제법 많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모델과 포토 모두 동시에 만족한 이 장면은 정말 완벽한 그 자체이다. 난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촬영이 정말 완벽한 촬영이었다고 자평했다. 물론 훈이도 이 정도라면 내 기대를 넘어선 아주 훌륭한 모델 수행력이다.



촬영을 잘 마무리 한 채 집에 와서 사진들을 정리 하는 작업에서는 평소에 자주 쓰는 낮은 콘트라스트 (모델님들은 이걸 부드러운 질감, 소프트한 느낌 정도로 이야기 한다.)와 화사한 색감등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채도를 내리고 조금은 차분한 색감 일변도, 그리고 조금은 우직한 느낌을 주기 위해 선이 굵고 쎈 느낌을 주는 질감의 작업을 했는데, 그의 또 한번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점이 되는 이 순간에 대한 경건함을 자연스럽게 느끼면서 그렇게 작업을 하게 되었다.


훈이의 군생활은 이제 끝났다. 전역 이후에는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한동안은 그 곳에 머물 것이므로 우리와 자주 보기는 요원할 것이다. 그럼에도 또 다른 인생의 한 페이지를 맞이하며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과도 함께 시공간을 공유하며 좀 더 새롭게 발전해 있을 그의 모습을 그와 가까운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응원할 뿐. 그리고 다시 만날 날에 그런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그의 퇴장에 진심으로 축하를 건넨다.




내 서사에서는 이게 마지막 컷이다. 나의 라스트 솔져의 퇴장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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