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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Aug 09. 2022

조선의 밤은 지금 밝혀도 늦지 않다

윤윤과 동행한 경복궁 야간개장 촬영 이야기

가장 진부하고 오래된 소재이지만 좀 멋지고 세련된 촬영?


사람들을 찍어주는 프로젝트인 대숲사진가를 꽤나 긴 세월 동안 해왔었지만 그간 야간개장 시즌의 고궁에서 촬영을 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2022년의 연초에 대숲사진가 촬영 소재와 문의가 점점 드문드문 올 즈음에 윤윤에게 온 카톡을 받고서야 비로소 그 생각이 머릿속에 상기 되었다. 본인은 야간에 한복 입고 촬영하는 것이 자신의 꽤 높은 순위의 목표 중에 있었단다. 


이 촬영의 경우는 수락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이 테마에 대한 나의 생각과 히스토리들을 정리를 해볼 시간이 잠시 필요했다. 스스로에게도 '이 정도면 꽤나 한번쯤은 거쳐갈 법한 테마인데 왜 그간 내가 안했었나' 라는 질문 부터 던져보았다. 해답은 제법 간단했는데 이 촬영의 경우 우선 큰 키워드 2가지는 #한복 과 #야간스냅 으로 묶인다. 고궁과 같은 가장 한국적인 테마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야간의 고궁에서 한복을 입고 있는다는 비교적 간단한 명제 보다는 보다 복합적이면서 스토리가 들어간 촬영들을 그간 원해왔던 나였다. 그 산출물들이 광복절 또는 삼일절 특사 촬영이라는 타이틀 하에 말쑥한 정장에 태극기를 오브제로 사용했거나 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였던 서대문 형무소를 활용했던 일들이었다.


야간 스냅촬영은 사실 좋아하고 나름 자신도 있다. 다른 배경들에 더 끌렸을 뿐.

야간 스냅이라는 키워드로 한정지어 생각해도 야간의 분위기를 보다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배경들이 도시에는 매우 많았다. 테헤란로 한복판이 그랬고, 여의도의 빌딩숲 등이 그러했다. 해질녘의 한강 둔치도 그 분위기를 끼얹어 완성하기에는 차고 넘쳤다. 또한, 조명의 차이와 한복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인 차분한 색감도 큰 이유를 차지했다. 야경의 불빛에 한복위에 뿌려지면 한복 특유의 자연배경과 어우러지는 색의 조화가 부자연스러워지곤 한다. 야간 스냅도, 한국적인 테마의 한복 촬영도 나는 정말 좋아했지만 이렇게나 장황하게 써내려지는 이유들 덕분에 그간 고궁 야간 개장에서 한복 촬영은 늘 미뤄오기만 했던 것이다.


찍어야할 사람의 분위기를 내가 규정 해야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윤윤과 대숲사진가는 앞서 몇번의 작업들을 같이 하며 제법 친분이 있었다. 그런 친분으로 인해 작업 의뢰를 받기는 받았다만, 늘 되새기는 명제인 '가까울 수록 더 많이 고민하고 잘 해야한다.' 라는 명제가 그즈음부터 슬금슬금 나를 노려보며 감싸오기 시작한다. 가까운 사람일 수록 더 책임감을 느끼고 잘 해주어야 하는데, 이 사람의 이미지를 내가 마음대로 규정하고 그 것에 의거하여 촬영 기획을 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이 때부터 계속하여 날 따라다니는 것이다. 아무리 서로가 많은 대화를 통해 사전에 기획안을 도출 한다고는 하지만 그런 걱정은 늘 존재했다. 이 촬영과 관련하여 내가 평소 생각했던 윤윤의 이미지를 정리 해본 내용들은 아래와 같았다 :


1) 윤윤은 웃을 줄 모르거나 비정하기까지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분위기가 사뭇 차분하고 쉽사리 흥분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이 맞다. 마침 한복의 단아한 분위기가 모델과 어울린다고 보며 이러한 고유한 캐릭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색의 선택이 가장 최우선이라고 생각된다. 이 때문에 웜톤 계열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2) 현재 윤윤의 머리는 흑발이며 긴 생머리이다. 머리와의 매칭을 봐서라도 밝은 파스텔톤 보다는 명도가 어두운 배색의 한복을 고르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저고리는 좀 밝게 구분되어 보이게 하더라도, 전체적인 이미지의 인상을 결정짓는 치마는 반드시 그렇게 가야 할 것을 본다.
3) 조선 왕궁의 밤이라는 키워드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까? 조선은 흔히 '고요한 아침의 나라'이자 '고고한 선비들의 나라'로 자주 묘사 되곤 한다. 그렇다면 잔잔하고 차분한 이미지이면서도 밤의 분위기와 맞아야 하며 크게 튀는 것이 없는게 좋아보인다. 긴 머리를 묶거나 땋는 등의 머리 정리도 필요해 보인다.


한복이라는 소재는 가장 오래되고 진부한 소재지만 우스갯소리로도 꺼내는 엔틱하지만 촌스럽지 않은 결과물을 위해 나름의 고민을 했고, 결국 나는 윤윤에게 쿨톤의 한복 픽과 머리 장식에 좀 힘을 주기로 함께 합의를 봤다. 늘 그렇듯 준비를 나름 큰 틀에서 열심히 해두면, 나머지는 현장에서 즐기면서 약간의 재량들을 더해가며 해나가면 된다. 적어도 나의 방식은 늘 그러하다. 그렇게 우린 촬영날 경복궁으로 향했다.


야간 스냅은 '매직 아워'를 기준으로 극명하게 결과물이 갈리니 그 앞뒤로 모두 부지런 해야한다.


가장 클래식한 계열의 한복 중에서도 쿨톤의 한복을 선택한 것이 첫 씬에서부터 정말 아주 잘한 선택이라고 확신 할 수 있었다. 낮 시간대 햇빛의 각도별 이용과, 반사광, 주변 자연 환경들과 어우러졌을 때에는 퓨전 한복이나 개량 한복도 매우 좋은 선택이었고 그런 선택을 지금까지는 더 많이 했다. 하지만 역시 밤 시간대에는 밤에 어울리는 것을 선택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머리 장식의 선택도 훌륭해서 머리 장식이 도드라지는 앵글에서 초반에는 많이 담아보았다. 어둠이 구석구석 스며들은 처마와 건물 선들이 함께 그려내는 조화가 매우 훌륭하다. 


한복 하면 옷 그 자체가 그려내는 선의 아름다움을 최고라고 본다.

또 한복하면 역시 옷 한벌에 드러나는 선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분위기의 한복이지만 선의 아름다움은 마치 그 잔잔함 위에 파도가 치는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이 씬의 이미지를 연출 하기 위해 윤윤에게 옷 휘날리라는 요청을 5~6번씩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인도 고역이었을텐데, 아마 이 날 우리를 지나가며 곁눈질로 보던 사람들은 저 친구들이 뭘 하고 있는건가 싶었을 것이다.


물론 야간 스냅의 경우 촬영 현장에서 남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고 진행 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다. 해가 떨어지는 일몰 시간을 기준으로 앞뒤 30분씩 총 1시간의 매직아워 동안, 사진가는 완전히 땅거미가 질 때까지 부지런히 찍어야 하니까. 이 매직아워의 전후로 결과물과 분위기는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에 모든 시간대를 열심히 담아두는 것이 좋다. 흔히들 셀카를 100장 찍어서 2장 건진다는 다다익선의 이야기는 스냅 촬영에서도 통용 된다.


아래 두번째 이미지가 이번 촬영 최애컷이다.


매직아워가 모두 지나가고 나면 500년 사직의 조선 궁궐 안에는 완연한 어둠이 내리깔리고 불이 밝혀진다. 그리고 야경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 되어 간다. 경회루와 근정전, 붉이 밝혀진 궁 안 곳곳을 누비고 다닐 시간이다. 우리는 감히 알 수 없겠지만 그 시절의 경회루의 밤에 불을 밝혔다면 그 빛들을 가득 머금을 호수를 보며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라는 상상들로 촬영 중 동선들을 채워나갔다. 다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서도 펜스가 뷰를 가리는 것이 참 아쉽다. 이런 인위적인 요소들이 고궁의 경우 곳곳에서 정말 많이 프레임 안에 침범하게 되는데 이런 점들은 스냅 하면서 늘 아쉬운 대목이다. 지금 결과물들을 보면서도 아쉬움을 삼키게 된다.



궁안에 일부 구간에서는 과욕을 부리려다가 내가 스스로 내 발목을 잡고 말아버린 씬도 있었다. 빛이 정말 없는 구간에서 안일하게 일단 찍어 놓고 보정툴에서 노출 값을 좀 손봐야겠거니 했는데, 보정 관용도를 훨씬 벗어난 노출 언더였다. 아무리 그간 촬영에 대한 동기부여도 떨어져 있는 상태였지만 이런 단순한 실수를 하다니, 디지털 바디와 보정툴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안일함이 낳은 참극이었다. 디지털 바디 중에서도 좋은 기기에 오랫동안 길들여지게 되면 가끔 나오곤 하는 촌극인데, 이 씬의 3장들은 참 다시 많은 부분들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한국적이며, 그 소재는 현대에 와서 어떻게 재해석 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더욱 세련되어 보일 수 있다고 믿는다.

구석구석을 훑고 나와서 근정전에서 엔딩콜을 외쳤다. 비교적 최근 촬영이었던 이 날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촬영은 익숙함이 주는 진부함을 극복하는 여정이었다. 그간 많이 사용했던 한복과 고궁이라는 소재, 그리고 익숙한 모델 등의 요소들과 함께 '엔틱하지만 촌스럽지는 않은' 결과물을 내야 했던 촬영이었다. 그 시절 조선의 밤은 소란스럽거나 경망스럽지 않았으며, 흔들림 없는 고고함이라는 이미지를 세워두고 그 이미지 상의 조선의 밤을 다시 밝혀낼 수 있었다. 그러한 조선의 밤은 언제든 다시 밝혀질 수 있었으며 결코 늦지 않았다. 그 이미지 상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화력을 보여준 윤윤에게 다시 감사를 전한다. 




P.S

다만 이 촬영의 결과물에 대해 내 스스로에게는 75점 정도를 주기로 했는데, 이 점수의 기준에는 사실 모델이나 결과물 만을 보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요소들도 많이 숨어있다.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온전히 즐길 수 있었는가, 기획 단계에서도 내가 자가진단을 해도 제법 괜찮게 빌드업을 했는가, 그리고 방망이 깎는 노인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는 결과물에서의 기술적 요소들과 내 자신의 안일함에 대한 책망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해내갈 사진들과 그 외 매사에서도 임하는 내게 있어 한번 더 다짐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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