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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Oct 06. 2022

그 때 꿈만 같았던 그 도시에서 나

나의 플리를 그대로 테헤란로 위에서 담아냈던 촬영 

그 때 꿈만 같았던 그 도시에서 나 어쩌면 난 널 잊어버려야 할지도 몰라
"Take me back to Seattle" (볼빨간사춘기 - Sea

더움과 서늘함이 자리를 서로 바꿔가며 우리를 붙잡는 공기. 날씨가 요즈음이 되면 늘 생각나는 촬영이 하나 있다. 


나는 회사에서 노동요가 꼭 필요한 스타일인데, 그런 이유로 내 업무에만 집중 해야하는 타이밍에는 노래 들으면서 업무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의 근무지는 서울 강남 쪽이었고 사무실은 고층이어서 일하면서 가끔씩 곁눈질로 내다보는 바깥 뷰가 괜찮은 곳이었다. 가을 하늘과 도심 속 풍경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모습은 나에게는 때로는 조급함과, 다급함의 의미였다. 반바지와 긴팔 맨투맨이 가장 어울리는 날씨이지만, 일년 중 가장 짧게 머물다 가는 손님방의 방문객처럼 또 금방 훌쩍 떠나고 그 자리에는 어느 새 길고도 긴 추위가 날아들었다. 가을 하늘 역시 청명하기 그지 없이 아름다웠지만 여름철 뭉게구름이었던 구름들 역시 조각조각 흩어져 가을 하늘에 퍼져 있는 모습이 마치 '이제는 각자 갈 길을 가야할 시간' 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 시기와 처지의 나에게 가장 절정의 감성을 선사하던 노래 중 하나가 볼빨간사춘기의 Seatle Alone이라는 노래였다. 그룹명에 걸맞게 보다 옛날에는 우주를 줄 만큼 순수함을 부르고 때로는 심술을 내는 모습을 노래로 담기도 했던 그들은 어느 새 '너와 함께 있었던 도시에 이제 나는 혼자 존재하고 걷고 있다' 라는 메세지를 노래하고 있었다. 마치 성장기와 그 속의 고민, 아픔들이 함께 시간순으로 노래들에 점차 드러나는 그들의 노래는 그때의 나의 처지와 감정 시점에서 퍽 공감하는 가사들이었다. 


이 시기의 감정과 이 노래를 그래서 사진으로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Seattle Alone이 재생 되고 있던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대숲사진가로서, 아주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스파크가 머릿속을 지폈다. 코로나에 대한 걱정도 없이 여유 있게 고민 해볼 수 있었던 2019년의 8월이었다.


일전에 한 농구감독이 작전타임에서 했던 웃음을 참지 못할 명언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지금 안되는게 딱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공격이고 다른 하나는 수비야" 라는 말을 한 것이 농구계의 밈으로 자리 잡은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뻔한 이야기지만 딱 두가지를 열심히 고민했는데, 하나는 배경이고 하나는 이 곳에서 함께할 모델이었다. 굉장히 강력하게 생겨난 동기부여였어서 이 촬영을 허투루 대충 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는 감정이 앞섰다. 

난 시애틀을 가보지 않았지만, 그 거대한 도시를 혼자 걷고 있으면 이런 이미지가 생각날 것 같았다.


가사 속의 서사를 이미지로 구현 해내기 위해 노래를 수 차례나 더 들으며 배경에 대해 고민하며 내가 생각해낸 바는 이랬다 : 

- 거대한 빌딩숲이 있는 도심 배경을 선정하여 '이 도시에 나만 혼자 있다' 라는 메세지 극대화

- 야경의 배경도 이쁘게 나올 수 있도록 차량을 비롯한 도심 속 인공조명이 충분한 배경

- 위의 언급한 배경의 구도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교통섬이 많은 곳일 수록 좋다는 것

이야기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이 여의도와 테헤란로였는데, 교통섬이 도로 한복판을 관통하여 지나가는 차량들을 배경으로 활용하기에도 용이한 테헤란로를 자연스럽게 고르게 되었다. 야경을 많이 찍고 다닌 나로서는 고층건물 숲 사이로 일직선으로 올곧게 뻗어가는 테헤란로가 다소 그물망처럼 되어 있는 여의도의 빌딩숲 사이사이의 길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제 정한 무대 위에서 다소 차갑고도 메마른 감정을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사람'이자 동시에 '그 때 꿈만 같았던 그 도시를 잃어버린 아련함'을 연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대숲사진가가 알고 있는 네트워크에서 이것을 같이 도전해줄 수 있는 모델은 단 한명이었다고 생각했다. 큰 고민 없이 김콩에게 카톡을 했고 그렇게 테헤란로에서의 촬영이 성사 됐다.


촬영 전에 마지막으로 의상에 대한 고민에서 한 가지 걸렸던게 있다. 당시 볼빨간사춘기, 특히 안지영이 입었던 의상은 주로 키치하고 밝은 원색 톤의 의상이 많았는데 이것을 그대로 이미징으로 끌고 들어갈지 아니면 시작의 원동력은 Seattle Alone이었지만 우리의 처지에서 재해석한 Seoul Alone의 느낌으로 재해석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김콩이 마침 본인이 사놓고 개시를 하지 않은 옷이 있단다. 사진을 보내오는 순간 바로 확신했다. '아 이 촬영은 됐다. 잘 될 수 밖에 없다.'


혼자 남겨진 도시에서의 공허함을 우린 무엇으로 채우고 싶었던 것일까


거대한 도심 속의 우리는 하잘 것 없는 하나의 점이다. 그 도시가 더욱 아름답고 웅장할 수록 반비례하여 우리의 쓸쓸함, 공허함의 감정도 더욱 크게 되울려 퍼져간다. 초저녁의 테헤란로 위에 내리 깔리는 노을 빛깔과 적당히 함께 몰려온 8월 말의 뭉게구름들, 그리고 화려한 색 조합의 의상들은 진짜로 테헤란로에서의 그 순간을 시애틀이라고 해도 잠시 정도는 믿을 만큼의 그런 감쪽같은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다만 그 화려함 뒤의 깊은 곳에 숨겨진 우리의 감정은 공허함, 무엇인가로 채워내고 싶고 갈망하게 만드는 그런 텅 빈 감정이다. 매일 도시의 삶 속에 갇혀 있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늘 느끼고, 받아 들이던 극복 해내던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공존 해야하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이 촬영을 회상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가사 속의 "Take me back to Seattle"이라는 부분을 곱씹어 보며, 내가 주로 그리워 하는 Seattle이라고 할 만한 기억 속 매개체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도심 속의 우리는 연약하기 그지 없지만 기쁨과 행복을 함께 속삭이며 즐거운 순간도 있으며,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의 열정이 있고, 그 모든 것들과 이별 해야만 하는 아픔이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시간의 장벽 아래 단절감의 감정들도 있다. 결국 지금 시점에서는 다시 돌아가거나, 손에 잡아낼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원작인 노래에서의 안지영은 그 것을 '그 도시에서 함께 했던 사람'으로 노래했다. 우리의 기억 속 Seattle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있더라도 Seattle은 그 때의 그 모습 그대로일까, 아니면 장소가 아니라 그 시공간 속의 우리 자신이 더 값진 존재였던 것일까. 늘 씨름해보지만 해답을 내리기 어렵다.


이 노래의 결말부는 결국 함께 했던 도시에서, 함께 했던 밤이라는 시간대를 다시 그 장소에서 혼자 맞이하며 느끼는 괴리감으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기도 했으며, 같이 춤을 추며 흘려보내기도 했던 그런 찬란한 밤이었다. 한 드라마에서 작중인물이 '때로는 결말이 비극인걸 알아도 가야만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결국 혼자 남겨진 Seattle을 받아 들여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것을 다시 두려움 없이 딛고 나아가야만 또 다른 Seattle에 도달 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City alone' 라는 처지와도 같을 때의 나의 경우는, 솔직하게 많은 스트레스와 고통을 속으로 겪는다. 거짓말 하나 섞지 않고 정확하게 정의 해보자면 '이리저리 얻어 맞지만 쓰러지지만 않고 버텨낸다'는 것이 정확할 듯 싶다. 기억속 Seattle 속의 빛나던 상대와 그 것과 함께하던 나 자신은 기억 한 켠 속의 박물관 전시품처럼 귀중하게 존재를 빛낼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 속 Seattle이 우리의 마지막 여정이자 도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늘 그러했듯, 결국 다시 딛고 걸어가게 될 것이고 또 다른 설렘을 발견하며 여행 하고 있는 미래를 또 발견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초저녁에 시작했던 이 촬영은 도시에 밤이 내리 깔릴 때까지 연신 많은 장면들을 담아내며 이 노래가 우리에게 준 서사를 나름의 시점에서 재해석 해내며 완성했다.



네가 떠난 그 도시에 여전히 나 Alone alone alone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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