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반려견 두 마리가 있다.
한 녀석은 이제 아홉 살 먹은 골든리트리버 ‘봄이’고 또 한 녀석은 세 살 된 믹스 삽살개 ‘꼬맹이’다. 둘 다 공주들이다. 우리 가족은 개를 좋아하지만 집안에서 키우는 건 질색이기 때문에 절대 집안에 들여놓지는 않는다. 두 녀석 모두 털이 긴 장모견인 데다 털이 엄청 빠지고 날리기 때문에 한번 쓰다듬고 나면 옷에 달라붙은 털 떼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마당 잔디 건너편에다 철제 펜스를 쳐 놓고 그 안에다 개집을 두 채 지어 따로 기르고 있다.
우리 가족이 이곳 산청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면서 늘 반려견을 길러 왔다. 28년을 살면서 여러 반려견들이 우리와 함께 했었다. 그동안 수많은 아이들이 우리 집을 거쳐 갔지만 그 아이들을 기르면서 늘 느끼게 되는 것은 비록 동물이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자기를 길러주는 사람과의 정서적 교감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사회적으로 비도덕적인 사건을 접할 때 그 사람을 ‘개만도 못한’이라고 욕할 때가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개 입장에선 기분 나쁘겠지만 우리 인간들 중에는 동물보다 못한 부류가 있다는 걸 강조할 때 쓰는 표현이다. 자기 새끼를 끔찍이 돌보고 자기를 길러주는 주인에게 절대 충성하고 배신하지 않는 개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을 정도로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현재 우리 가족이 기르는 ‘봄이’와 ‘꼬맹이’도 그런 충직한 개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귀요미 임은 물론이다. 그래서 견공(犬公)이라고 추켜주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가면 봄이 와 꼬맹이는 집에서 나와 꼬리를 흔들며 반가운 표시를 한다. 아침 인사인 셈이다. 사료와 물을 갈아주면 가까이 스킨십을 하며 고마운 표시를 한다.
이 아이들은 그래도 본능적으로 자기들의 본분은 안다. 낯선 사람이나 뭔가 나타나면 큰 소리로 짖으면서 신호를 보낸다. 가끔씩 멀리 살고 있는 아들 내외나 친지들이 찾아오면 ‘가족’과 타인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짖지 않는 영민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와 오랜 세월 살다 보니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을 가진 것이 기특하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는 우리 가족의 자동차 엔진 소리만 들어도 (시야에 아직 보이지 않음에도) 그들은 자기 식구임을 알아차리고 반응을 한다. 정말 청각이 뛰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후각도 뛰어나다. 그런데 시각은 별로 인 것 같다. 잔디밭에 떨어진 과자를 눈으로 찾는 게 아니라 코로 냄새를 맡으며 찾아내려 한다.
이 아이들이 웃기는 것은 제 나름대로 감정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점이다. 요즘 같이 비라도 자주 내리는 날이면 가족이 퇴근하고 왔는데 귀찮다고 아예 내다보지도 않는다. 비 맞으면서까지 인사하기 싫다는 표시이다. 하지만 힐끗 보다가 우리 손에 뭔가 맛있는 게 들려있다 싶으면 잽싸게 집에서 나와 반가운 척(?) 한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속물이다. 이 아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맛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그 맛있는 걸 주면서 한 대 쥐어박는다. 야 인마, 인생, 아니 견생을 그렇게 사는 게 아니야 라면서.
그런데 우리 가족이 이 아이들을 다 같이 좋아하고 귀여워해 주는데도 뭔가 우리 가족 개개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장을 바꿔 얘기하자면 우리 가족은 각각 이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순위가 매겨져 있다. 가장 인기 있는 1위는 우리 딸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에도 저녁에 돌아와서도 볼 때마다 많이 만져주고 그냥 빈손으로 대하는 경우가 없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쟁여두고 사기진작을 해준다. 그다음 2위는 ‘나’다. 매일 밥과 물 챙겨주고 똥도 치워주니 내심 고마워할 게 분명하다(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거기에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목욕까지 내가 전담해서 해준다. 가끔 씩 마을 주변으로 산책도 내가 시켜준다. 봄이가 대형견이라 힘이 무척 세기 때문에 우리 집 여자들은 힘이 달려서 오히려 끌려다니기 때문에 남자인 내가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몸으로 가장 헌신하는 사람은 나다. 마지막으로 순위는 아내다. 아내는 아이들 밥을 챙겨주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렇게 살갑게 대하지는 않는다. 데면데면한 편이다. 이렇게 볼 때 아이들에게 인기순위는 곧 자기들을 많이 이뻐해 주고 맛있는 걸 잘 주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나처럼 뒤치다꺼리해줘 봤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니까 점수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아이들이 우리 가족을 똑같이 좋아하지 않고 인기순위가 정해져 있는지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 아이들이 환영하는 태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아내가 집에 오면 본척만척한다. 아내는 이 녀석들 태도를 보고 볼멘소리를 한다. “ 이놈들 어른이 들어오는데 어디 본척만척이야. 밥 먹여 키워봤자 소용없네.”
곧이어 내가 집에 오면 두 녀석은 그래도 집에서 나와 살짝 꼬리를 흔들며 반가운 척은 한다.
혹시 맛있는 거라도 가져오셨나 하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 정도면 집안 어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춘듯하다. 마지막으로 우리 딸이 퇴근해 오면 자동차가 마당에 대기 무섭게 난리다. 이구동성으로 울부짖고 낑낑거리며 어찌할 줄을 모른다. 완전 이성을 잃고 격한 환영을 한다. ‘분명 우리 언니는 빈손으로 오지 않았을 거야.’ 아이들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는 우리 딸은 혀 짧은 소리로 “아이고 집 잘 봤어? 우리 아기들.”하며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고 간식을 물려준다. 이렇게 선수들 사기진작에 힘쓰는 딸이 어찌 인기 1위가 아니겠는가.
개도 감정이 분명 있는 동물이라 자기를 가장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이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근데 이것은 우리 가족들 입장에서 볼 때, 자기 반려견에게 정말 차별당하는 기분이다. 헐~ 이 녀석들아, 사람 차별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