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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성호 Cha sungho Dec 07. 2023

  결국은 인성(人性)이다

                       - '고수의 생각 법'을 읽고 

 

올여름 무더운 어느 날시원한 도서관 에어컨 바람을 즐기며 서가를 훑다가 무심코 눈이 간 제목에 주저 없이 뽑아 든 책 고수의 생각 법은 대출해 온 그날 바로 숨도 쉬지 않고 밤늦게 까지 단박에 읽어내었다.

살면서 내 삶에 영향을 주는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나는 독서 성향이 주로 실용독서 쪽이다순수 문학 류는 어린 시절에 주로 읽었기에 아마도 30대 이후로는 거의 실용 독서에 많이 치중해 온 편이다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에도 인문경제 경영건강취미자기 계발류의 책들에 눈길이 가게 된다.

이번에 읽은 고수의 생각 법은 프로 바둑기사 1세대라 할 수 있는 조훈현 9단이 쓴 책이다.

나는 그리 바둑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수많은 생각에 생각을 해야 하는 그 세계에 대해선 경외감을 갖고 있다조물주가 만든 동물 중에 인간만큼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 또 있을까?

그 인간의 생각의 꽃을 피운 것이 아마도 바둑이 아닐까 생각된다몇십 수를 내다보고 판 전체를 다시 복기하는 그 생각들은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파스칼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인간이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여느 동물과 차별되는 존엄성을 가지게 된 것이라 여겨진다



고수의 생각 법에서 조 9단이 시종일관 강조하는 하는 것은 결국 인성(人性)이다

그는 생각의 바탕은 인품이라고 말한다생각은 행동이자 선택이다어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그 사람의 선택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상의 무게를 견뎌낼 만한 인성이 없으면 잠깐 올라섰다가도 곧 떨어지게 된다인성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능이 뛰어나도 그것을 옳게 쓰지 못한다바르게 생각할 줄 모르면 바르게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읽으면서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이다.

또한 생각은 나무처럼 가지를 뻗으며 자란다고 한다한 번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를 뻗으면 계속 그 방향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그래서 간단한 일일지라도 원칙과 도덕을 지켜야 한다고 조 9단은 강조한다사람이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다사람이 되려면 인격, 인품, 인성을 모두 갖춰야 하는데 인품과 인격을 어떻게 가르치겠는가매너는 가르칠 수 있어도 인품은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가르치려고 덤벼드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 일수도 있다고 한다그러면서 이 시대의 부모들에게 뼈아픈 충고를 한다가장 가난한 부모는 돈이 없는 부모가 아니라 물려줄 정신세계가 없는 부모라고.

반집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바둑이라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한번 이겼다고 우쭐해하면 그는 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이기기 위해선 수천 번의 지는 경험을 쌓아야 하므로 일상의 경험으로 덤덤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조훈현 9단과 쌍벽을 이루던 조치훈 9단은 ‘매일매일 노력하는 사람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바둑용어 중에 반외팔목(盤外八目)이라는 말이 있다바둑판 밖에서 보면 8집이 더 유리하다는 말인데 불안 초조 욕심 등으로 눈앞에 있는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걸 비유하는 뜻이라 한다즉 판 밖에서 보라는 것이다우리는 모두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둑판 위에 서 있다돌을 던지고 나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그러나 우리에겐 아직도 보여주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이 남아있다자신은 아무것도 없다며 괴로워할지 몰라도 판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우리는 여전히 8집을 더 갖고 있다그러니 아직은 게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바둑 고수의 생각이라지만 인생을 관조하는 철학적인 사고라고 생각되었다.

고수의 생각법’ 이 책을 읽으면서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멋진 사자성어도 알게 되었다즉 물이 차야 배가 뜬다는 말인데 때가 이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우리는 흔히 물이 차지도 않았는데 뜨려고 발버둥 치는 인간 군상들을 얼마나 많이 보는지 모른다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긴 시간 칼을 갈아야 하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비인부전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勝德)이라는 문장도 배웠다인격에 문제가 있는 자에게 높은 벼슬이나 비장의 기술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좋은 생각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재주가 덕을 넘어서는 안 된다이런 좋은 글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사실은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올해 내가 가장 잘한 것은 딱히 생각나지 않지만 이 책을 읽은 것은 뭔가 괜찮은 걸 하나 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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