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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성호 Cha sungho Jul 22. 2023

도덕 선생님

            

내 별명은 ‘도덕 선생님’이다. 오래전 같이 근무했던 친한 직원이 붙여주었다. 그 당시 나는 30대 초반이었다. 유독 도덕적 관념이 강해서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보니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며 도덕선생님이라고 놀렸다. 나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었지만 그것이 내면에 굳어진 ‘성향’, 즉 나의 색깔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어릴 적 성장환경이란 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무섭다는 해병대 대령 출신인 아버지 밑에서 우리 형제들은 바짝 군기 잡혀서 컸다. 오 남매 가운데 나는 그래도 막내라고 혼이 덜 났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도록 어리바리하다며 핀잔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바둑을 배우면서도 주먹꿀밤을 맞아가며 배웠다. 열두 살 많은 큰 형님은 아버지에게 정말 많이 맞고 자랐다. 그땐 아버지가 현역시절 젊은 나이였기에 조금의 흐트러짐도 용납지 않았다. 자신의 가정도 군대의 연장선에서 다스렸던 것 같다. 그러니 우리의 성장환경이며 가족의 심리상태가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비단 해병대 출신이라서 엄했다기보다는 당신의 어릴 적 성장환경이 그러했으리라 추측이 된다. 


아버지는 1926년생으로 조부모님의 지극한 치성으로 얻은 첫아들이었다. 여섯 살에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고 왜정시대 소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다. 조부모님은 일본인 소유 산을 관리하던 산지기였는데 가난했지만 청렴하시고 매우 엄하셨다고 한다. 소학교에서 수재 소리를 들으며 명석했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고집으로 고향을 떠나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꿈이 좌절되어 한이 되었고 마침내 삼팔선을 넘어 단신 월남하게 된다. 그 후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안경비대에 입대하여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이내 6.25 전쟁을 맞이한다. 전쟁에서 빛나는 전공으로 출세가도를 달린 아버지는 서른다섯 나이에 해병대령이 되었다. 

아버지의 타고난 DNA에 해병대 출신이라는 조합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그런 아버지와 사느라 어머니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6.25 전쟁 이후 그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 부대 휘하 장병들은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이북 출신들이 많았다. 배고프고 서글픈 명절을 보내야 하는 장병들이 마음에 걸린 아버지는 주머니에 가진 돈은 없고 해서 어머니의 결혼 패물을 다짜고짜 팔아 떡을 한 가득해서 부대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전역 후 사회에 나온 아버지는 처신이 서툴러 처자식을 고생시키며 가난하게 사셨다. 훗날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평생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올곧은 기개로 살아오셨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우리 형제들 또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옆길로 새지 않고 올바르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이른바 가풍(家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도 그런 기질을 물려받아 생활 속에서 공중도덕이라든지 정해진 규범을 지키려고 애쓰는 편이다. 교통신호를 잘 지키며 낚시터에 가면 쓰레기를 절대 버리지 않고 되가져온다. 아울러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소소한 비도덕적인 행위를 경멸한다. 이태리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생활에티켓을 지키는 것을 고집한다. 나의 무지로 인해 타인에게 불편을 끼쳐선 안 되며, 타인의 불편과 관계없이 내가 도덕적 경로를 이탈해선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내 안에 있다. 

자식을 둔 부모입장에서 부끄러운 아버지로 살기 싫다는 자존심이 내면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정직과 올바르게 사는 것이 우리 집 가풍이며, 한 나라 국민이 기본적인 도덕적 자질을 갖춰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저 적당히 쉽게 살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살아선 안 된다는 신념이 평생 나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심심찮게 보편적 상식으론 이해가 가지 않는 무 개념의 일들을 몸소 겪기도 하고 그런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정해놓은 규칙은 무언의 약속이다.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깨트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분노하게 된다. 

나도 남에게 피해 주기 싫지만 또 남으로부터 피해받기도 싫다는 생각이다.

오래전 신문칼럼에서 읽은 서울대 임 모 교수님의 글이 생각난다.

“교통질서를 위반한 자는 국가보안 사범이다.” 정말 공감한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면 나라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얘기다. 동남아, 아프리카 등의 개도국들이 왜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가? 그들의 질서 존중의식은 완전 밑바닥이다. 물질이 풍요하더라도 정신적 도덕 개념이 동반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대접받기 어렵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도덕, 이 말이 요즘 세대에게는 꽤 진부한 단어가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도덕 선생님’이라는 별명이 오늘따라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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