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가 흔히 사람의 심리를 알기 위하여 알아보는 방법 중의 하나로 그 사람과 돈거래를 해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들 한다. 돈을 빌려가서 정확하게 약속한 날짜에 갚는다든지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을 빌려서 언제 갚을지 함흥차사인 사람도 있다. 말로만 금방 갚을 것처럼 얘기하고 차일피일 미루는가 하면 그까짓 돈 갚으면 될 것 아니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돈 앞에선 본심이 드러나는 모양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 사람과 고스톱 같은 도박을 해보면 그 사람의 밑바닥을 알 수 있다고들 한다. 그것 역시 눈앞에서 돈이 왔다 갔다 하니 돈거래와 바를 바 없다.
인생을 좀 살아보니 예를 든 위의 얘기들이 어느 정도 맞다 는데 동의한다. 그런데 나는 좀 더 다른 방향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동차운전’이다. 요즘 같이 자동차 운전이 보편화된 시대에 매일 같이 핸들을 잡으면서 하루도 볼 멘 소리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다.
운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고가 날 우려가 높기 때문에 늘 긴장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왜 운전을 저렇게 하는 거지? 혼잣말을 되뇌며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정말 운전하는 스타일을 보면 사람들의 성격이나 심리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데 큰 오차가 없다는 생각이다.
어디선가 이런 우스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동차 운전대에 특수 기능이 하나 있는데 잘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건 방향지시등 즉 ‘깜빡이’다. 깜빡하기 때문에 깜빡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경험하는 바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깜빡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한 20~30%나 되려나? 깜빡이는 내가 좌우 어느 쪽으로 자동차 방향을 돌리겠다는 의사표시이다. 그걸 사용하지 않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무조건 핸들만 돌린다. 뒤 따라오는 차에게 예고를 하지 않고 갑자기 방향을 튼다는 것은 사고를 유발하는 아주 무례한 행동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깜빡이 미사용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그것이 무슨 잘못이냐는 식이다. 나는 이런 사고와 운전습관을 가진 사람의 머릿속을 분석하자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내 갈 길 내가 가는데 남이야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다. 그래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는 거다. 당신도 한 번 당해보라.
우리나라 운전면허시험의 맹점이 여기에 있다. 기능 시험과 운전 예절이 반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깜빡이 미사용 습관은 운전예절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평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의사표시를 잘하지 않는 생활태도라고 생각된다. 내가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면서 막무가내로 핸들을 돌려 버린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익명성 뒤에 숨어 온갖 댓글을 다는 걸 보면 반드시 의사표현을 잘하지 않는 국민성이라고 단정 짓기도 그렇다. 오히려 타인에 대한 무례함이 더 적당하겠다. 자동차 번호판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써붙이고 다닌다면 그런 무례함이 줄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익명성 뒤에 숨었을 때 그 사람의 민낯이 드러나는 걸 많이 경험해 왔다.
자신이 무인도에서 혼자 운전한다면 깜빡이를 사용하든 말든 그건 자유다. 그러나 공공 도로에서 수많은 자동차가 달리는 와중에 그런 아~무 생각 없는 운전 습관은 여러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피해를 주게 된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1차선 밖에 없는 국도 외길에서 엄청 시간에 쫓기는 출근 시각에 아주 편하게 시속 4~50킬로로 천천히 가는 사람이 있다. 자기 차 뒤에는 정체된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있는데... 완전 날 잡아 잡숴 식이다. 이런 사람은 공공재인 도로를 자기 논길 정도로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몰고 가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의식이 제로이고 바쁜 사람이 내 뒤에 줄을 섰다는 의식을 할 줄 모르는 것이다. 배려심은 집에 놔두고 다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마인드로 어찌 자식 밥상머리 교육을 시킬 수 있겠는가.
자기 생각만으로 머리가 차 있고 남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때로는 도로에서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을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행동들은 우리 한국인 특유의 자기 마음대로 자유분방하게 살고 싶어 하는 국민기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과거 시절보다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한번씩 후진국에 여행을 가보면 우리는 깜짝깜짝 놀란다. 교통질서가 엉망이고 제멋대로다. 교통신호는 있으나마나 이고 자동차와 사람이 뒤죽박죽 되어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옛날 우리 한국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시절에 비하면 엄청 시민의식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저절로 시민의식이 깬 것이라고는 동의하지 않는다. 법률로 통제를 하고 위반하면 과태료를 물리면서 강제하였기에 할 수 없이 따르다 보니 질서의식이 정착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후진국에 가서 무질서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가까운 일본에 가서도 깜짝 놀라게 된다. 일본 국민들의 질서의식과 몸에 밴 배려 습관이 우리의 현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물론 아무 데나 도로변에 주정차하면 엄청 비싼 과태료를 물리는 일본 정부의 정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민들이 살아가는 뒷골목을 가 봐도 도로변에 주차된 자동차 심지어 자전거도 보기 어렵다. 이것은 강력한 과태료보다도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겠다는 시민의식이 자리 잡은 사회라는 것이다.
즉 ‘메이와쿠’가 국민들의 저변에 자리 잡고 있기에 생활 전반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아직’이다. 왜 우리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민폐에 대해서 당당할까. 6.25 이후의 피 튀기던 생존경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살만한 정신적 여유가 생긴 시대가 아닌가. 동방예의지국이 동방무례지국으로 바뀌는 데에 얼마 걸리지도 않았었다. 물론 지금이 더 각박한 사회라고 말 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도로 위에서 배려하지 않고 의사표시하지 않는 후진적인 운전 매너에 불평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많이 피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