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한낮에 양복점과 세탁소를 겸하는 외갓집 다다미방에 놓인 흑백텔레비전을 온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신기한 장면을 놓칠세라 지켜보고 있었다.
1969년 7월 16일, 나는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세상천지도 모르던 어린아이였지만, 그날의 역사적인 장면을 똑똑히 지켜보았다는 사실이 지금도 감개무량하고 잊혀지지 않는다.
무더운 그 해 여름 외갓집에 엄청 큰 나무궤짝 화물이 배달되었다. 보낸 사람은 월남에 가 있는 이모부님이었다. 나무판자로 튼튼하게 못질된 커다란 상자였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조심스럽게 나무포장을 해체하자, 그 안에는 난생처음 보는 온통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녹음기, 텔레비전, 건전지로 움직이는 장난감 비행기, 특히 나 같은 어린애를 사로잡은 건 카키색 포장으로 된 C-레이션이라는 미군 전투식량이었는데 그 상자 안에는 처음 맛보는 초콜릿, 비스킷, 참치 통조림, 각종 캔디 등 완전 신세계였다. 어느 것 하나도 맛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구경도 못하던 물건들이었으니 내 눈에는 이모부가 보내준 그 화물 상자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모부는 당시 월남전이 한창 일 때 파병된 해병대 상사였다. 지금은 베트남이라고 부르지만 그때만 해도 한자어로 ‘월남’이라고 불렀고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라는 노래가 히트를 치던 시절이었다.
이모부가 보내온 물건 중에 때 마침 시기적절하게 제값을 한 것이 바로 흑백텔레비전이었다. 우리나라에 컬러 시대가 열린 건 1980년 말 경이었으니 그때는 흑백텔레비전조차 보기 힘들었던 때였다. 신기한 문명의 이기를 보고 감탄하던 그때 마침 미국에서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내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외갓집은 일본식 적산가옥으로 해방 이후 그곳에서 줄곧 양복점과 세탁소를 운영해 오던 터라 다다미방 구조로 되어 있었고 외할아버지는 그 다다미방에 양복천을 펼쳐놓고 재단작업을 하셨다. 지금도 진해 송학동에 가면 근대상가주택들로 명명된 적산가옥들이 남아 있는데 우리 외갓집이 그런 집이었다. 50년 만에 다시 찾아가 보니 외갓집 건물이 식당으로 바뀌었고 어렴풋한 흔적만 찾을 수 있었다.
어린 나는 어른들 틈에 끼여 그 다다미방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 역사적인 아폴로 11호 달 착륙 장면을 생생하게 보았다.
어른들은 그 장면을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람이 달에 가다니! 계수나무와 옥토끼가 산다는 그 달에 실제로 인류가 발을 내딛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게 되다니!
우주선 독수리호에서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을 보았고 우주복을 입은 채 덩실덩실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비록 지금 같은 깨끗한 화질은 아니었지만 지지직거리는 흑백화면으로 보았던 그 경이로움은 C-레이션 상자보다 더 큰 인상을 주었다.
여덟 살짜리 어린 나에게 인류의 위대한 첫발걸음의 순간을 보게 해 준 이모부는 이제 팔순의 노인이 되어 포항에 불편한 몸으로 계신다. 이모부가 젊은 시절 베푼 선물이 여러 사람에게 특히 어린 조카의 인생에 큰 정서적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아시면 참 흐뭇해하시리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