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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샵레터 May 24. 2023

챗GPT가 말하는 법

37호 VIEW


                                              글 ∙ 정경영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장




첫만남

챗GPT와 서먹해진지도 벌써 4개월이 되었습니다. 후유~ 지난 겨울에 일본의 한 공원에 있는 일본식 정원에 갔다가 그 곳의 소리풍경을 제 마음에 깊이 새기고 그 주제로 연구를 좀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일본 정원의 ‘소리풍경’은커녕 일본 정원 자체에 대한 지식도 아예, 전혀, 1도 없었던 저는, 내심 잘 됐다 생각했어요. 챗GPT를 써볼 기회라고 여겼거든요. 마침 그 무렵 챗GPT 소문이 파다했고, 그 소문의 대부분은 대체 모르는 게 없고, 못 쓰는 글이 없다는 거여서, (그러니 이제 사람은 뭐 하냐) 기대가 참 컸습니다. 그게 문제였겠죠. 제가 너무 기대를 했던 것이 말이죠. 음, 어쩌면 지금 핫 하다는 ‘신문물’을 남들보다 먼저, 잘 사용해 보겠다는 허세가, 그놈의 허세가 문제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 Unplash


“일본 정원에 대해 알려줘.”


챗GPT에게 물었습니다. 아주 시원시원한 녀석이었습니다. 얼마나 친절하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던지. 저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여러 가지를 물었고, 그 녀석은 지치지도 않고 친절하게 답을 해 줬죠. 이쯤 되니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어졌어요. 이렇게 막강한 도우미도 있으니 할 만하다는 자신감도 생겼구요. 그래서 계속 물었습니다. “일본 정원의 소리풍경에 대한 참고서적을 좀 가르쳐 줘.” 망설임도 없이 4권의 책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 중 첫 두 권은 같은 저자의 책이었는데, 첫 번째 책은 그 분이 혼자 쓴 책이었고, 두 번째 책은 그 분이 편집한, 여러 저자가 쓴 책이었습니다. 첫 번째 책에 대해서는 ‘아마존’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는데, e북도 있다면서 묻지도 않은 상세한 정보를 가르쳐 주었구요, 두 번째 책에 대해서는 특정한 챕터를 알려주면서 그 챕터에서 일본 정원 중에 이러 저러한 정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친절히 알려주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던지!




황당 혹은 거짓말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대충 짐작하시죠? 이제 챗GPT가 숨겨두었던 성격에 대해 소문이 좀 났으니 말이죠. 예상하신대로 저는 아마존 사이트에서 그 첫 번째 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e북은커녕, 종이책도, 제목이 비슷한 책도 없었습니다. 저자 이름으로 검색했어야 했다구요? 당연히 했죠! 결과요? 그런 저자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 책도 마찬가지였어요. 아예 그런 책이 없더라구요. ‘좋아, 그럴 수 있어, 아마존에 없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나도 참고문헌 찾기에는 제법 경력이 있는 전문가라구! 내가 못 찾을 줄 알아?’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기술을 몽땅 동원해서 그 책을 찾기 시작했어요. Google Books요? 진작에 돌려봤죠. WorldCat? 당연히요! 온갖 국내외의 유명한 검색 엔진을 모두 돌리고 심지어 어둠의 경로까지 샅샅이 뒤진 다음에야 생각이 난 거에요. 다시 물어보겠다고 말이죠. 심호흡 다시 한 번 하고…


책 이름으로 물었어요. “이 책 알아?” 맙소사! 갑자기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겁니다. 당황했지만 가능한 침착하고 친절하게 “이 저자는 알아?” 그랬더니, 너무 흔한 이름이어서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아 이럴 수가~’ 이제 슬슬 화가 나더라구요. “네가 나한테 알려준 책이고 저자 이름인데?” “앗 미안, 제가 헷갈렸나 보네요. 그런 책, 그런 저자는 없습니다.” 와~ 진짜 이럴 수가 있나요? 저는 정말 화가 나서 이렇게 묻고 말았습니다.


“너 혹시 거짓말도 해?”


© Unsplash

과학기술학을 연구하는 친한 교수님을 만났을 때 똑같이 물었습니다. “혹시 챗GPT가 거짓말도 해요?” 그 교수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이게 좀 복잡한 건데… 여튼 알아들으실 수 있는 정도로 말해 볼게요.” 그 설명의 핵심은 이런 거였습니다. 챗GPT는 기존의 정보들을 토대로 답을 하지만 대체로 어떻게 대답해야 가장 자연스런 말로 읽히는가를 중점적으로 학습한 인공지능이라구요. 그러니 챗GPT의 대답은 아주 쉽게 말하자면 정확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연스럽고 그럴듯한 말로 읽히는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이죠. 흠.




당황 혹은 아무 말이나 막 하기

아직도 챗GPT에게 섭섭한 마음이 가신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챗GPT가 잘 하는 일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되어 종종 큰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챗GPT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 그저 챗GPT를 이해하게 된 사건이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제가 챗GPT가 된 것 같은 일이랄지.

지난 주 음악사 시간이었어요. 두 학기 만에 서양음악사를 다 가르쳐야 하는 우리 학교 시스템을 따르려면 때로는 너무 시간이 모자라서 아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이번 학기는 그러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유난히 시간에 쫓겼죠. 아마 그 전 주 수업 시간에 1530년대 파리에서 유행하던 샹송을, 그냥 듣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졸고 있는 학생들을 깨우기 위해서 노래 부르도록 시켰던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아, 물론 학생들은 처음엔 쑥스러워 하며 작은 소리로 노래했지만, 나중에는 제법 신나게 아주 잘 불렀어요. (들려드리고 싶네요. 부르면서 배우는 음악사.) 세르미지라는 작곡가의 ‘Tant que vivray’라는 아름다운 곡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잘 부르니까 자꾸 부르고 싶어졌고 그러다 보니까 진도를 다 나가지 못하게 된거죠. 제 실수였습니다.


Sermisy: Tant que vivray | Château de Fontainebleau | T. Hengelbrock


지난 주 수업 시간에는 그러니까 16세기 말의 악기 종류와 기악음악 장르, 17세기와 바로크 시대에 대한 개관, 그리고 오페라 탄생과 17세기 중반 오페라 세리아 이야기까지를 2시간 만에 다 해야만 했어요. 어떻게 되었냐구요? ㅠㅠ 바로크 시대의 새로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무정한 아마릴리’에 대한 이야기도 못했구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변화의 근본이 되는 수사학 이야기도 못했습니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이야기는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구요, 타루스킨이 재치있게 말한 ‘From Monterverdi to Monteverdi’라는 얘기는 설명도 못했어요. 《포페아의 대관식》의 끝에 나오는 아름다운 듀엣 ‘Pur ti miro’는 들려주지도 못했고, 그 아리아가 어쩌면 몬테베르디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흥미진진한 얘기도 못했어요. 그러니 당연히 그것이 의미하는 바, 즉 음악과 오페라에 대한 당대의 사고에 대해서는 뭐 얘기할 생각도 못했죠. 물론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어요. “그래서 뭐? 그게 그리 큰 문제야?”


네. 저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 얘기를 빼고 나면 바로크와 17세기에 대해서 아무 것도 얘기하지 않은 셈이 되거든요. 물론 다 빼도 그냥 대충 얘기는 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얘기들을 빼 놓으면, 왜 그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는지, 왜 대충 얘기가 되는 것 같은 그 이야기가 중요한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들 없이는 그냥 아무 말이나 막 한 것과 다름없는 거죠. 네, 아무 말이나 막 한 거라니까요.




챗GPT와 나

그러니까 챗GPT처럼 말이죠. 그저 시간 안에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안했다면 그건 그냥 시간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 것 뿐입니다. 음악사 시간에 해야 할 것은 시간에 맞춰 진도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배워야 하는 것인데 말이죠. 챗GPT가 그저 말을 잘하기 위한 말을 했다면, 어쩌면 저는 그저 시간을 맞추기 위한 말을 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쩌면 작곡가 이름 하나 쯤 빼먹고, 오페라 이전 장르 몇 개쯤 생략하고 16세기 악기나 기악 음악이야기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수사학 이야기에 전념해야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전 그냥 시간을 지킨 것 뿐이고 결과적으로 의미 없는 말, 그냥 말만 되는 말을 한 셈이에요.


© Unsplash

종종 그러지 않나요? 저처럼 시간에 쫓기거나 혹은 이러저러한 또 다른 이유 때문에 가끔 진짜 해야하는 중요한 말을 빼먹고 안 하는 거 말이에요. 그 말 없이는, 사실상 그냥 아무 말이나 막 한 게 되는데도 말이죠. 심지어 어떨 때는 그런 사정 다 알면서도, 알면서도 일부러 빼먹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그 말을 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쁠까봐, 나한테 불리할까봐, ‘사회생활’ 잘 하기 위해서 말이죠. 말은 하는데, 말만 되는 말, 내용은 없는 말, 중요한 사실이 빠진 말, 그런 말이요. 정작 그 말에 근거해서 뭘 해 보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말이요. 솔직히 저는 종종 그런 말을 하곤 합니다. 챗GPT처럼요.




그리고…      

ⓒ Unsplash


챗GPT만 거짓말을 하나요? 알맹이가 없는 말, 그것이 빠지면 의미없는 말, 그런 말을 하는 저도 어쩌면 거짓말을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없는 책을 있다고 한다거나 있지도 않는 저자를 있다고 하는 거 아니니, 최소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라구요? 그렇게 위로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별 다르지 않아요. 말을 통해 무엇인가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럴 듯 한 말처럼 들리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말이죠. 말다운 말을 하는게 아니라 그저 급히 진도 맞춰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들만 말 되게 배열해 중얼거리고만 있다면 말이죠. 그러니 에효, 저나 챗GPT나 어쩌면 다를 바 없습니다. 여러분은요?









37호_VIEW  2023.05.25.
글 ∙ 정경영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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