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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샵레터 Mar 21. 2024

한국 창작오페라에 보내는 한 음악학자의 연서


                                           글 ∙ 강지영

                                                전임연구원





그 이름도 모호한 한국 창작오페라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이미지 출처: The Metropolitan Opera


오페라를 좋아하나요? 보신 적은 있으시고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푸치니의 《라보엠》 등 주옥같은 오페라 작품들이 많이 있지요. 그렇다면, 한국 창작오페라는요? 혹시 경험해 보신 독자분들이 있으십니까? 아마 거의 안 계실 듯한데요. 이 단어는 꽤나 음악을 좋아한다는 음악애호가들에게도 낯설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흔히 ‘한국 창작오페라’는 통상적으로 서양음악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 작곡가들에 의해 창작된 작품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용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예술은 모두 창작된 것이지 창작이 아닌 예술 작품이 있나?’라는 생각도 들고, ‘한국 현대오페라’라 바꿔 불러봐도 시대적으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시대는 각자가 살고 있는 ‘현대’이니까요. 그러니까 사실 ‘한국 창작오페라’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유럽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장르 오페라와 구분하기 위한 용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은 학문적인 목적으로 정교하게 쓰인 글은 아닙니다. 오페라 보는 것을 좋아하고 마침 오페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지금도 오페라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한 음악학자가 한국 창작오페라에 보내는 연애편지와 같다고 할까요? 한국 창작오페라에 대한 진심의 애정과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담았습니다. 그렇기에 작품 각각에 대한 자세한 분석 혹은 비평의 성격을 띠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국 창작오페라를 둘러싼 여러 겹의 외피들, 즉 한편으로는 대본과 작곡에서 출발하여 연출과 연주를 거쳐 청중의 눈과 귀에 닿기까지의 과정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적 혹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창작에 대한 지원과 제도, 공연장 전반에 대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소회를 담았습니다.




전성기일 수도… 위기일 수도…

보통 한국 창작오페라의 첫 작품으로 1950년에 발표된 작곡가 현제명의 오페라 《춘향전》을 꼽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대략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 땅에서 한국 작곡가에 의해 수많은 작품이 탄생되었습니다. 한 세기가 채 지나지 않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역사를 가진 한국의 창작오페라는 지금까지 대략 150여 편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죠. 초창기 대부분의 오페라는 전통적인 설화나 민담,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구비문학이나 고전 등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오페라’라는 서구 음악 장르의 틀에 ‘한국’적인 것을 담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립오페라단 제작 창작오페라 《레드슈즈》 포스터. 이미지 출처: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제작 창작오페라 《빨간바지》 포스터. 이미지 출처: 국립오페라단


2019년과 2020년 즈음에 한국 창작오페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됩니다. 한 기사에서는 2020년 여름을 ‘본격 성장기’라 진단합니다.(1)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오페라단, 예술의전당 등 국립단체 주도로 여러 작품이 창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한 이유도 있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국 창작오페라의 소재와 주제가 다양화, 다변화되었다는 점을 더 중요한 이유로 꼽을 수 있겠는데요. 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시대도 과거부터 현재까지 넓어졌고, 한국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기보다 현대인의 보편적인 욕망과 인간성,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많아졌습니다.


한국 창작오페라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데에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창작산실’의 역할도 크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오페라 창작 경험이 거의 없는 신진 극작가와 작곡가를 선정하여 지원하는 이 사업은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걸출한 신인 예술가를 발굴했을 뿐 아니라, 소재나 주제, 작곡과 연출 등 다방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미약하나마) 창작오페라의 토대를 튼튼히 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여기에 세종 카메라타의 활약 역시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2012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대본 독회와 리딩 공연을 통해 작품을 수정 보완하여 보다 완성도 있는 공연을 관객에게 선보이고자 했습니다. 특히 소극장에 적합한 공연 형태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창작오페라의 의미 있는 진일보를 가져왔답니다.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 재연된 《달이 물로 걸어오듯》 포스터. 이미지 출처: 소극장오페라축제조직위원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 재연된 《김부장의 죽음》 포스터. 이미지 출처: 소극장오페라축제조직위원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는 한국 창작오페라의 ‘성장기 혹은 전성기’라 자신 있게 진단하는 대신, ‘위기’일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70년이 넘는 창작오페라의 역사에서 초연에 그치지 않고 재연을 넘어 자주 공연되는 생명력이 긴 작품이 없다는 사실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18, 19세기 호황을 누리던 오페라의 자리를 지금은 아무래도 청중에게 쉽고 재미있고 익숙하게 다가가는 뮤지컬과 같은 대중예술이 대신하고 있지요.


20세기 이후 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대중성과 상업성을 포기한 대가로, 낯설지만 새로운 사유와 신선한 감각적 경험을 선사하게 되었습니다. 대중 문화와 예술이 분화하기 시작한 20세기 초 철학자 아도르노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에 대한 낯섦이야말로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이다”라고요. 종합예술작품인 오페라는 그야말로 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장르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창작오페라 작품 하나가 초연된 후 전문가와 비평가, 청중 각각의 입장에서 다양한 논의가 펼쳐지는 ‘담론의 부재’가 아쉬울 따름입니다.




지나치게 ‘한국적’이고 ‘고전적’인 한국 창작오페라

창작오페라 《허왕후》 무대인사 장면. 이미지 출처: 월간 리뷰


최근 들어 지방자치단체와 지방문화재단의 직간접적인 지원과 지방 민간오페라단의 협업으로 여러 오페라 작품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김해시와 김해문화재단이 제작한 오페라 《허왕후》, 포항오페라단과 경북문화재단의 《선덕여왕》, 서귀포시의 창작오페라 《이중섭》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꼭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공연이 성사된 게 아니라 해도, 최근 들어서는 지역의 속성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니까 해당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한 종교적이거나 예술적으로 뛰어난 인물 혹은 영웅적 면모를 가지고 있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그 지역에서 실제 벌어졌던 사건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많아졌다는 것이죠.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적 소재에 지나치게 함몰되었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입니다. 무대 배경과 장치, 의상 등에서 한국적인 것을 강조한다는 의미는 작품이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는 방증일 겁니다. 현대 한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살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과거의 역사에서, 과거의 인물들에게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찰할 수 있습니다만, ‘한국’을 드러내는 획일적인 장치로만 작용하는 것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예술가나 영웅이 오페라의 주인공일 때는 한 인물을 중심에 두고 서사가 펼쳐질 수 밖에 없는데요, 한 사람이 사회를 이끌어가고 예술을 선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영웅 중심의 서사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창작오페라 《선덕여왕》 중. 이미지 출처: 경북매일
창작오페라 《이중섭》 무대인사 장면. 이미지 출처: 서귀포시

예술작품에서 한국적인 소재와 무대배경, 장치, 소품 등을 통해 내부적으로 한 민족공동체임을 깨닫게 하거나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순진한 믿음이라고 봅니다. ‘한국 오페라의 세계화’ 혹은 ‘K-오페라’ 등 여러 캐치프레이즈가 있습니다만, 예술작품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의 ‘세계화’가 아닌, 문화예술정책의 일환으로 의도적으로 추구된다면? 오페라가 당국이나 정권의 프로파간다로 전락할 위험이 생겨납니다. 작품이 21세기 한국의 현대사회, 즉 ‘지금 여기’의 모습을 담고, 인간 본연의 존재론적 실체를 드러내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세계화는 자연스레 뒤따라올 결과일 겁니다.




드라마와 음악, 음악과 극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감각적인 이해와 경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하는 지원사업 〈공연예술창작산실〉 중 ‘올해의신작’ 홍보 이미지. 이미지 출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저는 국가와 정부 주도의 지원사업, 국공립단체의 프로젝트,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오페라단의 협업 등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작품의 소재를 이해관계에 따라 제한하거나 미리 규정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훨씬 더 기초적인 차원에서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입니다. 현재 오페라 대본을 쓰는 많은 극작가들은 음악, 특히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작곡가들 역시 ‘극’과 ‘드라마’에 대해 잘 모를 뿐더러, 신인인 경우 무대를 염두에 둔 대규모 공연예술 장르로서 오페라를 작곡해 본 경험도 전무후무할 겁니다. 오페라 연출가가 극히 드물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따라서 이들 창작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오페라 창작의 반대편에는 분명 음악을 즐기고 오페라를 사랑하는 관객이 있습니다. 서구의 오페라 관객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공연을 보고 극문화에 익숙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수많은 오페라극장들이 각 극장별로 관객 발굴과 유치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초등학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토론하고 직접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에서부터 이민자나 외국인을 위한 교육 및 해설 프로그램,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열린 워크숍 프로젝트, 극장을 방문한 이들을 위한 분장, 무대장치, 음향 시설 탐방 프로그램 등이 있습니다. 친숙하고 익숙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함이지요. 우리도 공연 전 진행되는 ‘작품에 대한 해설’ 외에 다양한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차이들’이 역동하는 우리 시대 오페라의 비상을 꿈꾸며

창작오페라 《1945》 중. 이미지 출처: 국립오페라단


지난 씨샵레터 46호에 소개한 ‘K-Pop, K-Classic에 K는 없다!’에서 필자는 문화의 역동성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문화는 그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지만 불변하는 속성으로 고정되는 게 아니라, 다른 것과 대면하고 충돌하면서 분열되고 해체되며, 물리적-상징적인 지역을 떠나 이동하고 유목하며 새롭게 형성되는 거라고 말이죠. 오페라는 17세기 서유럽에서 탄생되어 현재 21세기 한국 사회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원형의 모습만을 선망하고 신성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당연히 지양되어야 할 태도입니다. 또한 서구 오페라라는 틀에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든 욱여넣으려는 시도 역시 지나간 민족주의적 유행입니다. 서유럽과 동아시아의 크나큰 지역적 차이만큼이나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각자의 차이를 대면하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차이들이 만나고 상쇄되고 때로는 새로운 힘으로 변환되는,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우리 사회를 오롯이 담아내는 오페라 작품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반영되어 있는 작품, 혹은 우리로 하여금 감각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 우리 곁에 풍부히 쌓이는 현상을 상상해 봅니다.


(1) “한국의 창작 오페라, 드디어 성장기일까?” [객석] 2020년 8월호: https://auditorium.kr/2020/08/한국의-창작-오페라-드디어-성장기일까-dialogue/↩

(2) Die Fremdheit zur Welt ist ein Moment der Kunst.







63호_VIEW 2024.03.21.
글 ∙ 강지영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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