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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샵레터 Sep 19. 2024

'선업튀' OST, 장면과 화면 사이

                 

                                        글 ∙ 권현석

                                                전임연구원




<선재 업고 튀어>, 열기를 내뿜다

올여름 참 뜨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부터 서서히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속에 후끈한 공기가 여전히 섞여 있는 것 같네요. 이 공기의 한 편은 더운 바람, 다른 편은 젊음의 열기. 이 열기는 아시아와 그 너머에서 일렁이는 한류의 지류들 안에 실려 오는 듯합니다. 그 흐름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신드롬이 일으키는 한국 드라마의 물결인 듯합니다. 이 드라마는 제목의 독특함만큼 방송되는 동안 화제성이 컸습니다. 또 일본부터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인기가 많았어요. 주인공 커플의 이름의 글자를 하나씩 따서 만든 ‘솔선’과 짝을 이루는 단어 ‘수범’을 내세우며 시청자 팬덤 ‘수범이’가 등장했습니다. 캐릭터를 생생하게 구현한 두 배우 변우석과 김혜윤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팬덤이 형성되었습니다. 〈선재 업고 튀어〉 신드롬의 기운은 종영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서늘해진 요즘 바람에 열기가 남아있는 것처럼.

<선재 업고 튀어> 포스터. 이미지 출처: tvN

작가 김빵의 웹소설 ‘내일의 으뜸’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류선재(변우석)와 임솔(김혜윤)이 시간 여행 속에서 운명을 바꿔 가며 만들어 가는 로맨스입니다. 자신에게 희망을 심어 준 최애 가수 이클립스의 보컬 류선재, 그의 죽음으로 인해 한없는 절망에 빠진 솔이는 우연한 기회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선재의 과거를 바꿔 그를 살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정 속에서 솔이가 여러 차례 위기에 처하고, 그러한 솔이를 선재가 구하려고 합니다. 드라마는 결국 두 주인공이 서로를 구하는 결말로 이어지지요.




신드롬, 그 첫사랑의 새로운 해법

〈선재 업고 튀어〉 신드롬의 요인은 무엇일까요? 우선 이야기의 측면에서 보면, 드라마가 ‘첫사랑’이라는 불멸의 테마를 앞서 언급한 독특한 방법들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시간 여행’입니다. 시간 여행은 여러 가지 면이 있습니다. 환상적이면서 동시에 복고적입니다. 그러면서도 한시적이지요. 그래서 신비감, 그리움,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다른 하나는 ‘상호 구원’입니다. 상호 구원은 한쪽이 어느 한쪽을 구하는 것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줄 수밖에 없지요. 〈선재 업고 튀어〉는 이러한 방법들을 긴밀하게 엮어서 첫사랑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필적할 만한 익살스러운 에피소드들을 섞으면서요.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흥미로우면서도 절절하게 다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음악의 측면에서 보면,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깊게 스며드는 OST를 이야기 공간 안팎에 절묘하게 배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쾌하면서도 애절한 OST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악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어떤 때는 이야기 안의 공간(내재 영역)에서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음악으로 나옵니다. 캐릭터가 노래를 부르거나 극 중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어떤 경우는 이야기 바깥 공간(외재 영역)에서 그들이 듣지 못하는, 시청자들에게만 들리는 음악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두 공간을 절묘하게 가로지르기도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카페에서 캐릭터에게 흘러나오는 특정한 음악이 편곡된 버전으로 시청자에게 들리는 음악으로 이어서 나오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선재 업고 튀어〉 OST는 서로를 향한 두 주인공의 마음을 드라마의 내·외재 영역에서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애절하게 드러내며 시청자에게 한 걸음씩 다가갑니다. 선재가 보컬로 참여하는 극 중 밴드 이클립스의 ‘Run Run’, ‘Star’, ‘소나기’부터 김형중의 ‘그랬나봐’(2003, 유희열 작사·작곡)를 리메이크한 엔플라잉 유회승의 ‘그랬나봐’, 에이티즈(ATEEZ) 종호의 ‘A Day’, (여자)아이들 민니의 ‘꿈결같아서’, 십센치의 ‘봄눈’, 하성운의 ‘선물’까지 다수의 수록곡이 널리 향유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유회승의 ‘그랬나봐’를 살펴보려 합니다. 이 노래는 이야기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가운데, 결국 시청자들을 서서히 연결하니까요.




'그랬나봐', 장면에서 나와 흐르나 봐

대표적인 OST 중 하나인 유회승의 ‘그랬나봐’는 첫사랑의 감정을 담아내는 노래로 드라마 전반에서 여러 번 나옵니다. 그중 5화의 ‘데이트 신’에서 노래는 짧지만 인상적으로 등장합니다.


잠깐 이 신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2023년을 사는 1990년생 솔이는 최애 가수 류선재의 죽음을 접한 뒤, 경매로 구입한 선재의 시계를 쥐고 오열하다가 갑자기 2008년 고3 시절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19살의 선재를 만납니다. 선재는 옆 학교 수영부 선수입니다. 2023년의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솔이는 선재가 걸어갈 길을 다 알고 있지요. 그것은 수영 대회에 참여해 어깨 부상을 입고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나중에 우연한 기회에 가수가 되고, 스타가 되지만 악플에 시달리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여정. 솔이는 큰 계획을 품고 이 과정의 첫 출발점인 수영 대회 참가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합니다. 결과는 실패입니다. 선재는 대회에 나가고 결국 어깨 부상을 입습니다. 그런데 때는 박태환 선수가 머지않아 금메달을 따게 될 시점. 미래를 알고 있는 솔이는 그날 깜짝 데이트를 신청합니다. 수영을 할 수 없는 선재가 혼자 있다가 박태환 선수의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까 봐 그랬지요. 데이트하면서 거리 곳곳에서 중계되던 문제의 경기를 못 보게 하려고 솔이는 온 몸을 던집니다. 발랄하고 엉뚱하게, 그러나 진심으로.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는데, 라디오에서 중계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이때 솔이가 갑자기 헤드폰을 선재에게 씌웁니다. 그리고 유회승의 ‘그랬나봐’가 화면에서 흘러나옵니다.




솔선 커플, 그 너머의 시청자를 향해


이미지 출처: tvN

유회승의 ‘그랬나봐’는 이야기 안과 바깥 공간을 가로지릅니다. 그러면서 세 가지 연결망을 만듭니다. 하나는 솔이와 선재입니다. 솔이에게 ‘그랬나봐’는 가수가 된 이후 선재가 팬들을 위해 자주 불러온 특별한 노래입니다. 솔이가 선재에게 씌워 준 헤드폰에서는 당시가 2008년이기에 리메이크 버전(2024)이 아닌 원곡(2003)이 나왔을 거라(나와야 했을 거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헤드폰의 음악이 솔이에게는 안 들렸겠지요. 그러나 솔이는 마음속에서 그 노래를 잔잔히 되뇌는 가운데 상대를 향한 마음을 키웠을 것입니다. 선재는 헤드폰으로 생생히 들으며 그랬겠지요.


다른 하나는 솔선 커플과 시청자입니다. 솔이가 선재에게 헤드폰을 씌웠기에 원곡이 사실 선재에게만 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원곡과 비슷한 리메이크 버전이 선재의 귓가를 슬며시 빠져나와 이야기 바깥 지대에서 유유히 흐릅니다. 그 가운데 이 노래는 시청자에게만 들립니다. 다르게 말하면, 시청자는 리메이크 버전을 통해 선재가 듣고 있을 원곡의 한 측면을 ‘엿듣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노래에 실려 있는 선재와 솔이, 그 내면의 목소리와 함께.


또 다른 하나는 그 시절 원곡을 향유했던 시청자들입니다. 이 그룹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원곡을 들었던 1990년생 솔선 커플과 동년배 집단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즈음 원곡을 좋아했던 1990년생 위·아래 사람들입니다. 유회승의 ‘그랬나봐’를 통해서 이 두 그룹은 원곡을 새롭게 경험하며 따로 또 함께 특별한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자 은근한 연대감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 유회승의 ‘그랬나봐’를 들으면서 이들은 드라마 너머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히 관계를 맺는 듯합니다.

이미지 출처: tvN

〈선재 업고 튀어〉에서는 우산이 서로를 잇는 중요한 매개체로 나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릴 때, 선재가 솔이에게, 솔이가 선재에게 우산을 천천히 씌워줍니다. 드라마의 OST는 이 풍경 너머로 흘러나오며 시청자에게 스며듭니다. 사람들은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각자 상상 속에서 시간 여행을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지키려는 ‘첫사랑의 이야기’를 다시 그려 갑니다. 어쩌면 〈선재 업고 튀어〉의 열기는 바로 그 뜨거운 마음이며, OST는 그것이 타오르도록 점화한 한 줄기 빛인지도 모르겠습니다.







67호_VIEW 2024.09.19.

글 권현석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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