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사운드아트

타자를 '귀 기울여' 듣는 예술적 실천

by 씨샵레터


글 ∙ 강지영

전임연구원





바야흐로 '생태학의 시대'

“생태학을 언급하지 않고 현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시대를 ‘생태학의 시대’라 부를 만하다.” 미국의 환경 역사학자 도널드 워스터(Donald Woster)의 책 『생태학, 그 열림과 닫힘의 역사』(아카넷, 2002)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1970년대 후반에 출판된 이 책은 삼사십 년이 훌쩍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서구에서 생태학 교과서로 애용되고 있는데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워스터는 생태학을 생명의 근원으로서 자연을 인간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는 '목가주의'와 이성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확립하는 '제국주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 두 흐름이 생태학에서 실질적 긴장을 만들어 냈을 뿐 아니라, 생태학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이 충돌하는 역동적인 학문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후 위기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생태적 사고로의 전환이 더욱 필요해진 시대, 예술 분야에서도 현대 사회의 생태와 환경에 대한 비판 의식으로부터 출발한 다양한 장르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image (1).png 이미지 출처: Allianz

그런가 하면, 우리 시대 주목받는 철학자 중 하나인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은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 전쟁, 초강력 전염병, 인공지능의 급습 등 21세기 인류를 위협하는 상황을 진단합니다. 다만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믿음에 매몰되는 순간, 실제 일어날 확률이 큰 진짜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고 경고하지요. 그러니까 ‘재앙적 사고’ 대신 변화의 순간에 대처하는 철학적 사유를 강조하는데요, 따라서 명료한 명제를 전제로 하는 과학이 아니라 간접적이고 암시적이면서 함축적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지만 그 본질 자체가 ‘정치적’인 철학과 예술에 희망을 걸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먼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비인간 객체들의 자율적 실재성을 강조하는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을 주장합니다. 사람, 동물, 식물은 물론이고 제각기 존재하는 사물, 심지어 추상적 개념까지 모두 객체로 보는 이런 관점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즉 주체와 객체의 위계를 해체하고 모두 독립적인 객체로서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태적 사고로의 전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생태적 행위로서의 '듣기'

최근 들어, 다른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감각과 방법으로 ‘귀’와 ‘듣기’가 주목을 모으고 있습니다. 눈과 귀의 전통적인 이분법적 관점에 의하면, ‘눈’은 타자에 대한 즉각적이고 피상적이면서 일방적인 관념을 가져다줍니다. 반면 ‘귀’는 즉각적인 정보 대신 점차적으로 축적되는 관계망으로 열리며, 밖으로 향하는 눈과 달리 언제나 내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듣기’는 피상적이기보다 본질적이고 일방이 아니라 쌍방으로 다른 존재와의 연결을 조심스레 시도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폴린 올리베로스 - 딥 리스닝 (official trailer)

미국의 초기 아방가르드 전자음악 작곡가이자 명상음악가 폴린 올리베로스(Paulin Oliveros)는 ‘딥 리스닝’(Deep Listening)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전면적으로 열린 감각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경험하는 태도라 정의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나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심장의 박동 등 자연, 기계, 사람의 모든 소리를 판단 없이 받아들이는 청취를 말하며, 이는 소리 환경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 더 많은 것을 더 섬세하게 듣게 합니다. 그리고 ‘경청’하는 행위는 소외된 목소리 혹은 비가시적 존재의 소리를 듣게 함으로써 나와 타자, 자연과 사회의 존재 방식을 숙고하게 합니다.




생태 이슈에 적극 개입하는 생태 사운드아트

음악이 자연의 소리를 작품의 소재로 가져오는 것은 무척 흔한 일이었습니다. 비발디의 ⟪사계⟫나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등 음악사에서 무수히 많은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예들이 단순히 자연을 모방하거나 반영한 것이라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생태 사운드아트(ecological sound art)는 현대 사회의 생태 이슈에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새소리나 바람 소리, 물소리 등 자연환경 속의 소리를 소재로 하여, 인공 소리와 결합하여 생태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을 뜻합니다.


다니엘 블링크혼 - frostbYte

생태 사운드아트의 몇몇 작품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다니엘 블링크혼(Daniel Blinkhorn)은 <frostbYte>(2012-2015) 시리즈를 통해 빙하에서 나는 소리를 활용하여 빙하가 녹는 과정의 역동성을 전달합니다. 야코브 키르케가르드(Jacob Kirkegaard) 역시 설치 작품 <Isfald>(2007)에서 그린란드의 얼음이 녹는 소리와 빙하의 균열음, 땅속의 진동 등을 소리로 변환하여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소리에 접근합니다. 자나 원더렌(Jana Winderen)의 작품 <Silencing the Reefs>(2011-2014)은 산호초와 그 생태계의 소리 경관의 변화를 탐구합니다. 이들의 작품은 빙하가 녹는 과정이나 산호초가 오염되는 과정과 같이 너무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리로 전달함으로써, 환경 파괴나 기후 변화 등의 생태 재앙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긴박감을 고취시킵니다.


샐리 앤 매킨타이어(Sally Ann McIntyre)의 <Collected Huia Notations>(2015)는 유럽의 뉴질랜드 식민지화로 인해 멸종된 새 소리에 관한 기록입니다. 1907년 후이아 새가 멸종되기 전에 왁스 실린더에 녹음된 후이아 새의 소리를 에디슨 축음기로 재생시키는데요, 재생만으로도 소리가 깨지기 쉬운 매체를 선택함으로써 사라진 것에 대한 회상과 기억을 의도하는 것이지요.피터 쿠삭(Peter Cusack)은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은 체르노빌의 야생 동물을 비롯한 생태계 소리와 함께 원자로 주변의 작업 소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피난민들의 시와 노래를 함께 활용합니다. 그의 <Sounds From Dangerous Places>(2006-2007)은 ‘소닉 저널리즘’의 일환으로, 원전 사고 이후 체르노빌 지역의 복잡한 생태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버니 크라우즈 - The Great Animal Orchestra

버니 크라우즈(Bernie Krause)는 아마존, 태평양, 아프리카, 알래스카 등 전 세계의 자연 서식지에서 육상 및 해양 생물 15,000종 이상의 소리를 5,000시간 이상 녹음한 자료를 바탕으로 <The Great Animal Orchestra>(2016)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동물의 소리와 그 조합을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구성함으로써, 생태계가 소리로 얼마나 정교하게 짜여 있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 다니엘 모나치(Daniel Monachi)는 <Fragments of Extinction>(2002-현재)에서 생태계 각 종의 울음소리가 각각의 고유한 주파수로 들리는 ‘생태 음향적 작곡’(echo acoustic composition)을 시도했는데요, 그가 직접 고안한 생태 음향 극장(echo acoustic theater)을 통해 실제 소리로 구현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생태적 상호연결성에 대해 재고하게 만듭니다.




지리와 역사, 사유와 감각이 공존하는 김서량 작가의 작품

한국에서는 사운드아티스트 김서량(Seoryang Kim)의 작품과 활동이 두드러집니다. 그의 시그니처 시리즈 <도시의 소리>(Sounds of the City)는 특정 도시를 선택해 지형, 날씨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도시의 소리를 포착하고, 때로는 일상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순간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사운드 다큐멘터리’입니다.


김서량 - 영천의 봄 사운드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 하나인 <영천의 봄>은 경상북도의 작은 마을 영천의 자연환경과 지역 주민들의 삶을 소리를 통해 살펴봅니다. 영천 계곡의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와 함께 한국 전통 타악기인 장구를 연주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현지인들의 소리가 어우러지고, 이른 아침 닭 우는 소리, 밭을 가는 쟁기 소리, 늦은 밤 경비견이 짖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특정 지역의 지형과 자연의 지질학적 소리에 기반하지만, 인간과 비인간, 동식물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의 소리에 주목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을 지역의 자연환경 생태계와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는 예술적 시도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기억의 땅 해남>도 살펴봅시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해안 도시 해남의 온갖 자연 경관의 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를테면, 바닷가의 거센 바람 소리,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바람에 날리는 풀잎 소리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자연의 소리를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밭을 갈고 농사를 짓는 소리, 닭과 강아지의 울음소리, 고장 난 가전제품을 찾는 메가폰 소리, 소리꾼의 판소리 등 지역 사회 구성원의 일상의 소리도 함께 담아냅니다.


김서량 - 기억의 땅 해남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옥매광산의 ‘118명 희생 광부 추모비’에 부착된 쇳덩이 소리인데요, 이 기념비는 1945년 전쟁 말기 일본에 의해 제주도로 강제 동원된 옥매광산 광부 118명이 화재로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건을 기리기 위해 2017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파도와 바람이 거세질수록 더욱 커지는 쇳덩이의 소리는 일제의 폭력과 억압에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민중들의 고통스럽고 슬픈 삶, 슬픔으로 가득 찬 우리 민족의 역사를 청각적으로 상징합니다.


<기억의 땅 해남>은 지역의 자연 풍경, 일상의 흔적을 담은 소리와 함께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소리를 통해 현재로 불러냅니다. 추모비 앞에는 사건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어 우리의 ‘사고’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반면, 소리는 우리를 더욱 직접적으로 ‘지각’하게 하여 이 사건에 대해 더 깊은 감정적, 정서적 ‘공감’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는 사회문화적 구성물인 소리에 집단의 역사적 기억과 그것을 생산하거나 인지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각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와 타자, 자연과 사회를 연결하다

“인간적으로 조직된 소리”(존 블래킹)인 음악 작품에 비해, 생태 사운드아트는 “정리되지 않고 솟아나는 소리들”(귀도 아들러)인 자연의 소리를 소재로 하여 그 표면은 상대적으로 울퉁불퉁합니다. 그렇지만 이들 작품은 보이지 않는 생태 변화나 환경 파괴를 ‘들리게’ 하여 청자에게 직접적으로 인식시키고 위기의식을 고취시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자연과 생태를 그저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타자’로서가 아니라, 청각적 몰입을 통해 감정적이고 체화된 생태 인식을 가능하게 합니다. 나와 네가 ‘우리’로 연결되어 있는 생태적 상호연결성에 대해 재고하게 만듦으로써, 주체와 객체의 구분과 위계를 해체하고 공존의 감각을 되살리게 하는 것인지도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소외되고 적대적이며 지배적인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현대사회의 소리에 새겨진 생태적, 역사적,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청취’로 경험하는 예술인 생태 사운드아트와 그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할 듯합니다.







84호_VIEW 2025.06.19.

글 강지영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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