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갈 때까지 얼마나 많은 매체에 둘려싸여 있는지. 모바일폰이 알람 소리로 하루를 깨워주면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부스스한 눈으로 침대 속에서 지난 밤사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온갖 뉴스들을 뒤적여 봅니다. 그뿐인가요? 친구들이 업로드한 피드들은 없는지 각종 SNS도 한 번씩 접속해 보죠. 학교 가는 길에서는 모바일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과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각종 매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매체가 정확히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매체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라틴어 ‘medium’의 복수형, ‘media’입니다. 수단, 도구 등의 뜻으로도 사용되지만, 어근에 있는 ‘med-‘에서 보듯, 이 단어에는 ‘중간’, ‘가운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매체는 중간에서 어떤 생각이나 표현 등을 전달하는 도구, 다시 말해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매체는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무엇이 전달되냐구요? 그것이 바로 매체가 담고 있는 내용, 콘텐츠라는 것입니다.
‘매체’ 하면 자연스럽게 대중 매체(mass media)가 떠오르시겠지만, 매체는 사실 훨씬 넓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희가 음악을 다루는 연구소이니 음악의 예를 들자면 악보는 전통적인 음악의 매체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 오선보, 음자리표, 음표, 쉼표 같은 약속된 기호를 사용해서 악보를 만들면 누군가는 그 기호들을 해독해서 소리로 표현하죠. 악보는 음악을 만든 사람과 음악을 소리로 내는 사람을 연결해 주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체가 단순히 중간에서 무엇인가를 전달해 주는 중립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체는 그것이 이어주는 것들에 맞춰 변화하기도 하지만, 매체에 맞춰 그것에 접속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변화하기도 합니다. 다시 음악의 예를 들어볼까요. 오페라 극장은 사람들에게 오페라 작품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공간이자 그 자체로서 오페라의 중요한 매체입니다. 하지만 19세기 유럽의 오페라 문화와 관련된 기록들은 사람들에게 오페라 극장이 단순히 오페라의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극장의 좌석은 사회 계급이 반영되는 공간이기도 했죠. 돈이 넉넉한 사람들은 박스석 시즌권을 끊었습니다. 그들에게 박스석은 집 바깥에 있는 응접실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죠. 좌석 뒤에는 파티션이 있어서 자신들의 박스석으로 찾아온 이들과 공연을 보면서 대화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페라 극장의 박스석은 사람들이 사교와 비즈니스를 겸하던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오페라 극장은 오페라를 전달해 주는 하나의 도구 역할을 했지만, 이 도구를 단순한 중개 기능을 넘어서는 것으로 만든 것은 그것을 사용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매체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은, 매체는 중간에서 이어주는 역할뿐만이 아니라 이 매체에 연결된 행위자들이 매체에 맞게 자신을 조절했다는 점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마크 카츠(Mark Katz)는 그의 유명한 저서 『소리를 잡아라』(Capturing Sound, 마티, 2006)에서 20세기 초반 녹음 기술과 함께 등장한 음반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음악과 관련된 행위들을 얼마나 급진적으로 바꿔 놓았는가를 흥미 있게 설명해 줍니다. 1877년 토마스 에디슨은 전화와 전신기에 착안해서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할 수 있는 포노그래프를 고안했습니다. 원래 소리는 발생하는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죠. 하지만 소리를 저장해 놓고 그것을 필요할 때 다시 들을 수 있게 해준 기술이 얼마나 새로웠겠는지 상상이 가시나요.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구의 목소리가 포노그래프를 통해 나올 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20세기 초반 오케스트라의 스튜디오 녹음이라는 것은 오늘날 상상하기 힘든 모양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소리를 모아주는 역할을 하는 커다란 깔때기를 중심으로 완전히 다른 배치로 연주했죠. 너무 큰 소리로 연주를 하면 소리가 찌그러질 수 있었기 때문에 지휘자는 세심하게 음량을 체크해야 했고, 연주자들은 불필요한 소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몸짓도 최소화해야 했습니다.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보이지 않는 음반 청취자들에게 더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짙은 비브라토를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예시들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이 매체에 접속한, 이 매체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행위자들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이 남긴 유명한 문구, ‘매체가 곧 메시지다’를 여기에 대입해 본다면, 매체를 마주하는 우리는 매체에 걸맞게 우리의 행위를 조정합니다. 그것은 곧 더 나은 소통을 위한 우리의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하죠.
매체는 시간에 따라 변합니다. 특히 지난 20세기 동안 음악 청취를 위한 매체들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왔는지 생각해 보세요. 앞서 말씀드린 SP, LP 음반부터 시작해서 카세트테이프, CD, MP3, 그리고 이제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청취를 위한 매체의 역사는 곧 기술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매체와 기술은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매체에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음악이 작동하는 근본적인 방식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이 변화의 발자취 속에서 음악이 전통적으로 맺고 있었던 공간과의 끈끈한 관계는 희미해졌습니다. 20세기 초,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복제 기술이 예술 작품을 아우라와 제의적 가치에서 해방시켰다고 말했을 때 그가 향하고 있던 것은 주로 사진과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매체의 세계 속에서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한 방식으로 벤야민이 말했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에서 이제 우리는 모바일폰의 터치 한 번으로 모든 종류의 음악을 찾아봅니다. 각종 듣기 도구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음악은 언제, 어디에서나 향유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음악은 우리의 일상 속에 통합되고 있습니다. 모바일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출근하고, 음악을 들으며 운동을 합니다. 디지털 기술은 음악을 우리의 일상의 사운드트랙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어쩌면 아도르노가 ‘산만한 청취’라고 폄훼했던 듣기의 방식은 디지털 기술의 일상화와 함께 가장 보편적인 듣기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의 듣기 활동이 남기는 인터넷상의 흔적들은 데이터가 되어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의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지, 어떤 플레이리스트로 듣는지, 어떤 신용카드를 결제에 사용했는지 등등요. 디지털 기술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편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것은 우리를 감시하고 검열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매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을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것은 끊임없이 오래된 것들을 참조해서 탄생하구요. 이제 우리의 듣기 환경을 이야기할 때 매체는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환경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항상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환경이 건강한 것인지, 다음 세대에도 지속가능한 것인지 생각하잖아요. 우리의 듣기 행위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양한 매체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소리와 매체에 대한 관심이 향하고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82호_VIEW 2025.05.15.
글 정이은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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