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 속에서 나를 묻는다.
90년대 어느 제과 회사 초코바 TV 광고. 당시 대히트를 친 드라마 <모래시계>의 시그널 음악이 흐르고, 남자 주인공 최민수가 광고 모델로 기차 창밖을 바라보며 내뱉는 독백.
“나를 찾지 마. 나는 나를 찾고 싶어.”
내가 과자를 좋아해서였을까, 짧은 카피가 강렬해서였을까, 드라마 음악의 여운 때문이었을까.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은 내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직장 생활 27년 차. 이직은 몇 번 있었지만, 한 번의 공백도 없이 계속 일해왔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때가 IMF 시절이라 첫 취업까지 약 8개월의 공백이 있었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어서 특별히 불안하진 않았다. 다행히도 운 좋게 일자리를 얻었고, 경력을 이어간 덕에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생기고 집도 장만했다. 어쩌다 보니 “경기도 자가에 중견기업 다니는 천부장(요즘은 수석이라 부른다)”이 되었다.
우리 회사는 건설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다. 요즘은 최악의 상황이다. 27년 회사 생활 동안 경기가 안 좋았던 시기는 주기적으로 있었지만 그때마다 난 별생각이 없었다. 회사 일이 너무 많아 걱정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스스로 “난 일복이 많은 사람이야”라고 자조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시황이 급변했다. 공장에서 생산할 물량이 급감했고, 개인적으로 시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 같으면 숨 돌릴 수 있어 좋았을 텐데, 왠지 모를 불안과 불편이 밀려왔다.
내 나이 만 52세. 전현직장에서 사무직 내 또래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소수 남아 있는 이들은 임원이거나 주요 리더로 활약하는 정도다. 특별히 기여할 일이 없는 내가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건지, 월급루팡이 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무겁다. 퇴직 후 경력을 어떻게 꾸려갈까 궁리만 했지,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은 없었던 게 후회스럽다. 조직 생활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나 1인 기업으로 독립하는 꿈을 꾸었지만, 그건 막연한 상상에 불과했다.
광고 문구처럼 가끔 나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특별한 재능도 없으며, 대인 관계도 좁은(인맥도 많지 않은) 나 — 부정적인 생각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성향 때문에 더 부지런히 일했고 오래 회사에 붙어 있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퇴사 후 진로를 고민하는 지금, 오히려 내가 꿈꾸는 프리랜서·1인 기업가로의 독립을 위한 동력이 생기는 시기이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깊이 생각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씩 실행해 보려 한다.
“나를 찾지 마. 나는 나를 찾고 싶어.”
이 문장이 내게 주는 위로와 채찍을 번갈아 느끼며,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