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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사? 그보다 먼저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180602 가천의대 20주년 홈커밍데이 기념 선배들의 특강 및 간담회


p1 전체 화면


반갑습니다 99학번 가천의대 2기로 입학했던 응급의학과 전문의 최석재입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이름 앞에 붙는 타이틀이 여러 가지죠?

어떤 타이틀을 붙이느냐에 따라 사람이 좀 달라져 보이기도 하고

여기 계신 여러분은 의사가 되실 예비 의사 신분으로서

전문의 최석재라는 타이틀이 부러워 보이기도 할거 같고요


그런데 의사가 되면 인생의 목적을 다 이룬 걸까요? 아니겠죠?

그래서 의대생 신분으로서 여러 강의와 강연을 듣게 되겠죠 저도 그랬고요

어떤 강연이었나요? 제 학생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런 의사가 되어라 이런 의사는 안된다 의사로서 진로는 이런 게 있다

자세히 보면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에 대한 말씀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의사가 되면 앞으로 평생 의사로서만 살면 되나요?

환자 잘 보고 정확히 진단해서 확실하게 치료해주면 소임을 다 한 건가요?


아니 그보다 행복한가요? 물론 행복하죠 이런 직업이 어디 흔합니까?

다른 사람을 치료해주고 보람을 얻고 금전적으로 보상도 넉넉하고요

생각해보세요 좋은 일 하면서 돈도 버는 직업이 둘러보면 그리 흔치가 않아요

그런데 사람 맘이 참 간사한 게 이렇게 좋은 직업임에도 쳇바퀴 굴러가는 일상에

끼어 돌아가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왜 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어떤 의사로서 살지 보다 먼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때가 오는 거죠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제가 사는 방식, 한번 들어보실래요?



p2 저 최석재는?


제 소개가 늦었네요 앞에 자기소개했는데 왜 소개가 늦었다고 하냐고요?

응급의학과 전문의 최석재 말고 보여드리고 싶은 제 모습이 많거든요

방송에 여럿 출연하면서 생긴 자신감 있는 나 가 그 첫 번째일 테고요

그중에서 종편이나 케이블 빼고 공중파 방송에 출연했던 기록을 정리해봤습니다

또 하나 작년에 새로 얻은 이름은 작가 최석재라는 이름인데요

어쩌다 보니 응급실에 아는 의사가 생겼다 라는 책의 저자가 되었고

지금은 두 번째 책 엄마 아빠를 위한 응급실 주치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름은 제 소중한 아들과 두 딸, 세 명의 자녀를 키우는 아빠라는 이름이 되겠죠

요즘은 이 세 번째 이름에 가장 시간과 정성을 많이 쏟고 있는 것 같네요



p3 2007-2009 MBC 닥터스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1년 차 2년 차 때 길병원 응급센터에서 촬영했던 닥터스가

첫 번째 소중한 추억이자 첫 번째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 9만 명, 지금은 10만 명 훌쩍 넘었죠? 그렇게 많은 환자가 오는 응급실에서

닥터스 촬영에 협조했던 게 영상물로 남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동료들이 카메라 오면 찍지 말아달라 그러고 인터뷰 피하고 그러는 바람에

촬영에 협조했던 제가 더 부각되어서 나오게 되었거든요

이후에 이어지는 방송 활동에서 침착하게 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죠

당시에 봤던 많은 환자에 대해 블로그에 비밀글로 기록해 놨던 내용들이

훗날 정리되어 결국 책으로 엮어지는 기회도 생기게 됩니다



p4 2008 EBS 극한직업


2년 차 때 극한직업을 촬영했는데요, 닥터스는 응급센터 전체가 주인공이었다면

극한직업이 어떤 주인공 역할을 한 첫 방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방송 나가고 나서 교수님들이 석재야 그렇게 힘들었니? 물어보면서 잘해주시길래

갑자기 왜들 이러시나 하고 방송 내용 확인해봤더니 마지막 인터뷰에 엄청 불쌍한 모습으로 나왔더라고요

인터뷰 내용이 칭찬받는 날은 없어요 원망도 많이 되죠 그래도 이 일이 매력 있어서 후회는 안 해요 그랬었죠



p5 2014 KBS 생명최전선


한참 지나서 생명최전선을 찍었었어요. 무료진료소 요셉의원이라고 아시나요?

2014년 성탄절 기념으로 가난한 이들의 병원, 노숙인의 벗 요셉의원이라는 방송이 나갔어요

당시에 요셉의원에서 의료 봉사하는 많은 선생님들께 죄송하게도 제가 대표로 찍혀서 나갔는데 그때 인연이 많은 것을 바꿔놨습니다



p6 기타 사회 활동


그 외에는 웬만한 강연에서는 잘 얘기 안 하는데 의대생 후배님들이니까 말씀드릴까 합니다

지금은 생각에 차이를 느껴서 활동을 중단하고 있는데 한동안 인도주의 실천 의사협의회에서 활동을 했었어요

2015년 당시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극심할 때 진료 나갔던 사진입니다

여기는 서울시청 옆에 인권위원회 있던 건물 옥상에서 찍은 사진이고요

그 위에 설치된 광고탑에서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두 분이 고공시위하던 현장입니다


같은 일 하는데 비정규직이라고 임금에서 차별받고 해고에서도 차별받는 것에 대해

항의하고 복직을 요구하기 위해 올라가셨는데

경찰에 포위되다시피 해서 밥도 물도 안주는 바람에 건강 문제가 심각했었죠

제가 갔을 때가 49일째 인가 그랬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결국 363일 만에 내려오셨고

광고탑 업주로부터 고소당해서 빚더미에 앉게 되고 집까지 압류되셨더라고요 세상 참 모집니다


다음 사진은 같은 해 다음 달에 있었던 민중총궐기 의료지원 나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날 시위 시작 전부터 분위기가 평소랑 많이 달랐어요 차벽도 여러 겹 치고 초장부터 최루탄 냄새났고

처음에는 선봉 쪽에 있다가 최루액 쏘기 시작하니까 아예 못 버티겠던데요

눈물 콧물 쏙 빼고 의료진은 후방으로 빠져서 최루액 눈에 맞은 사람들 씻어주고 그러고 있었는데

그날 제일 선봉에서 농민 백남기 어르신이 최루액 물대포 맞고 쓰러져서 서울대병원 실려갔었죠


뉴스만 보고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빨간 우비가 무릎으로 때렸네 뭐 이런 소리 했었는데

현장에 있었으면 그런 소리 못할 겁니다 그 하얀 액체가 단순한 물대포가 아니라 다 최루액이었기 때문에

그 현장은 숨을 쉬기도 힘든 그런 상황이었어요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거길 들어간다고요? 말도 안되죠


그 외에 다시 좀 소프트한 얘기로 돌아가 보자면 알오, 알아야 오래 산다 라는 인터넷 방송을 촬영하면서

제 이름을 내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 생겼어요 옆집 아재 같은 쉬운 의사라는 의미에서

내 몸 아프거나 가족이 아프면 쉽게 카톡으로 물어보시라고... 새벽에도 아무 때나 물어오십니다

한 60-70여분이 들어와 계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시죠 엉뚱한 질문도 많긴 한데 뭐 즐거워서 하는 거니까요


다른 건 딴짓하는 의사로 이름을 타니까 중고교생 자기주도 진로학습 관련해서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김포 관내 중, 고등학교에서 직업인 특강 할 때 참여도 했었고 하나고등학교 TED 강연도 했었고 그렇습니다

학생들이 요청하는 강연은 어지간하면 참여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경험과 딴짓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이어지게 되었을까요?



p7 연결과 연결, 이어짐


2008년 동생이 먼저 요셉의원을 알고 제게 이런 곳이 있다고 소개를 해줍니다

당시에 요셉의원을 설립하고 20년 가까이 혼자 고생하며 끌고 가시던

고 선우경식 원장님께서 위암으로 돌아가신 해에요

당시에 했던 다큐멘터리를 치대 학생이던 동생이 보고 저한테 같이 가보자고 한 거죠

그때가 레지던트 2년 차 때라 24시간 일하고 6시간만 자고 또 일하고 그럴 때라 마음도 몸도 여유가 없었어요

가서 살짝 들여다만 보고 연락처 남기라는 말에 도망치듯 나왔었습니다


이후에 요셉의원에 마음의 빚이 남아있다가 4년 차 되던 2010년 처음으로 봉사 진료를 시작했죠

응급실이 없는 병원이니까 정형외과 같으면 어느 정도 볼 수 있겠다 했더니 내과가 제일 필요하대요

외래 보는 건 전혀 경험도 없던 때인데 내과 선생님 붙잡고 고혈압약 당뇨약 짓는 것만

일단 가르쳐달라 해서 불안감 가득한 채로 첫 진료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9년째 진료 중이니까 지금은 어지간한 외래 진료는 가능하게 되었죠

특히 작년부터 응급의학과에서 통증 진료하는 선생님 두 분이 오셔서 금요일 통증 외래를 여는데

여기 오시는 분들이 다 막노동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근육통을 주사로 해결해주는데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 2014년에 KBS 생명최전선을 촬영하게 되는 거죠


이 영상을 보고 서울대병원에서 강연 요청이 와요

주제가 홈리스 환자와 요셉의원이었고 이 강연에서 연이 닿은

응급의학회 공보이사 신상도 교수님 추천으로 학회 공보위원에 위촉이 됩니다

공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심폐소생술 교육 홍보 차원에서 SBS 자기야 백년손님에

출연도 하게 되었죠 마라도까지 가서 찍느라 한여름에 2박 3일간 좋은 여행 했죠

EBS 메디컬 다큐 7 요일 촬영도 있었는데 이때엔 우연히 같이 간 둘째 딸이랑 같이 출연해서

좋은 추억이 생겼습니다


말만 많이 하니까 재미없죠? 잠깐 쉴 요량으로 영상 준비했습니다

https://youtu.be/wKH4hW8VQa8?t=5m6s




p8 태초 먹거리와 책 출간


다음이 책이 나오게 된 사연인데요

태초 먹거리 이계호 교수님 아시나요? 이계호 교수님은 충북대 화학과 박사님이신데

20대 초반인 따님을 유방암 재발로 잃으셨어요


우리가 암 처음 진단되고 나면 수술 항암 끝나고 나서 환자분께

자 당신은 완치되었으니 일상생활하십시오 이러잖아요?

그 일상생활이라는 게 뭡니까? 다시 스트레스받고 발암물질 듬뿍 먹어가면서

사회생활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다 다시 암세포 키워서 재발되는 거고요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할 게 아니라 어떤 게 암세포가 줄어드는 좋은 생활이고 식습관인지

우리가 환자분께 가르쳐줘야 마땅한 건데 그러질 않잖아요?

이런 현실을 고쳐보고자 태초 먹거리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하시는 분이세요


이분과 활동을 하면서 태초 먹거리 책을 출판했던 사장님이 또 태초 먹거리 활동에 참여하고 계시거든요

함께 활동하다 제 책도 내주십사 이렇게 인연이 된 거죠

덕분에 책이 나오고 나니 작가라는 타이틀도 생기고

그 덕에 MBC 라디오 건강한 아침 이진입니다 수요일 고정 코너도 하게 되고

딜라이트와 굿닥에서 필진으로 참여해 달라 해서 글도 계속 쓰고 있고요

인연이 어떻게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거죠



p9 어떤 인연이 또 어떤 경험으로 이끌까?


앞에 죽 들으셨지만 제가 이런 삶을 살겠다고 처음부터 계획하고 왔을까요?

아니죠 그냥 당장 있는 기회에 충실하니까 인연이 연결되고 연결되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냥 순간순간 열심히 지치지 말고 한 걸음씩... 그거죠


오늘이 6월 2일이니까 생명최전선 찍어줬던 메인 PD 가 알고 보니 동갑내기여서

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이 친구가 김포로 이사 오는 날이에요

그 집 아들내미랑 저희 첫째랑도 친해져서 같이 포켓몬 게임하면서 식사했던 사진이고요

현직 PD 친구와 어떤 시너지가 나는 활동을 하게 될지 저도 참 기대가 되는 그런 날입니다




p9 정리


그럼 제가 원하는 삶은 어떤 거였는지 알려드릴 차례가 되었네요

저는 좋은 의사로서의 삶도 너무 소중하지만 그보다 앞서서 마지막 가는 날에

후회 없이 한평생이라는 여행 잘 마치고 간다 하고 웃으면서 눈감는 걸 목표로 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 의사로서의 삶도 있고 방송인으로서의 삶도 있고 작가로서의 삶도 있는 거겠죠


제가 후배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의사라는 타이틀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한번 사는 인생 후회 남지 않게 즐거운 것들을 망설이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지치지 않고 진득하게 한 걸음씩 해보시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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