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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201006 부명고 온라인 강의 사전 질문과 답변 1


1 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어렸을때부터 의사에 대한 꿈은 어렴풋이 있었어요. 호기심 많았던 시절에 필통에 붙어있던 온도계 깨서 맛보다 실려간 기억, 여자아이 엉덩이에 주사놓는다고 하다 몇일동안 호되게 혼났던 기억. 고등학교때는 수능성적 조금 더 올라가면 의대갈 수 있겠다 싶어서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2 의사 외에 다른 꿈이 있었나요?


초등학생때엔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흥미를 많이 느껴서 컴퓨터 관련 공학자가 될 줄 알았어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컴퓨터가 내손안에 있는 시대가 아니고 동네에 컴퓨터 살 여유되는 집이 한두집밖에 없는 시기라 컴퓨터를 쓰려면 학원에 가야하는 때였으니까. 부모님께 열심히 졸라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는거에요. GW basic 이란 프로그램을 1년동안 배우고나서 로터스123 데이타베이스 이런 지금으로 치면 엑셀 워드같은 프로그램을 배웠던 기억이 나요. 시간 지나면서 시흥 안산에서 컴퓨터 제일 잘하는 학생 두 명중 한명이라는 얘기도 듣고. 그때 쌍두마차를 이뤘던 친구는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궁금하네요. 그러고나서 당시에 처음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시험이 치러졌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3급 보고 저랑 친구랑 학원 선생님만 2급 시험봤던 기억이 나요. 셋중엔 선생님만 붙었지요. 그때 전국 최연소 합격자로 뉴스에 나왔던 사람이 그때 저보다 한살 많았으니까 그 시험 붙었으면 또 다른 길로 가고 있지 않을까요?



3 현 직업의 단점 혹은 불편함은 무엇인가요?


잠, 주말 연휴, 고통의 기억



4 사람의 죽음에 대한 기억,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는지?


의사가 사망선고를 해야 죽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 특히 예기치 못한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죽음은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의사가 사망선고를 해야한다. 교통사고나 공사장에서 낙상으로 인한 외상으로 발생한 죽음, 3-4개월 영아가 뒤집기하다 발생하는 죽음 앞에서 부모의 오열 등을 겪으면서 그 기억을 켜켜이 쌓고 살게 된다.



5 어떤 순간에 이 일에 보람을 느끼는지?


사람 살렸다는 느낌 드는 순간. 환자가 의식은 없고 산소 수치 점점 떨어지고 혈압 뚝뚝 떨어지면 식은땀 난다. 기관삽관 하고 인공호흡기 달고 모드 조정해서 산소수치 오르면 강심제 달 굵은 혈관을 잡기 위해서 중심정맥관 삽관이라는 시술을 하고 강심제 농도 맞춰서 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환자 상태가 안정에 이르면 보호자 대기실에 가서 걱정 가득한 얼굴로 두손모아 기다리는 보호자께 위기는 넘겼다고 설명하면서 뿌듯함 느낀다. 그 과정 거쳐서 심폐소생술 했던 환자가 깨어나서 일어나서 걸어나가면서 인사하는걸 직접 경험하면 이 일하길 잘했다 싶다.



6 어마어마한 암기량 어떻게 헤쳐나갔나?


암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게 암기력이 너무 약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도 지명, 사람 이름 이런걸 기억 못해서 난감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사람 얼굴도 잘 기억 못해서 10분 전에 본 환자 보호자가 뭐 물어보는데 누구세요 하면 보호자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볼 때 죄송하다. 누구나 약점은 있기 마련. 인정하고 대안을 마련하면 되는 법. 내 기억을 믿지 않고 메모와 알람을 적극 활용해서 일상은 대처하지만 공부할 때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잠 안자고 시험보는 방법을 활용. 의대 시험은 1주일 내내 치러지는데 첫날밤 밤새 공부하고 아침부터 시험 치르고 나면 저녁이 되는데 저녁때 당시 좋아하던 순대국밥 두그릇 먹고 들어가 기숙사에서 푹 자고 새벽 1시쯤 일어나 다시 밤새 준비해서 아침부터 시험보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마다 시험보는 요령, 공부하는 방법 다 다르니 무조건 따라할 건 아니라고 본다.



7 선배 의사께 크게 혼났던 기억?


인턴 레지던트 1년차 동안은 일상이 계속 혼나는 시기에요. 응급실에서 1차로 초기 진단과 처치를 하고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면 각 질환의 진단에 따라 2차로 해당과에 연락을 하는데, 예를 들면 폐렴이면 내과로, 골절이면 정형외과로... 그런데 처음에 문진부터 시작해서 검사 오더 내는 것, 판독에서 실수, 이런 세세한 부분들에서 다 혼나가면서 배워요. 환자는 계속 신규 환자가 쌓이지, 결과 나온 환자 해결은 안되지, 그러니까 좋은 말로 차근차근 가르쳐 줄수가 없는 환경이에요. 소리지르고 혼나면서 다시 정신차리고 환자보고 그러는거죠.


그중에서 학생때 심하게 혼난 날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그날 환자가 젊은 여자 태권도 사범님이었는데 대련하다가 귀가 찢어져서 응급실에 왔어요. 당시 본과 3학년 학생이었는데 인턴 선생님 허락하에 작은 상처들 하나 둘 꼬매보고 자신감이 조금 생기던 시기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는데 그땐 몰랐으니까 귀 찢어진 것도 제가 꼬매볼께요 했는데 인턴 선생님이 어떤 환자인지도 모르고 그냥 알아서 하라고 했던거에요. 원래 귀는 연골이 피부에 가깝게 붙은 조직이라 염증생겨서 문제되는 경우가 많아 응급의학과에서 안꼬매고 이비인후과에 의뢰해서 꼬매거든요. 그걸 모르니 신나게 꼬매고 있다가 당시 2년차 선생님께 발견되었는데 선생님이 조용히, "학생 선생님 잠깐만 나와봐요" 해서 영문 모르고 꼬매다 말고 뒷방으로 끌려갔죠. 그날 무슨 짓을 한건지 아냐는 둥 눈물 쏙빠지게 혼나고 울면서 기숙사로 터벅터벅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8 솔직하게 의사하길 잘했다 하는 순간?


환자가 좋아졌을 때에도 그렇고 티비에 나와서 하는 얘기들에 사람들이 주목해줄 때에도 그렇고 여러 순간순간에 의사되길 잘했다 하는 상황이 많지만 솔직하게 하나 더 기억나는 순간은 첫 월급 받았을 때. 의사는 첫 월급 받는 시기가 의사국가고시 치르고 처음 인턴 들어가서 받지만 그때엔 일하는 것에 비해 아주 박봉을 받게 되어요. 24시간 한달 내내 병원에서 먹고자고 하면서 일하고 나면 통장에 190만원 찍히는데 어려운 과 도는 달에는 확인할 틈도 거의 없고 정신없이 지내죠. 인턴 스케줄 중에서 좀 편한과 돌때에야 통장 확인할 여유 생기지만 돈 쓸 시간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요. 1년 인턴 생활 중에 한달 정도는 오후에 퇴근하는 과도 있거든요? 진단검사의학과랑 직업환경의학과, 병리과 이런 과가 환자 직접 안보는 과라 퇴근이 있었어요. 그러면 친구만나서 좀 놀 기회가 있죠. 그 외에 과는 잠 잘 시간 주어지면 다행인 정도.


그러고나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된 뒤에는 일하고 돌아오면 잠만 자고 다시 일하는 반복. 스케줄이 올 나이트 오프 이렇게 짜여졌는데 올은 24시간 연속 근무, 끝나면 8시간 정도 잘 시간 주어지고 바로 나이트 근무 14시간, 그러고나서 20시간 정도 오프. 20대 젊은 때였으니 그렇게 일했지 동료중에 늦게 의대 들어온 30대 형들은 정말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렇게 레지던트 끝나고 3년의 공중보건의나 군의관 생활 끝나고 해야 정식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받는 첫 월급을 받으니까 다른 직장인보다 늦지만 높은 연봉을 받기 시작해요. 2차병원 봉직의사로서 첫 월급이 일반 직장인 월급의 3-4배 되니까 받고나서 우와 이런 큰 돈을 받아도 되나 했던 설레였던 느낌이 아직 남아있어요.



9 곤란한 환자 유형은? 대처법은?


응급실에서 가장 곤란한 환자는 역시 술취한 환자에요. 뉴스에서 들어보신 적 있죠? 만취한 환자가 의자 내동댕이 치고 카트 뒤집어 엎고 심하게는 의사 폭행하고. 응급실에서는 매일 밤 벌어지는 일이라고 보면 되어요. 119 대원도 발길질에 맞고... 법이 주취자를 엄벌해서 술먹고 실수하면 큰일난다는 걸 사회에 인식시켜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법은 주취감경이라고 해서 술먹고 범죄를 저질러도 형량을 깎아주잖아요? 경찰들도 와서 제지를 제대로 안하는 경우가 많고. 민원 들어오거나 하면 골치아프니깐. 요즘엔 음주상태로 교통사고로 사망사고 내면 중범죄로 처리하는 법도 생기고 하던데 진작에 더 강력하게 대처해야 우리 술문화도 바뀌고 취해서 하는 실수를 용서하는 문화도 없어질 것 같아요.



10 처음 외과 수술을 할 때 무섭지 않았나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왜 안그랬겠어요? 누구나 처음 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는 건 당연하죠. 학생때는 수술방에 들어가도 먼 발치에서 구경하다시피 보니까 충격이 덜한데 인턴때 여러 과를 돌면서 수술방에서 직접 필드에 들어가서 사람 장기를 만지게 되는 경험을 처음 하게 되요. 사람 피가 이렇게 따듯하구나, 살아있는 장기는 이렇게 말캉말캉 하구나. 근데 뭐 피곤해서 금방 정신없이 일만 하게 되니까, 옆에서 레지던트 선생님이 소리지르고 화내고 하면 감상에 젖을 여유는 없다고 봐야죠. 학생때 한두명이 피보고 정신잃고 쓰러져서 나가고 그러는데 다 금방 적응해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적응하는 동물이라니까요. 자기가 감내할 수 있는 환경이면 조금씩 더 험한 환경에 노출이 되어야 할 수 있는 범위가 커지는 것 같아요.



11 응급실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나요?


응급실에 급한 환자들이 오는 방법이 크게 두가지에요. 하나는 걸어오는 방법. 하나는 실려오는 방법. 119나 129에 실려오는 분들은 중한 환자인 경우가 많으니까 바로 보고 바로 조치할 것 하고 그래야 하고 걸어오는 환자들은 초진을 최대한 빠르게 보고 중한 질환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걸러서 급한 검사를 하는게 중요해요. 예를들면 40대 남자 환자가 가슴이 아프다고 움켜쥐면서 걸어들어왔다. 그러면 경력있는 고년차 레지던트나 펠로우 교수가 초진을 보고, "인턴 선생님, 심전도부터 찍어" 하면 심전도만 먼저 급하게 찍어서 확인하고 심근경색이라는 바로 급사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닌지 판단을 먼저 하죠. 


ST분절 상승 심근경색이라는 판단이 되면 바로 레드룸이나 오렌지룸인 중환구역에 눕혀서 수액 달고 생체징후 파악하는 모니터링 달고 심장 혈관 급하게 열어주는 약인 니트로링구알 수액을 준비하고 그 사이에 니트로글리세린이란 약 혀밑에 넣고 녹이라고 하고 아스피린, 플라빅스라는 약 씹어서 먹게 하고 동시에 심장내과 연락해서 심혈관조영술과 스텐트 삽입술 준비해달라고 하고... 혈압 낮으면 강심제 들어갈 굵은 혈관 잡는 중심정맥관 삽관술이라는거 진행하면서 시술 준비 될때까지 환자 바이탈을 유지시키는 게 우리과 의사가 할 일이에요.


만약에 심근경색은 아니라는 판단이 되었다 그러면 옐로우 룸으로 옮겨서 덜 급한 환자로 판단하고 수액과 약물 들어가고 혈액검사 나올때까지 지켜보면서 지켜보게 되죠.



12 응급실을 찾아오는 환자분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점이 뭔가요?


제일 중요한 것 하나만 알아주시면 되어요. 응급실은 응급환자를 위한 공간이라는 것. 우리 의료체계가 많이 왜곡되어 있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응급실을 자기가 급하면 찾는 곳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응급실로 비싼 돈 주고 왔는데 왜 빨리 안봐주냐 그런 소리 하거든요. 응급실은 일반 외래 볼 환자 오지말고 급한 환자만 오라고 응급의료관리료를 받는데 이게 작은 응급실은 2만원, 큰 응급실은 6만원 정도 되어요. 급한 질환으로 온 게 맞다고 의료진이 판단하는 경우에만 이 금액을 반만 지불하고 나머지 반은 의료보험공단이 내게 되는 구조에요. 경한 질환인데 응급실 오면 본인이 다 내야 하고. 피부에 뭐 났다, 체한 것 같다, 발목 삐었다 이런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진료보는 정도이고 심하게는 손발톱 염증생겼다는 것부터 피부에 뭐 났는데 궁금하다 이런 것까지 응급실로 와요. 자기 학교가고 직장가고 그런 시간엔 바빠서 병원 못오니까 밤에 응급실에 돈 좀 더 내고 진료보지 뭐 이런 심리일텐데 제도를 고쳐야 이런게 바뀔텐데 아직까진 바뀌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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