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응급 주치의] 중에서
[도와주세요!]
방금 끓인 국을 엎질러 아이의 팔이 데었습니다. 일단 고인 물로 식혀주긴 했는데 수포가 잡혔네요.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요?
[의사의 답변]
물집이 생길 정도의 화상이면 2도 화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화상 부위를 충분히 고인 물로 식혀주고 화상 초기 처치를 위해 가까운 응급의료기관에 방문해야 합니다.
[집에서 따라 하는 응급처치]
가장 중요한 초기 처치는 고인 물로 화상 부위를 식혀주는 것입니다. 얼음을 바로 대거나 치약, 소주를 발라서는 안 됩니다. 편의점에서 구매 가능한 시원한 생수나 수돗물로 10분 이상, 가능하면 30분가량 식혀줄 것을 권장합니다. 이후 화상 초기 처치를 위해 가까운 응급의료기관에 방문하세요.
[의사 아빠의 응급 이야기]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하루하루가 다이내믹합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위기 상황을 겪고, 그 위기의 순간을 겨우겨우 막아내고 나면 온몸에 진이 빠진다는 표현을 실감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힘들어서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큰 사고가 벌어지기도 하지요.
아이들이 생후 10개월이 되면 사고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저희 셋째 아이의 경우 10개월 때 기어 다니는데 도가 터서 온 집안을 쓸고 다녔고, 벽을 잡고 설 수 있게 되면서 제 키의 반만 한 가구가 보이면 겁도 없이 기어 올라갑니다. 또 누가 호기심 대장 아니랄까 봐 갑자기 웩웩하며 헛구역질해서 살펴보면 입안에서 희한한 장난감이 나오기도 합니다. 입에 집어넣을 만한 작은 물건은 다 치웠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디선가 찾아서 입에 넣은 것을 보면서 식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새벽부터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고단함에 잠깐 꾸벅하고 졸면 셋째 아이가 어느새 또 아슬아슬한 곳에서 곡예를 하고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법이니, 사실 저는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어렸을 적, 수많은 곡예를 했던 흔적들이 제 몸 이곳저곳에 남아 있으니까요. 제 양쪽 허벅지엔 큰 화상 흉터가 있습니다. 겨우 세 살 때의 일인데 그때의 아픔이 얼마나 컸던지 당시의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삼촌을 따라 들어간 주방, 식탁에 놓여 있던 젓가락, 컵라면에 물이 부어지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컵라면 용기 안에 맛있게 생긴 건더기들이 녹고 있었거든요. 옆에 놓인 젓가락을 들어 그 고명을 집어 들었다 싶었는데, 양반다리를 하고 있던 세 살 어린이의 다리, 그 연한 피부에 방금 끓인 뜨거운 물이 엎질러지고 만 거죠.
그때 너무 아파 울면서 눈물방울 사이로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본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없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으니 그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붕대를 감은 채 퇴원했다고 합니다. 그대로 상처를 잘 관리했으면 좋았으련만, 다음날부터 자전거를 타고 노느라 붕대가 다 풀려도 모르기를 수차례였다고 하네요. 이러니 흉이 남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화상을 입은 아이가 오면 붕대를 감고 나서 풀리지 않도록 추가 조치를 해주곤 합니다. 화상으로 인해 응급실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정수기를 만지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에 손이 끼어 데인 아이, 엄마가 방금 탄 뜨거운 커피를 호기심에 잡아끌다가 덴 아이, 전 부치는 데 어느 틈에 기어 와서 기름판에 올라가겠다고 하다가 화상을 입은 아이 등 여러가지 상황에서 화상을 입고 응급실에 옵니다.
여기서 화상의 초기 처치에 대해 한 번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일단 성인이든 소아이든 화상이 발생하면 차가운 생수나 수돗물로 환부를 씻어주어 화기를 빼줘야 합니다. 화상 부위를 비비거나 닦으면 안 되고 흐르는 물이나 받아놓은 물에 찬 물을 보충해 가면서 최소한 10분 이상, 가능하면 30분가량 식혀줄 것을 권장합니다.
고인 물에 지나치게 오랜 시간 노출되면 아무래도 피부가 아리면서 아이가 힘들어합니다. 그럴 때는 온도를 미지근하게 조절하더라도 화상 부위의 열을 식히는 작업을 멈추면 안 됩니다. 바깥 피부는 차갑더라도 안쪽에는 화기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환부를 물 밖으로 빼면 곧 수포가 올라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간혹 물이 아닌 다른 물질로 화기를 빼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소주와 치약, 간혹 된장을 바른 다음 응급실에 오시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는 좋은 처치가 아닙니다. 알코올이 기화가 잘 되고 치약은 시원한 느낌이 있어서 착각하시는 거죠. 피부 안쪽의 화기를 식히기 위해서는 차갑고 값싼 다량의 수돗물을 대신할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소아 화상은 대부분 손을 데는 경우가 많아 처치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조금 큰 아이들은 치료할 때 협조를 해주지만 돌 전후의 아이들에게 협조를 기대하기란 어렵겠죠. 어렵게 처치를 마치고 난 후에도 아이들은 손의 붕대가 불편해서 풀어버리려고 하므로 손에 양말을 씌우는 등의 방법으로 붕대를 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응급실에서는 보통 다음날까지 화기를 빼줄 젤리가 묻어 있는 화상 전문 재료를 덮어 도움을 드립니다. 흰색 화상 크림을 바르는 예도 있는데, 이것은 화기가 충분히 빠진 경우에만 유효합니다.
수포가 잡히지 않은 1도 화상은 외래를 통해 화상이 더 진행되지 않는지 1~2일 정도 지켜봅니다. 방금 끓인 물에 데면 맑은 수포가 잡히는 얕은 2도 화상인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치료 기간도 2주 정도로 길게 잡고 외래를 통해 지켜봐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치료만 잘 되면 큰 흉터 없이 나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 외에 고온의 기름에 데이거나 불에 직접 데이거나 하면 깊은 2도 또는 3도의 중한 화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과 발, 관절 부위, 얼굴이나 성기 등 기능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면 화상 전문 병원에서 입원해서 치료받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상처를 관리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기타 특수한 화상을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아가 겪을 수 있는 특수한 화상의 대표 격은 전기 손상일 겁니다. 콘센트에 젓가락을 넣거나 피복이 벗겨진 전선을 만지거나 입에 넣다가 발생하죠. 다행히 일반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220V 전기는 신체 내부까지 흘러 들어갈 정도의 전압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아의 경우에는 좀 더 조심할 필요가 있겠죠. 혈액 검사에서 이상이 있거나 경련이나 구토, 의식장애 등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되었다면 응급실에서 진료받고 입원 치료를 고려해야 합니다.
[꼭 기억해주세요!]
수포가 잡힌 2도 화상은 초기에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경과가 많이 달라집니다. 합병증을 막고 흉터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초기 처치와 이후 보름간의 상처 관리가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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