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하니

[요셉의원 이야기 151104] #2

의학의 발전이 거듭되면서 병과 사람의 관계는 점차 달라집니다. 감염질환이나 외상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들고 평균 연령은 늘어남에 따라 암과 여러 성인병을 포함한 만성 대사질환에 대한 공포는 늘어갑니다.


특히 사망 원인의 30% 이상이 각종 암인 이 시대에 암의 공포는 그 어떤 공포보다 큰 것이겠지요. 비단 이 공포는 생활에 여유가 있는 자와 없는 자에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먹고살 길이 더 막막한 어떤 분들께는, 그 고통과 걱정이 암의 공포를 누를 정도로 크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진료실에 깡 마른 한 중년의 아저씨가 들어오셨습니다. 평소 혈압과 통풍, 어깨 인대에 염증으로 요셉의원에서 약을 타 드시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필요한 약을 처방해 드리고 습관처럼 물었습니다.


어디 다른 데는 불편한 데 없으시죠?



이로서 진료를 마치고 약 타러 가시란 뜻에서 드린 말씀이었는데 뜻밖에 아저씨는 요즘 자꾸 혈변을 본다는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요셉의원에 오시는 분 중엔 알코올 중독인 분들이 많기 때문에 혈변 또는 검은 변을 본다는 것은 굉장히 급박한 질환인 위장관 출혈 또는 식도정맥류 출혈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 이었습니다. 급히 추가 문진을 시작했습니다.




아저씨는 술은 종종 마시지만 아직 중독이라 할 정도로 매일 마시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혈변은 약 한 달 전부터 시작되었고 변 끝에 약간 묻어나오는 정도로 시작했습니다. 평소 치질이 있던 터라 처음엔 치질이 악화돼서 나오는 피인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변을 볼 때마다 그 혈변의 양이 많아졌고 지금은 변비가 아닌 묽은 변을 보는데도 혈변이 함께 나올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어렸을 때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얼마 전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환자도 이미 대장암 걱정을 하고 있었던 듯, 가족의 암 병력 이야기를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꺼내어 얘기하고 계십니다.




당장 위, 대장내시경을 해야겠다 결정한 저는 진료의뢰서를 쓸 용지를 찾았습니다. 요셉의원에서 한 달에 한번 정도 봉사하시는 분이 있어 위내시경은 가능하지만 대장내시경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위 연계된 병원을 통해 의뢰서를 쓰고 특별히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헌데, 환자는 고개를 저으며 다른 병원은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혹시 비용 문제 때문에 그러시나 싶어, 비용은 요셉의원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드리겠다고도 했지만, 환자는 극구 검사를 거부했습니다. 다음번에 상황 보고 하겠다고만 하셨습니다.


글쎄요, 그럴 겁니다. 두려울 겁니다. 모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신지도 모르죠. 혹시 검사를 했다가 암이 진단되고 나면 그 상황을 대처할 수 있을지, 치료나 제대로 할 수 있을 런지, 아프다고 하던 일도 잘리고 나면 먹고 살 일이 지금보다 더 막막해지진 않을지, 그런 걱정이 크지 않았을까요? 직접 물어볼 순 없었습니다. 더 잔인한 질문이 될 테니까요.




혈변양이 점점 늘고 있고 가족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임을 재차 설명하고 다음번엔 꼭 위, 대장내시경을 받아보자 설명하고 대신 요셉의원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검사인 혈액 암 표지자 검사를 내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쯤 결과가 나올 텐데 부디 혈액 검사에서 별 이상이 없길 기도해봅니다.


151104 최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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