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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이 Apr 09. 2018

폭력의 일상화 그리고 우리의 자화상

"슬픈 일이에요. 폭력이 일상화된다는 게..."

슬픈 일이에요. 폭력이 일상화된다는 게...

해외에서 끔찍하고 혼란스러운 시위 현장이나 테러 현장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1년 전 즈음, 스페인 나바라 지방 팜플로나에 있을 때 시위 현장에 휘말려 변을 당할 뻔했던 일이 있다. 화염병이 오가며 폭발음이 터지고 경찰들의 강압적인 현장 진압 때문에 비명소리가 가득했던 그 날, 수많은 인파 속 틈바구니에 껴서 부리나케 도망가던 순간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다음날이 되자 전날의 끔찍했던 흔적은 모두 지워지고 평상시 아침처럼, 시청에서 출발한 전통 악기단이 밝은 아침을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가득 채울 뿐이었다. 마치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인 듯 말이다. 간접적이든지 직접적이든지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시위폭발음과 비명소리가 가득했던 2017년 03월 11일의 스페인 팜플로나  


2018년 03월 02일. 부르키나 파소의 수도 와가두구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과 프랑스 문화원, 국방부 등의 주요 시설 부근에서 폭발음을 동반한 총기난사 테러가 있었다. 차량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시가지에서는 매우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이 분명했지만,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은 군인도, 경찰도, 통제도 없던 평상시와 같은 모습이었다. 오직 현지 라디오의 뉴스만이 바쁘게 사상자 속보를 전할 뿐 막상 가깝게 지내던 현지인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불안감에 라디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건 지구 반대편에서 찾아온 동양인 청년, 나 혼자였다. 오히려 먼저 안부 연락을 주며 걱정해준 건 현지 한인사회와 늦은 밤의 서울이었다.

긴박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주던 International SOS  


물론 부르키나 파소에는 해마다 이러한 사건들이 반복되기에, 한편으로는 현지인들의 시큰둥한 반응이 이해가 되지만... 이들 역시 폭력의 일상화에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하루였다.

테러 소식보다  생계가 우선인 듯 머리 위에 과일을 가득히이고 바삐 움직이는 현지인


같은 날, 미국의 미시간주에 있는 한 대학에서도 총격사건에 의한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 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총기 관련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총기규제를 강화하자는 목소리는 그때뿐, 해가 저물고 다음날 해가 뜨면 전날의 비극은 덮어지고 다시 평범한 일상이 반복된다.

2016년 07월 09일, 백투백 슈팅 사건 관련 소식을 연신 보도하던 시카고 버스 스테이션 TV 속 CNN 방송


"슬픈 일이에요. 폭력이 일상화된다는 게..."
영화 강철비에서 전면전 직전의 긴장상태에 놓인 한반도를 두고 말한 극 중 CIA 지부장 조앤 마틴의 대사이다. 그렇다. 폭력의 일상화에 노출되어 있다는 건 비극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가 많다.


물론 개인적으로 하루라도 빨리 평화통일이 되길 희망하지만 집이 북한과 접경지대에 있는 나로서는 종편 뉴스 논설위원들이 한반도와 주변국의 긴장상황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노파심에 먼저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면 '정월대보름날에 새삼스럽게 그런 걱정을 하냐'며 역시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반도에서 이번에는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더라'는 아무개의 아무개의 의견에 우리들 대부분이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참으로 아이러닉 하다. 코앞에서 테러가 일어나도 지구 반대편 한반도를 먼저 걱정하고 있지만 정작 그곳에서는 이곳 부르키나 파소를 먼저 걱정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분명한 점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폭력이 일상화되고 폭력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는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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