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재도전

버킷리스트가 사라진 30대

일이 바빴다는 핑계로 한 달이나 글을 묵혔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흐릿해진 기억을 꺼내 기록해 본다. 연초에 은서와 나누었던, 20대와 30대 그 어디쯤의 대화들이다.




버킷리스트가 사라진 자리


은서는 매년 다이어리를 사고 버킷리스트를 적던 사람이었다. 그 리스트엔 4년째 지우지 못한 '엄마와 외곽으로 드라이브 가기' 같은 문장들이 살고 있었다. 나 역시 그랬다. 남들에게 보여주려 인스타그램에 보란 듯이 10개씩 목표를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 우리 둘 다 리스트를 적지 않았다.


30대에 접어든 우리는 안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시도했다 실패한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도전하고 싶은 가짓수 자체가 줄었다는 걸. 이제는 이것저것 나눠 쓸 에너지가 없다. 그저 오늘을 살아내는 데 급급한, 아주 작은 에너지의 총량만을 쥐고 있을 뿐이다.


슬슬 하나씩 고장 나는 현실


은서: “20대 때 여행 많이 가라는 말, 다 체력 때문이었나 봐요."


새벽까지 놀고 첫차를 타던 객기는 사라졌다. 밤샘 작업을 하면 회복 탄력성이 바닥을 친다. 몸 어딘가가 슬슬 고장 나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다. 한 선배는 서른이 되면 편해진다고 했다. "포기할 걸 포기하게 되거든." 그 말이 맞았다.


20대 땐 붙잡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불안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잃을 게 없어서 초연하다. 은서는 배우로서 예전 같으면 망설였을 파격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연기도 "시켜만 주세요"라며 달려든다. 몸을 사리던 시절보다 지금의 우리가 훨씬 가볍다.


나야 재도전


20대의 나는 태재 작가처럼 위트 있고, 김상민 작가처럼 담백한 글을 쓰는 크리에이터를 꿈꿨다. 매주 뉴스레터를 보내며 아웃풋을 냈지만, 일이 바빠지면서 '퀄리티'라는 핑계 뒤로 숨어 글쓰기를 그만뒀다.


은서 역시 자비에 돌란이나 구교환처럼 연출과 연기를 다 하는 '올라운더'를 꿈꿨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만큼 따라주지 않는 능력에 좌절하기도 했다. 우리 둘 다 무언가를 만들어 인정받고 싶어 하다가 넘어진 기억이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시작하려 한다. 거창한 목표는 없다. 은서는 배우들의 독백을 찍어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나는 과거의 창고에 처박아두었던 소설을 꺼내 각본으로 써보려 한다. 선배의 말처럼 30대는 포기할 걸 포기할 줄 아는 나이라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니까.




얼마 전, 흑백요리사2를 재밌게 봤다. 어쩌면 더 재밌게 봤던 이유는 재도전 했던 최강록 쉐프를 응원하면서 봐서 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넘어지지만 그 와중 다시 일어나서 재도전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런 용기를 내는 것에 용기를 내야하는 사회.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꿈을 재도전 한다.


우리는 이 묘한 해방감 속에서 '바질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외쳐본다.

"우리야, 재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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