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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기본 정신

by 인문학도 최수민

진부하지만 들을 만한 이야기 네 가지 정도를 준비했습니다. 학문이 기억해야 할 기본 정신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저는 대학원생도 아니고 평범한 학부생일 뿐입니다. 그래도 연구자가 되길 희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학문이라면 마땅히 이어가야 할 정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뭐 대학원에 가려고 하는 사람이 많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학문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아래 내용을 한 번씩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학문의 출발점은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일상에서는 함부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늦은 밤에 다른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저 집은 늦게까지 안 자네'라고 판단했다고 합시다. 하지만 실은 늦게까지 안 자는 게 아니라 불을 켜놓고 잠들었던 거죠. 일상에서는 이런 사소한 일까지 정확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것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태도가 곧 학문의 시작입니다. 물을 끓였더니 물 양이 줄어든 것을 관찰했다고 합시다. '물이 없어졌어. 왜 없어졌지? 아니야, 없어진 게 아니라 어딘가로 이동한 걸 수도 있어. 신중해야 해.' 이런 태도가 여러 이론을 궁리하게 합니다. 여기에 호기심이나 체계성이 더해지면 이론이 확장됩니다. 이처럼 학문은 착각을 피하려는 강박 같은 것에서 출발합니다.


학문의 기본 정신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분야가 새로움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수공업 같은 분야는 능숙해지기 위해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합니다. 학문은 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할까요? 모든 이론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진리를 확인받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그럴듯한 이론을 내놓고 고쳐갈 뿐입니다. 조금 거칠고 부실한 이론이라도 괜찮습니다. 개선하면 되기 때문에 새로움에 의미를 두는 것이죠. 이 또한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학문이라면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인간 중심의 편견을 벗어나야 합니다. 어쨌든 학문은 인간이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서 갖게 되는 편견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에는 가시광선만 있는 게 아니죠.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겁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다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인간 중심의 편견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인간, 동물, 사물로 확장될 수 있는, 보다 보편적인 지식을 추구해야 합니다.


질문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자연과학이 인문학보다 앞선다고 본다면 그 차이를 만든 건 질문의 구체적인 느낌입니다. 보통 자연과학의 질문은 굉장히 구체적인 느낌을 줍니다. 우선 자연과학은 수학을 이용해 자연을 표현합니다. 구해야 하는 것이 매우 구체적입니다. 해석하는 사람이 달라도 기본적인 의미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또 자연과학은 공통된 패러다임을 갖습니다. 합의된 틀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함께 하기 쉽습니다. 반면 인문학의 질문은 모호한 느낌을 자주 줍니다. 인문학의 주된 표현 수단은 언어입니다. 언어는 같은 말이라도 맥락에 따라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서 함께 구체적인 문제에 몰두하기가 힘듭니다. 인문학도 질문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학자는 아니지만 학자의 태도를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 시험 치기 바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은 사치입니다. 배운 내용을 익히는 것이 훨씬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자세를 기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고, 편견에서 벗어나고,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것이죠. 그래도 제가 다른 사람 인생에 참견할 수는 없으니 각자 알아서 하는 거죠 뭐. 기억할 사람만 학문의 기본 정신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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