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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철학을 고른 이유

by 인문학도 최수민

예전에는 철학과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성적 맞춰서 가는 학과, 취업 잘 안되는 학과라는 인식이 있었죠. 지금은 어떨까요? 여전히 그런 인식이 남아 있습니다만 그래도 많이 나아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생활 수준이 점점 높아져서 그런지, 진짜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철학과에 가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도 많고요. 다른 학과는 모르겠는데 유독 철학과만 왜 가는지를 많이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동안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왔는데 이참에 깔끔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저는 왜 철학과에 왔을까요?


첫째, 저는 저의 흥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것이죠. 의학이나 공학처럼 실용적인 분야는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철학이 우리 생활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가져다주는 건 책뿐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끼리만 정신적 풍요를 얻을 수 있을 뿐이죠. 저는 철학이 흥미로웠습니다.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남들과 저를 차별화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루는 내용도 고상한 것이 저랑 맞을 것 같았습니다. 겉으로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이든 내용 때문이든 철학이 저에게 지속적인 흥미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저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이것저것 잡다하게 찾아보거나 효율 따지는 걸 귀찮아합니다. 오죽했으면 저는 수강신청할 때도 강의명이랑 강의계획서 정도만 봅니다. 강의 평 하나하나 찾아 따져 보는 게 귀찮아서요. 어느 날은 "철학은 배경지식이 없어도 된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잡다한 배경지식 없이도 누구나 철학적 문제들에 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만큼 어느 곳에서나 찾을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는 드디어 저의 게으름을 품어줄 수 있는 분야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깊이를 더하려면 수많은 자료를 공부하는 걸 피할 수 없겠지만요. 다른 분야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셋째, 저의 제멋대로인 구석 때문입니다. 철학은 비판하는 일이 핵심인 학문입니다. 묻고 답하고, 또 그 답에 대해 묻기를 반복합니다. 기존의 생각, 다른 이의 생각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 줏대가 있어야겠죠. 그게 저랑 맞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제가 평소에 막 남들을 비판하고 그러는 건 아닙니다. 만약 그런다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겠죠. 그런데 제가 뭔가를 선택해야 한다거나 결정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겠다는 데 뭐'와 같은 것이죠. 예전에 애들이 담임 선생님 선물 드리자고 다 1000원씩 냈을 때 저만 안 낸 적도 있습니다. 불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런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또 주변의 걱정을 이겨내고 철학과에 오는 것 같습니다.


저도 철학 지식이 많고 철학자들을 잘 알아서 철학과에 온 건 아닙니다. 철학이 막 좋아 미칠 것 같아서 철학과에 온 것도 아닙니다. 어느 정도 알아보고 저랑 잘 맞을 것 같다고 판단을 한 것이죠. 오히려 사람이라면 철학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철학이 그만큼 가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아직까지 제가 철학과에 가겠다고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사실 정식으로 철학과가 된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후회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만의 공부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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