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을 했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공부든 인간관계든 더이상 학교생활을 잘할 자신이 없었다. 자연스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휴학 초반에는 글쓰기에 매진했다. 거의 매일 카페에 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의욕이 떨어졌다. 밖에 나가는 것이고 글을 쓰는 것이고 모두 귀찮아졌다. 끝내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는 없었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일단 문제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내가 흥미를 느꼈던 일들이 실은 주변 환경에 의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것이었고, 그 환경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자연스레 흥미를 잃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할 때는 재밌었던 게 그 사람과 멀어지고 나서는 재미없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다시 그 환경으로 돌아가면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다시 흥미를 느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흥미를 느끼는 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다고 느끼는 착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란 무엇인가? 심리학에서는 want와 like를 구분한다. want는 단순히 원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아까는 원했던 것을 지금은 얼마든지 원하지 않을 수 있다. 땀 흘리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나면 시원한 물을 원하겠지만 물을 한 번에 한 1L를 마시고 나면 그런 생각은 사라질 것이다. 반면 like는 정말 좋아하는 것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가 힘들지 않냐고 뭐라 하든 말든 등산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다고 착각한 것은 사실 want였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은 like라고 할 수 있다. 주변 환경과 독립적으로 그 흥미가 오직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 즉 like를 찾아야 지금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더이상 want를 like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like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상황을 가정해 보자. 당신은 사회(사람들)로부터 어떠한 요구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에 있다. 아무도 당신에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하지도 않고, 공부를 해라고 하지도 않고, 취업 준비를 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타인과의 교류가 단절된 채 혼자만의 시간을 혼자만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나의 상황처럼. 그런 상황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물론 처음에는 누워서 유튜브, 릴스를 본다거나 게임을 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지내야 한다면? 어쩌면 고립된 그런 상황에서 가지는 의욕으로부터 비롯되는 활동이야말로 진정한 like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의욕을 나는 독립적 의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나는 독립적 의욕이 인생 모든 것의 출발점이자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우선 자신의 독립적 의욕이 무엇이지 찾아라. 그런 다음 독립적 의욕에 따라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 그럴 때 우리는 즐거울 수 있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들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 나는 이처럼 독립적 의욕에 따라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상태를 자립이라고 부르고 싶다. 반면 자신의 독립적 의욕이 뭔지 모르는 채로 산다는 건 인생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과 같다. 나의 모든 흥미가 주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want만 좇으며 사는 것이다. 그러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주변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고 그에 따라 나의 흥미도 끊임없이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독립적 의욕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정리 정돈 욕구인 것 같다. 나는 누가 보는 사람이 없어도, 요구하는 사람이 없어도, 심지어 숲속에서 혼자 자연인으로 살아도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을 것 같다. 이불, 쓰레기 등 눈에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내 머릿속까지 아주 그냥 깔끔하게 정리해버리고 싶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그 일환이다. 누가 시킨 것도,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는 여러 활동들을 정리 정돈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다. 공부를 하더라도 수업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책을 읽더라도 내용과 감상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면 매 순간을 최대한 의미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떠밀려가듯 보내던 인생에서 의도적으로 멀어지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휴학을 통해 학교생활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나를 좀 더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동안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일들을 그저 견뎌야만 해서 괴로웠다. 앞으로는 그런 일들도 나의 독립적 의욕, 즉 정리 정돈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덜 괴롭게, 심지어는 즐겁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거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고, 인생의 방향이 생긴 것 같아서 또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