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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공부

by 인문학도 최수민

대학에 들어오면서 남몰래 다짐을 한 게 있다. "이제 다시는 남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아야지!" 나한테 그동안의 입시 공부는 내가 아닌 남을 위한 공부였다. 나의 정신적 성장을 추구하기보다는 사회가 나를 평가할 지표를 만드는 일에 가까웠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떠밀리고 휩쓸려서 하는 것에 가까웠다. 물론 매 순간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억지로 꾸역꾸역 공부를 했다. 그 거부감이 얼마나 컸는지 나는 아직도 수능 문제지를 보면 살짝 어지럽고 그냥 보는 것 자체가 싫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입시 공부로부터 벗어나면서 앞으로는 반드시 나를 위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부, 즉 나를 위한 공부는 이런 것이다. 첫째, 기꺼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하면 안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공부는 분명히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강하게 믿어 왔다. 만약 공부가 즐겁지 않다면 성적이나 과제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그런 거지 절대로 공부 자체가 괴로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둘째,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얻었는지가 중요하다. 수업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수업은 내 생각을 키우기 위한 '거름'일 뿐이다. 셋째, 나의 현실과 연결되어야 한다. 지식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현실 세계다. 배운 것이 현실 어디와도 관련되지 못하고 머릿속에만 머무른다면 무의미하다. 현학적인 공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대학 수업이 고등학교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더 불친절했다. 교수들은 잘 가르치는 것보다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여전히 과제와 시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쫓기면서 공부해야 했다. 둘째, 나는 공부에 있어서 탈진 상태였다. 억지로 입시 공부를 했던 경험 때문에 공부에 힘을 쏟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는 1년 동안 이어졌다. 셋째, 이상적인 공부를 생각만 해봤지 한 번도 직접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직접 다른 자료도 찾아보고, 교수에게 질문도 하고 하는 게 익숙하지 않고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주변의 누군가가 그렇게 하는 걸 곁에서 본 적도 없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의 결과는 낮은 학점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그러게 수업 꼬박꼬박 똑바로 듣고 학점이나 챙기지 그랬냐"라고 말한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게 공부하고 싶지 않아서 괴로운 입시 공부를 꾸역꾸역 참은 것이었다. 모범생으로 사는 것도 진저리가 났다. 그동안의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컸다. 현실 공부에 대한 내 문제의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 현실과의 타협은 필요하다. 첫째, 공부가 마냥 즐길 수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친구한테 인간이 진화적으로 공부에 최적화된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공부는 즐기기보다는 그냥 익숙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둘째, 수업 내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업 내용을 익히는 것도 무조건 안 좋게 볼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내가 모르는 것을 새롭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배움과 사고의 균형인 것 같다.


사실 어떤 공부가 이상적인지 말로 떠드는 건 쉽다. 실천하는 게 훨씬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적인 공부를 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현실이 요구하는 대로만 공부한다면 내 인생이 무의미할 것 같다. 결국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과 당위를 가지고 현실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자유가 있다. 당연한 거지만,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인 것 같다. 앞으로는 과제나 시험이 주어지더라도 거기에 휘둘리기보다는 내가 나를 위해 주도할 수 있는 공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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