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호 작가 Jan 11. 2023

소울 푸드 있으세요?

마법 레시피 공개 합니다~!

어릴때 가끔씩 울산 외가집 제사를 가면 맑은 소고기 국에 고추가루를 조금 탁탁 쳐서 넣은 음식을 나는 정말 좋아했다. 큰외숙모는 음식을 그리 잘하시는 분이 아니셨던걸로 기억하는데(기억은 항상 자기 중심적이고 상대적이다~!) 그 소고기 무국 만큼은 세상어딜 가도 그런 맛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음식의 하이라이트는 다름 아닌 정말 얇게 썬 무우다. 한손에 온전히 들기도 힘든 크고 튼한 무우를 외숙모는 왼쪽팔에 끼고 칼날이 섬듯하게 보이는 날카로운 칼로 스윽스윽 배어 넣으셨다. 연필 깍는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무우를 이리 저리 돌려 가며 비스듬히 나가는 칼날이 무우의 뒷면에 다 비칠 정도로 얇게 잘 따셨다(?).

나의 외가는 청송 심가의 종가집중 하나이다. 그래서 인지 제사를 지낼때면 그렇게 엄숙 할수 없었다. 제사 시작 시간은 항상 자정이 되어서야 시작 했다. 어릴적 그 엄숙하고 지루한 제사를 견디지 못해서 잠이 들때도 많았는데, 먹는것에 진심이였던 나는 제사를 마치고 밥먹을 시간이면 벌떡 일어나 소고기 무국을 한그릇 뚝딱 비웠었다. 투명하다 못해 빛이 나는 부드러운 무우가 입에 살살 녹고 국물은 맹물 같아 보이지만 아주 꼬소 하면서 시원했었다. 지금도 그맛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일년에 열두개가 넘는 제사를 사촌 형은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나의 소울 푸드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여러분은 소울 푸드 있으세요?


눈도 내린 추운 토요일 저녁 아이들과 거실에 보일러를 높여 놓고 모여 각자 이불을 가져와 들어누워 다같이 '모던패밀리'를 정주행 했다. 이 미드는 아이들 어릴때 부터 영어 공부 차원에서 함께 보았는데 시리즈 9인가? 10인가?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미국에서도 사랑 받은 미국드라마이다. 심지어 우리 아이들은 약간은 어수룩해 보이는 아빠 필덤피가 나를 닮았다고도 하고, 남자-남자 커플로 나오는 카메룬이 나를 닮았다고 하는 녀석도 있다. 아무튼 미드 이야기를 할려고 했던건 아니니까!


새벽까지 정주행 하며 늦게 잠자리에 든 가족들은 다음날 아침에도 일어날 생각이 없다. 미드를 보다 잠드는 순서는 내가 항상 1등이니 깨는 것도 1등이다. ㅎㅎ 집안을 어슬렁 거리기를 한참 해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조심조심 집에서 제일 큰 냄비를 꺼낸다. 코스트코에서 산 손질된 닭다리살을 한봉지 꺼내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들을 모조리 꺼낸다. 그러면 준비 끝~!


우리 아이들의 소울푸드인 치킨누들수프를 만들 예정이다.


파스타를 물어 넣어 살짝 뿔려 준다. 닭은 숫가락 크기로 잘라서 우유와 후추를 넣어 10분간 재어 놓는다. 냄비에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둘러 주고 중불로 맞춘다. 잠시 기다렸다가 강불에서 마늘 슬라이스와 닭을 먼저 넣어 살살 볶아 준다. 노릇노릇해지면 각종 야채 투입~! 여기서 샐러리는 꼭 들어 가야 한다. 샐러리의 독특한 향이 마스터 피스 같은 존재이다. 지글지글 나는 소리 이정도 나면 아이들이 일어날만도 한데 꿈쩍도 안한다. 평소 4시반이면 일어나는 아내도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것 처럼 잠을 주무신다.


물을 냄비 중간까지 넉넉히 넣고, 불은 다시 중약불로 변경~! 아이들 자는대로 가서 막내의 발꼬락을 괜히 만져 본다. 셋째 동그란 얼굴을 따라 손으로 쓱쓱 원을 만들어 보고, 훌쩍 키가큰 큰아들은 옆에 가서 누워 안아본다. 키 재보는거다. 많이 컸다~! 큰 딸은 이미 시집가도 될 몸매가 되셔서 아빠는 괜실히 만져보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본다. 으로 다보고 있는게 더 변태인가? 혼자 생각하다가 살짝 열어둔 냄비 뚜껑이 딸그락 하며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어익쿠 넘치기 전에 다시 열어야지~' 몸을 발딱 일으켜 주방으로 간다. 한놈 정도는 일어 날만도 한데..조금 섭섭하다.


살짝 간은 보니 다른거 특별히 넣지도 않았는데 백숙 맛이 난다. 후추랑 소금을 조금 친다. 그럼 다된거다.


색깔별로 6명의 이쁜 그릇을 꺼내고, 반찬은 김치와 깍두기면 된다.


다시 아이들에게 가서 귀에 속삭인다.

밥먹자~(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빠 치킨누들수프 했는데~(벌떡 일어난다) 아빠 정말?  


자녀들에게 아빠로써 무엇을 남겨 주는게 좋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 돈일 수도 있고, 정신일 수도 있고, 무엇이든 어떤 것을 할때 아빠의 좋은 모습을 기억해 준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일이 있을까?


멕시코 속담에 나를 기억하는이가 없으면 나의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나의 아이들이 커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던 치킨누들수프를 만들어 주며 나를 잠깐이라도 기억 해줬으면 한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자 살아 가는건 아닐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