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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호 작가 Jan 16. 2023

부산에 가면

낭만에 대하여~

부산에 내려왔다.

아이들은 벌써 도착했냐고 한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몇 시간씩 핸드폰 게임을 하니 시간이 빠르게 느껴졌을 거다. 집에 있을 때 평소 하지 못하는 핸드폰 게임이 허용되는 시간은 여행을 갈 때가 유일다. 아마 순간이동 같을 수도.. 


큰집에서 모임이 있어 부산역 근처에 호텔을 잡았다. 차를 주차하고 들이마시는 부산 공기는 여전히 그랬듯이 "짜다!" 공기가 짤 수가 있겠나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부산에 오면 입을 벌리고 공기를 코로만 맡지 말고 입과 코로 같이 먹어 보라. 그 짭 자름한 맛이 나의 부산의 짠내다.  


나는 부산의 섬에서 태어났다. 섬이랄 것도 없이 오래전부터 다리가 놓아져 있고, 헤엄쳐 건널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섬 '영도'에서 태어났다.


영도는 나름 특색 있는 섬이다.

6.25 전쟁 때 중공군을 피해 피난 온 사람들의 판자촌이 형성되었다. 아직도 영도봉래산의 중턱까지 비탈에도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이유다.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 그대로 도로가 된 영도의 산복도로에서 운전을 배우면 길이 얼마나 좁고 양옆에 불법 주차가 많은지 베스트 드라이버가 된다는 얘기도 부산사람들끼리 하곤 했었다. 영도에 차고지가 있는 택시들이 가장 운전을 잘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릴 적에 집에 들어가려면 홍등가를 지나가야 했다. 부산 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에 쭉~늘어선 홍등가 앞에 몸을 파는 누나들이 앉아 있으면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며 괜히 땅만 보고 골목으로 뛰어갔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의 사무실이 영도에 있다. 영도 출신일 거라는 예상을 해본다. 영화 친구 주인공인 태수가(유오성) 경찰에 잡혀 들어가 심문받을 때 말하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나와 끝자리 하나만 달라서 영화 보다가 소름이 돋았던 기억 있다. 주민번호 뒷자리는 지역을 말해주는 것이니 실존 인물은 우리 집 근처 어디에 살았던 건 아닌가 해서 말이다. 어릴 적 다리 건너 남포동 조폭은 다 영도출신이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섬놈들이 잔인하다면서... 사람들은 영도가 섬 같지도 않다고 하더니 이럴 때는 또 섬이라 한다.  


영도는 영도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삼신할매'이야기도 있다. 영도의 중앙에 있는 봉래산에 삼신할매라는 산신령이 사는데 영도에 살 때 잘 보호해 주다가 영도를 떠났다가 다시 영도로 돌아오면 큰 벌을 내린다는 이야기다. 내 생각엔 영도에서의 삶이 하도 각박해서 성공해서 영도를 떠나면 다시는 잘못돼서 영도로 돌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어머니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영도에는 부산오뎅이라고 알려진 삼진어묵이 있다. 오뎅은 일본식 표기라 하지만 어릴 적부터 불러온 오뎅은 내가 좋아하는 거고 어묵은 왠지 내가 안 먹어 본 것 같은 이질감이 있다. 같은 건데도 말이다. 어떻게 이름 붙이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게 한다는 게 참 신기 하다. 삼진어묵은 우리 집과 담이 붙어 있다. 어릴 적 여름철이면 오뎅공장에 꼬이는 파리떼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냄새도 많이 났었는데.. 지금은 휴게소에서 핫바를 하나 사 먹어야 맡을 수 있는 추억의 냄새다.

  

난 부산 사람이고 영도 사람이다.


저녁 늦게 도착했으니 저녁 먹을 곳을 찾아야 한다. 호텔에 주차하고 아내와 둘이 부산역을 지나 초량 뒷골목에 미리 찾아놓은 자연산 횟집을 찾아갔다.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밤, 서울이었으면 옷깃을 단단히 여미 우게 만들었겠지만 그렇지 않다. 부산을 떠나 추윗 지방에 사는 나에게 내 고향 부산은 "괜찮다.. 하나도 춥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 같이 포근했다. 

 

진정 나는 부산 사람인가? 이제는 서울 사람인가? 정체성에 퀘스쳔 마크가 하나 떠오른다.


운전하는 내 옆에서 열심히 말동무가 돼준 아내에게 자연산 돌돔을 대접한다. 돌돔 맛을 모르는 아내에게 열심히 부위별로 식감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러곤 설명을 너무 했더니, 목이 탄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부산소주 대선을 한병 시켰다. 이 정도는 이제 아내도 그냥 넘어가준다. 서울에서 고성까지 4시간 다시 부산까지 2시간 내리 운전한 남편에 대한 배려라 생각한다. 난 그냥 운전기사가 아니니까! 자연산 회는 정말 자연산이었다. 돌돔의 오독오독한 식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물컹한 회를 와사비 장 맛으로 먹는 게 아닌, 회의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오이시~! 바다의 풍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군. 과연 돔 중에 왕 돌돔의 힘찬 활기가 느껴지는 맛이야~!

<고독한 미식가 패러디 ㅋㅋ>


돌아오는 길에 통닭을 한 마리 튀겨 호텔로 배달을 간다. 마치 우린 둘이 여행 온 것처럼 호텔 방을 나왔다가  아이들 걱정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모도 배가 채워져야 아이들이 생각난다. 가끔은 아이들이 잘 먹는 것 보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솔직히 대부분 내 배가 채워지는 게 먼저다.


57층의 호텔은 부산항의 야경을 백배로 즐기게 해 준다. 조용히 최백호 님의 "부산에 가면"을 틀어 야경 속 불빛을 하나하나 세어 본다. 아무 의미 없다. 그냥 부산을 느끼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나의 꿈은 서울에 사는 거였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 화끈하게 살아 보는 거였다.

그렇게 부산을 떠나는 게 꿈이었던 내가 고향에 돌아와 부산을 느끼며 노래 한곡에 감동받아 눈물 흘리고 있다.


<부산에 가면 - 최백호>

부산에 가면 다시 나를 볼 수 있을까
고운 머릿결을 흩날리며 나를 반겼던
그 부산역 앞은 참 많이도 변했구나
어디로 가면은
너도 이제는 없는데
무작정 올라가는 달맞이 고개에
오래된 바다만 오래된 우리만 시간이 멈춰버린 듯
이대로 손을 꼭 잡고 그때처럼 걸어보자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간 광안리
그때 그 미소가 그때 그 향기가
빛바랜 바다에 비춰 너와 내가 파도에 부서져 깨진 조각들을 마주 본다
부산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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