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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Jun 15. 2021

복리의 마법

복리의 마법을 부리는 미역


“생일 축하해! 우리 딸. 미역국은 먹었니?”


나의 생일날, 엄마가 전화기 너머로 생일을 축하해주시고는 미역국을 먹었냐고 물어보신다. 


“아니. 이따가 저녁에 외식하기로 했어.” 하고 말했더니,

“그래도 미역국 먹어야지! 생일인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혼 전, 내 생일 때마다 엄마는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는 것이 생일의 일정 중 하나라고 당연시 여겼다. 당연한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미역국을 먹는 전통이 있다. 산모가 산후에 처음 먹는 음식이 미역국이다 보니 아이도 엄마의 젖을 통해 미역국을 맛본다. 세상에서 처음 맛 본 음식이 미역국이기에 생일날도 이를 기념하려고 미역국을 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 풍습은 ‘고래’한테서 온 것이라고 한다. 고려 선조 때 기록된 고문헌 「초학기」에는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뜯어먹어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봤다.’고 기록되어있다.


바다에서 온 식재료이기에 바다의 최고봉 고래에게 지혜를 얻은 것일까. 넓고 깊은 바다에서 온 것이라 그런지 미역국은 바다처럼 진하고 깊은 맛이 난다. 또한 미역은 철분, 칼슘, 요오드 성분이 풍부해 피를 맑게 한다고 현대의학에서도 뒷받침하니, 아무렴 고래로부터 온 풍습이라고 해도 출산한 산모에게는 제격인 음식이다. 어찌 됐든 미역국은 태어난 이에게는 탄생의 축하를, 낳은 이에게는 출산 후 회복의 의미를 갖는다.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미역국을 꼭 생일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나는 아플 때마다 엄마가 끓여준 미역죽을 먹었다. 크면서 아프지 않고 크면 좋으련만, 아이들을 크면서 몇 번씩 크게 앓는다. 어른들은 크는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는다고 했는데, 아이를 키워보니 어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것도 같다. 크게 앓고 난 아이는 그 전에는 하지 못했던 능력을 발휘하며 아이의 옷은 한 뼘 짧아져있다.


나 또한 자라면서 크게 앓았던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건 엄마의 미역죽이었다. 온종일 열이 펄펄 나고 입맛이 뚝 떨어져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때, 그나마 입안에서 맛을 느끼고 소화시킬 수 있었던 음식은 엄마의 미역죽이었다. 사골 국처럼 몇 시간 푹 고아낸 미역국에 불린 흰 쌀을 넣고 엄마는 불 앞에서 계속 국자를 휘저으셨다. 몸져누운 딸이 한 입에 꿀꺽 삼켜도 편히 소화될 수 있도록 휘이휘이.


엄마가 끓여준 미역죽을 먹고 다시 일어나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은 단순히 미역죽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녹아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나는 아플 때마다, 타인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마다,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마다, 무기력해졌을 때마다 엄마의 미역죽을 먹고 새로 시작할 힘을 얻었다. 나에게 엄마의 미역 죽은 단순히 음식 그 자체가 아니었다. 상처의 회복과 새로운 것을 시작할  새 힘을 의미했다.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과 죽을 먹던 내가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내 아이를 위해 미역국을 끓인다. 말린 미역을 한 움큼 크게 쥐어 물에 담근 후, 다른 식재료들을 준비하고 나니 미역이 몇 배로 불어있다. 이렇게 많이 끓이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마치 미역이 복리(複利)의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아이를 위해 처음 미역국을 끓일 때, 수북이 불어난 미역 앞에서 쩔쩔매던 나는 이제 양 조절쯤은 쉽사리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사이 아이는 몇 번의 생일을 맞았다. 그리고 내가 자라며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몇 번의 성장통을 겪었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해 아이에게 미역죽을 끓여주었다. 내가 끓인 미역죽을 먹고 기운을 차려 이리저리 뛰어노는 아이를 보면서 어쩌면 미역은 복리(複利)의 마법과 더불어 복리(福利)의 마법도 부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탄생의 기쁨과 더불어 회복의 힘을 가져다주는 복리(福利)의 마법 말이다.



요즘, 아이는 나에게 묻곤 한다.


“엄마, 꽃 피는 봄이 오면 내 생일이지?”

나는 미소를 머금고 대답한다.


“응. 꽃 피는 봄이 오면 우리 딸 생일이지. 엄마가 네가 좋아하는 생선 노릇노릇하게 굽고, 미역국 보글보글 끓여 줄게.”


예쁘게 꽃 피는 봄에, 우리 딸 생일이 오면 미역은 다시 복리의 마법을 부릴 거야.

한 움큼의 미역일지라도 몇 배로 불어나 온 가족을 배부르게 하는 복리(複利)의 마법, 그리고 엄마가 할머니에게 받은 힘과 사랑을 다시 너에게 몇 배로 돌려주는 내리사랑, 복리(福利)의 마법 말이야.


엄마가 평생에 걸쳐 받은 사랑을 너에게 돌려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단다.


딸아, 생일 축하해. 사랑해.

그리고

정성과 애씀으로 사랑과 새 힘을 주신 엄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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