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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Mar 31. 2024

초등학교 1학년 엄마의 입학 일지

"학교는 원래 재밌어!" 그래, 그런 마음이면 된 거지.


1. 3월 4일 입학식 날

며칠 전부터 배정된 반과 부여받은 번호는 알았으나, 담임 선생님의 존재는 몰랐던 지라 입학식날 가장 기대되었던 부분이 담임선생님은 어떤 분이실까, 였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인상이 좋으셔서 안심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네 학교는 경력 20년 이상의 여성 선생님들이 1학년 반을 맡으셨다고 한다. 아무래도 1학년은 손이 가는 부분이 많기에 학교 측에서 그렇게 결정한 것 같다. 


교장선생님은 3월 1일 자로 이 학교에 새로 부임하셨다고 하셨는데, 아이들에게 전하시는 훈화말씀 대신 '겁이 나는 건 당연해'라는 동화책을 읽어 주셨다. 처음이라 겁이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마음 한켠에 살고 있는 용감이가 있기에 겁이 나도 이겨 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첫 학부모가 되는 나에게도 힘이 되었다. 1학년 선생님들 모두, 그리고 교감/교장 선생님들까지 좋으신 분들 같아서 마음이 벅차고 감사했다. 애국가를 큰 목소리로 부를 만큼 멋지게 커준 17년생 닭띠 어린이들이 자랑스러웠고, 그 곁을 지켜주실 선생님들이 너무너무 든든해 보였던 하루. 그리고 나는 첫 학부모로서 데뷔한 이 날 거의 만보를 찍을 만큼 이리저리 열심히 돌아다녔다. 학부모,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 싶던. 


2. 3월 5일 등교 1일 차

 아침부터 부랴부랴 아이 아침 챙겨 먹이고, 준비시키고 나도 준비해서 같이 등굣길에 나섰다. 겨울 패딩을 뒤로하고, 나름 새학기라고 사둔 핑크색 경량 패딩을 사뒀는데, 엄마 욕심이었다. 찬바람이 불어 코가 빨개지고 손이 시렸다. 내일은 욕심을 내려놓고 꼭 따뜻하고 두터운 패딩을 입혀야겠다 생각했다. 핑크색만 찾던 아이는 얼마 전부터 핑크색을 거부했는데, 아이가 싫다는데도 꾸역꾸역 (엄마 눈에 예쁜) 핑크색 경량 패딩을 입혔더니 '아, 이번에도 아이 말 들을걸' 싶다. 앞으로는 딸아이 말을 잘 들어야겠다. 


하교 시간보다 더 서둘러 교문에서 기다리는데 엄마들이 엄청 많다. 하교하자마자, 친구들은 대부분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며, 자기도 사달라고 한다. 그래야 엄마가 나를 안 데리러 오고 자기가 어디 있는지 엄마한테 연락해서 만날 수 있다고. 남편 말마따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핸드폰을 사줘야 하나 싶다. (이미 마음은 사주는 것으로 기울었다.) 등교하고 하교하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간식을 주고 또 학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데리러 가고 하다가 하루가 다 지난 느낌이다.


3. 3월 6일 등교 2일 차

 아이는 집에서 나서기 전부터 자기 혼자 가겠다고 한다. 아직은 안된다고 했더니 그럼 자기 혼자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길을 앞장서서 갔다. 나는 몇 발자국 뒤에 서서 아이를 따라갔다. 아이는 한 번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걷기만 했다. 다른 아이들은 아직도 엄마 손을 꼭 잡고 등교하는데, 너는 꼭 이래야겠니. 대견한 마음과 약간의 서운한 마음이 뒤섞였다. 


앞장선 아이를 졸졸 따라 학교에 거의 도착했을 때, 이따가 엄마가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너는 나와서 여기로 오면 된다고 말을 하는데 다른 친구들 혹은 언니 오빠들이 많은데 자기를 아이 취급하듯 엄마가 이래저래 당부하는 게 싫었는지 눈 총을 쏘고는 그만하라고 한다. 요즘 들어 나에게 유난 떨지 말라는 듯 눈치를 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나 주변에 사람이 있는데서 그러면, 제발 좀 그러지 말아 달라고 내게 당부한다. 요즘 말로 하면, '극혐'하는 것 같다. 나 그 정도로 유난 떨지 않았는데, 쩝. 


저녁에는 이모한테 전화 좀 걸어달라고 하더니, 방문을 닫고 들어가 속닥속닥 이야길 나눈다. 나중에 동생이 말해준 바에 의하면, "이모, 나 혼자 학교 가고 싶은데 엄마가 자꾸 따라와 어떻게 하지?"라고 물었다고. 요즘 네가 하는 말처럼 '오 마이 가스레인지~!'


4. 3월 7일 등교 3일 차

 엘베를 타자마자 "엄마, 나 오늘 학교 혼자 갈게 선생님이 혼자 올 수 있는 친구들은 엄마한테 말하라고 했어."라고 한다. 나는 이번 주까지만 뒤 따라가겠다고, 다음 주부터는 혼자 가보라고 권유했다. 아니 부탁했다. 나는 또 멀찍이 떨어져서 아이가 학교를 향해 걷는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뿐이었다. 


아이가 학교까지 가는 여정은 '아파트-공원-횡단보도-학교'이고, 어른 걸음으로는 10분 이내 아이 걸음으로는 15분 이내가 될 것 같다. 공원에서 보도를 건너기 전, 아이가 엄마보고 오지 말라고 시그널을 주길래, 여기서부터는 엄마가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초록불이 되자 아이는 자신의 보폭대로 불을 건너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등교했다. 아이의 등교를 알리는 안심 알리미가 곧바로 울렸다. 안심되는 참 고마운 시스템이다.


5. 3월 8일 등교 4일 차

 오늘도 역시나 혼자 간다는 아이에게 부탁해서 오늘까지만 따라가겠다고 약속하고 공원까지만 뒤따라 갔다. 아이는 길을 건너 학교로 향하고, 나는 횡단보도에서 멈춰 아이가 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다. 씩씩하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등교 1,2일 차에 학교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아이가 "재밌어! 학교는 원래 재밌는 거야!"라고 답했다. 


그래, 그런 마음이면 되는 거지. 사실 요즘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는 아는 엄마가 별로 없다. 같은 학교는 두 어명, 다른 학교도 두 어명 합해서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다른 엄마와 나를 비교하며, 체계적으로 시간표를 짜두고 아이의 학원을 여러 군데 알아보고 잘 세팅해 둔 엄마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부족함이 아이의 부족함으로 연결이 될까 봐 마음이 시끄러웠다. 


SNS에는 사립학교 입학식에 예쁘게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인증샷이 있었고, 오프라인엔 체계적으로 하교 후 학원 시간표를 세팅해 두고 서포트하는 엄마들이 있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갈피를 못 잡고 하루 종일 허둥대기만 하는 학부모로서의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어 틈틈이 자꾸 마음이 쪼그라들었었는데, 다행히도 이런 엄마 마음을 모르는지 아이는 여전히 해맑기만 하다. 


얼마 전, 친한 언니와 초등학교 시절 학습 또는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나에게 초등학교 때 어떤 과목을 좋아했냐고 물었는데 싫어했던 과목은 생각났지만 좋아했던 과목은 기를 쓰고 기억해내려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좋아했던 담임 선생님, 즐겨 먹던 맥주/페인트 사탕, 쫀디기, 등 하교 후 즐겼던 간식들만 줄줄이 기억난다. 어제는 남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초등학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흰 우유 급식에 딸기맛 제티를 타먹을지 초코맛 제티를 타먹을지, 오전 시간 내내 고민했던 게 가장 즐거웠다고 한다. 


그래, 촘촘하고 체계적인 학원 스케줄 또는 사립초, 뭐 이런 거 잘 모르겠고, 우선 1학년 목표는 신나고 재밌게 학교 다니는 거지! 학교 알림장에도 쓰여있잖아? 


’행복한 1학년‘


행복하고, 즐겁게 학교 생활하는 게 우선순위지!

엄마도 다시 마음을 단단히 할게. 

그리고 뚜벅뚜벅 걷는 너를 뒤에서 응원할게!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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