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소다, 혹은 생강라떼] 임대문의

by 수빈





“아니 그랬다니까?”


하하 호호 즐겁게 대화 나누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진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챙기며 사무실 밖으로 나온다. 걷기 좋은 따뜻한 날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회사 건물을 벗어나 3분 정도 걸으면 바로 공원이 나온다. 회사 근처에 이런 푸르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최근 생각하게 되었다. 점심 먹고 삼삼오오 탕비실에 모여 수다를 떠는 동료들은 아마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 해봤을 것이다. 도시락 가방을 책상 옆에 정리하며 루틴처럼 이어폰을 갖고 사무실 밖으로 나와 홀로 산책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생각들.


날씨가 좋아지면 공원도 생기를 찾는다. 풍경이 초록초록 해져서만이라기보다 들뜬 표정으로 나른한 오후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에너지.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웃음소리는 아까와 달리 날카롭지 않다. 잠시 멈춰서 이어폰을 벗는다. 살랑이는 바람이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에 웃음소리가 섞여서 날아온다. 한껏 경직된 몸이 이완됨이 느껴진다. 기다랗게 생긴 공원의 반환점에 다다르면 유턴해서 다시 회사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어항에 갇힌 물고기가 된 기분이다. 물고기는 다행히 기억력이 짧아 어항 끝 반환점에 다다라도 답답해하지 않는다는데 나는 회사와 가까워질수록 산소가 부족해지는 거 같은 기분이다. 아, 회사 가기 싫다.


회사 건물에 도착하니 이미 1시가 넘었다. 팀장이 또 눈치를 주겠지. 그래도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고 사무실 문을 연다. 고요한 거라 생각했던 사무실 안은 예상과 달리 시끄러웠다. 귀를 찌르는 듯한 말소리에 순적으로 움찔했다. 하지만 더 당황스러운 건 텅 빈자리들. 모니터 앞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팀장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전부 보이지 않았다. 탕비실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직원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회의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다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었다. 뭔가 나만 모르는 대화가 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대화는 점심시간을 30분 넘겨서야 끝이 났다. 각자 자리로 돌아오자 사무실은 여느 때처럼 고요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리된 공간과 규칙적인 키보드 소리만이 남았다. 바짝 곤두섰던 신경이 그제야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팀장의 표정을 살피던 찰나, 모니터 하단에 메시지가 떴다.


[10분 후 팀 회의 하겠습니다.]


회의실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싸늘했다. 팀장은 별거 아닌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말끝이 뾰족했다. 최대한 에둘러 말하려는 듯했지만, 결국 모든 대화의 끝은 나를 제외한 팀원들에 대한 책망으로 귀결되었다.


“이 부분은 좀 더 신경 써야 해요. 지안 씨는 매일 체크해서 보고하잖아요.”


팀장의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보이지 않는 시선이 한데 내게 꽂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쿵, 쿵, 점점 빠른 박자로 뛰었다. 알 수 없는 어지러움과 구토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회의가 끝난 뒤,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앞서 나가는 팀원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절대 돌아보지 않을 거 같은, 단호한 걸음걸이. 귓속말을 나누며 사무실로 향하는 사람들. 짝을 이룬 채 느릿하게 멀어지는 실루엣들.


자리에 앉자 적막이 깨졌다. 키보드 소리. 주거니 받거니, 일정한 박자로 이어지는 타이핑 소리가 마치 대화처럼 들렸다. 맞은편에서, 오른편에서, 사방에서. 따다다닥, 따다다닥. 머릿속이 쿵쿵 울린다. 시야가 흔들린다.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프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시계를 본다. 이제 겨우 오후가 시작된 시간. 퇴근까지는 한참 남았다.


‘버틸 수 있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자연스럽게 팀장자리로 향했다.


“팀장님 갑작스럽게 말씀드려서 죄송한데,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조퇴해도 괜찮을까요?”

“그래? 지안 씨, 괜찮아? 그러고 보니 얼굴이 안 좋아 보이네.”


상냥한 팀장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온몸이 다시 긴장으로 굳었다. 모두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지만, 시선이 느껴졌다. 일제히 나를 향하는 공기. 언제나 말이 많던 팀장이 이럴 때만큼은 야속했다. 제발, 이 대화가 빨리 끝났으면.


“딱히 급한 이슈 없죠?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거지 같은 회사지만,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건 이럴 때 장점이다. 짧은 목례를 하고 결재를 올렸다. 짐을 챙기고 팀장님께 인사를 건넨 뒤 빠르게 사무실 문으로 향했다. 뒤통수로 쏟아지는 어리둥절한 시선들. 하지만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여길 빨리 벗어나야 해.


봄날씨는 짓궂다. 점심 산책할 때는 분명 완연한 봄이었는데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어느새 겨울바람처럼 차다. 끊이지 않는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에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간간히 부는 바람소리만 들리는 고요함 덕분인지, 찬바람에 정신이 들었는지 머리도 마음도 같이 고요해졌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이 버스정류장에는 집으로 가는 버스는 없다. 집으로 가려면 다른 버스정류장으로 10분 걸어야 된다. 걸어갈 엄두도,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싫었다. 정류장에 적힌 버스 번호와 노선을 바라보다 낯익은 정류소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저기는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다. 전광판에는 도착 1분 전으로 뜬다. 가볼까? 잠시 망설였지만 정류장에 들어선 버스에 몸을 싣었다. 어차피 내일 출근 시간 전까지는 자유다. 집으로 가던, 어디로 가던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따가운 시선도, 공기 중에 떠도는 미묘한 분위기도, 날아와 꽂히는 유쾌하지 않은 말들도 이제 없다.








버스로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집보다 가까운 거리였다. 평소 1시간은 걸려서 출근하는데 이곳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매일 아침 30분은 더 잘 수 있었겠지. 그런 생각이 스치자 괜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회사 생각이라니, 나도 참 한심하다.


10년 만에 찾아 온 동네는 바뀐 듯 바뀌지 않은 듯 미묘했다. 익숙한 냄새와 낯선 건물들이 뒤섞여 있었다. 발은 자연스럽게 예전 집이 있던 쪽으로 향했다. 여기는 원래 무슨 가게였는데, 옛날에 여기서 친구랑 놀다가 넘어졌었지, 그런 기억들을 되짚으며 걷다,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고개가 꺾일정도로 높게 솟은 아파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아파트인데도 낯설게 느껴진다. 수시로 차가 드나드는 입구. 분명, 그 자리에 우리 집이 있었다. 한 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번쩍번쩍하게 바뀐 집터의 모습을 보면서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을 토로하는 나를. 그런데 막상 이렇게 눈앞에 두니 이상하리만치 아무렇지 않았다. ‘아, 집이 없어졌구나.’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마치 계속 미뤄오던 청소를 결국 해치운 것처럼. 미루고 미루다 눈앞에 쌓인 쓰레기를 큰 맘먹고 치워낸 기분이랄까.


집이었던 자리를 지나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아파트를 제외하면 익숙한 풍경들이 시선에 걸린다. 학교 마치고 친구들과 놀았던 골목, 주인을 잃은 채 간판만 덩그러니 걸린 오래된 가게, 가로수의 위치까지도 그대로였다. 낯익은 것들을 마주하자 마음이 놓였다. 매번 등하교하며 오갔던 내리막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골목 끄트머리에 자리한 작은 가게 하나가 시야를 붙든다. 순이네분식. 나도 모르게 이끌리듯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머, 너 지안이 아니니?”

“이모, 안녕하세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눈이 마주친 순간, 사장님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피어났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상하리만큼 그대로인 그 얼굴에, 자연스럽게 ‘이모’라는 호칭이 튀어나왔다. 반가운 얼굴로 한걸음에 달려와서 나를 꼭 안아주는 순이이모.


“아이고, 그래! 여긴 어쩐 일이야? 아직 이 동네 살아?”

“아뇨. 재개발되면서 이사 갔어요.”

“아, 그래! 너희 집 자리에 아파트 생겼지?”


이모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향한다. 어릴 때 자주 앉던 창가 자리는 여전히 그대로다. 예쁜 바구니에 담겨 있는 숟가락과 포크도, 가지런한 손글씨로 쓰여 있는 메뉴판도, 자리에 앉자마자 물은 무조건 끓인 보리차라며 컵과 함께 가져다주는 이모도. ‘떡볶이랑 오징어튀김, 순대에 허파 많이. 맞지?’ 이모는 익숙하게 부엌으로 들어가 음식을 준비한다. 나를 향해 있는 마음이 느껴져서 괜히 마음이 일렁인다. 창밖은 여전히 세게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세차게 흔들린다. 하지만 보글보글 끓는 소리로 가득한 가게 안은 유난히 따뜻하다. 누군가를 평가하지도, 시샘하지도 않는 이 공간은 내 방 같다. 그 공간에 있는 거 자체만으로도 긴장이 됐던 사무실과는 다르다. 순간 눈가가 뜨거워졌다.


“지안아, 별일 없지?”


순이이모가 내 앞에 음식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언제나처럼 마음이 가득 담긴 따뜻한 음식과 눈빛으로.


“그럼요. 저 취직도 했고요, 이사 간 동네도 나쁘지 않아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 회사생활이 다 그렇지 뭐. 아유, 내가 주책이다. 그렇지? 오랜만에 너 보니까 푼수처럼 말이 흘러나오네.”


순이이모가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덩달아 나도 어색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떡볶이는 특별한 맛이 있진 않지만, 옛날 그대로 맛있었다. 바삭한 오징어튀김, 쫄깃한 식감이 매력 있는 허파를 떡볶이 국물에 푹 찍어 입에 넣는다. 요즘 마라소스가 유행이라 신메뉴를 고민해 봤지만, 아이들 건강을 생각하면 도저히 못 하겠더라는 이모의 말엔 따뜻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처럼. 문득, 창 밖 건너편 건물에 커다랗게 붙은 ‘임대문의’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저기 원래 또또문구점이지 않았어요?”

“어, 맞아. 기억하네. 요즘은 학교에서 문구류를 단체로 구입하잖아. 문구점이 살아남겠어? 그래도 어찌 저지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3년 전에 문 닫았지 뭐.”


하굣길마다 가장 먼저 들렀던 또또문구점에는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안경 낀 사장님이 계셨다. 그 큰 키에 티코를 타고 다니셨는데, 그 좁은 차에서 몸이 펼쳐진 나오는 모습이 늘 신기했다. 큰 체구에 아이들 그를 무서워했지만, 등하굣길마다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인사해 주시던 모습은 다정한 옆집 아저씨였다.


“요즘 애들이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학원 차 타고 다니잖아. 이 앞으로 걸어 다니는 애들이 없고. 우리 가게도 예전만치 않아.”

“아, 그래요? 하긴 요즘 애들이 제일 바쁘잖아요.”

“안 그래도 건물주랑 내가 좀 아는 사이거든. 학교 앞이라 그런지 임대가 마땅치 않나 봐. 얼마 전엔 부동산 중개업자한테 1년 치 월세를 지원해 줄 테니 누구라도 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니까.”

“진짜요? 많이 급하신가 보다.”


순이이모는 예전부터 수다쟁이 었다. 벌써 대학생이 된 막내의 수능 성공기부터, 요즘 눈이 침침한데 주변에서 안검하수를 빙자한 쌍꺼풀 수술을 권유한 얘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보따리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마지막 떡볶이를 입에 넣자, 더는 여기 있을 명목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이제 현실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12시를 맞이한 신데렐라처럼.


“이모, 맛있게 잘 먹었어요. 갑자기 와서 죄송해요.”

“아이고, 죄송은 무슨! 오랜만에 너 얼굴 봐서 얼마나 얼마나 좋은지. 언제든 괜찮으니까 더 편할 때 꼭 놀러 와.”


이모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거칠어진 손끝에서 지나간 세월이 느껴졌다.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서자 여전히 찬 바람이 뺨을 스쳤다. 건너편에 붙은 임대문의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집으로 데려다줄 버스를 찾아 걷는다. 발목에 족쇄가 달린 것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어두운 집에 홀로 우두커니 서있으니, 아까 있었던 일은 환상처럼 느껴졌다. 차디찬 방바닥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보일러를 켜고, 전등을 하나씩 켠다. 오늘은 왠지 향을 피우고 싶은 날이다. 방 안 곳곳에 꽂아둔 향에 불을 붙이고, 조심스레 책상 앞에 앉는다. 집 안은 점점 따뜻해지는데, 마음은 여전히 차게 굳어있다. 저녁을 뭘 먹어야 되나, 재료가 뭐가 있더라 고민을 하는 찰나, 짧은 진동이 반복적으로 울렸다. 시계를 보니 7시를 갓 넘긴 시간. 마음의 밑바닥부터 서서 불안감이 올라온다.


[팀장] 지안 씨, 이거 내일 출근 전까지 정리해줘야 될 거 같아. 지원 씨 내일 발표 처음이잖아. 초안 작성 시켰더니 수정 볼 곳이 많네. 부탁해요?


단체방에는 고생 많았다는 팀장, 퇴근해 보겠다는 팀원들의 인사로 가득하다. 모두들 퇴근한 시간. 퇴근을 못 한건, 나였다. 팀장님이 보낸 파일을 내려받는다. 기본 사항만 적힌, 아무 정리도 되어 있지 않은 원고. 이걸 정리하려면 적어도 2-3시간은 기본으로 걸릴 것이다. 이걸? 굳이? 나에게? 머릿속에는 온통 물음표가 가득 찼다. 왜 나였어야 했을까, 굳이 이 시간이었어야 됐을까, 이게 최선이었을까?


노트북을 열었다. 바탕화면에 있는 한 개의 파일. 사직서. 더는 미루지 않기로 했다. 내일이면, 끝이다. 이 지긋지긋한 생활도. 순이이모의 음식처럼 따뜻했던 특별한 오후와 대조되는 매일 겪는 나의 일상. 돌아오는 길에 스쳐 지나간 임대문의 간판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외면해온 어린 ‘나’를 마주하며,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매주 한 편씩, 조용히 이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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