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비는 봄비와 다르게 눅눅하고 무거운 기분이다. 새벽부터 새차게 내리던 빗소리에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창밖으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는 건 좋지만, 그 풍경 속 한 장면이 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출근 길, 이미 젖어버린 옷과 신발 탓에 몸도 마음도 눅눅해졌다. 오늘은 카페도 한산하겠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어가고 있는 카페는 생각보다 잘 되고 있다. 하지만 학교와 마주한 2차선 도로를 건너편에 있어도, 비 오는 날이면 아이들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학원 차를 기다리는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면, 카페를 들르는 손님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비 오는 날이면 괜히 더 쓸쓸해진다.
평소처럼 입구부터 안쪽까지 순서대로 불을 켰다. 혹시나 빗속을 뚫고 와 줄 누군가를 생각하며 밤새 쉬고 있었던 커피 머신을 깨끗이 씻겨냈다. 냉장고를 열어 아이들이 자주 찾는 과일청 재고를 확인하고, 얼음과 탄산수도 점검했다. 테이블을 하나씩 닦고 있을 무렵, 언제나처럼 첫 손님이 찾아왔다.
“늘 먹던거요~”
문을 열고 들어온 순이 이모가 딸랑이는 종소리만큼 경쾌한 얼굴로 말했다. 그 뒤로 오늘도 고운 옷차림의 ‘봄날의 정원’ 윤화사장님, 그리고 언제나처럼 퉁명스러운 표정의 ‘만능철물’ 김사장님이 함께 들어섰다.
“아니, 어제 새벽에 지붕 뚫리는 줄 알았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아침 되면 그치겠거니 했는데, 웬걸? 오늘 장사는 공쳤네, 공쳤어.”
“언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다같이 모여 점심이나 먹을까?”
비도 오고 손님도 없는 날, 오늘은 언니가 솜씨를 발휘해야 하는 날이라며 비도 오는데 맛있는 전을 부쳐 먹자고 순이 이모를 부추겼다. ‘전’이라는 단어에 시큰둥하게 듣고 있던 김사장님도 슬쩍 눈빛이 달라졌다. 순이이모 요리 솜씨를 아는 나 역시 입 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이고야, 지안이 벌써 침 흘리네. 그래, 기분이다! 오늘 점심은 우리 집에서 먹자고!”
아이처럼 들뜬 윤화사장님의 웃음에 눅눅하고 우중충한 공기가 스르르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역시나 첫 손님이 다녀간 후 점심시간 전까지 카페엔 아무도 들르지 않았다. 12시가 되어 문 앞에 표지판에 ‘점심식사 중입니다. 오후 1시까지 돌아올게요!’라고 적고는 문을 닫았다. 건너편 순이 이모 가게엔 이미 윤화사장님과 함께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문을 열자 코끝을 찌르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위장이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어서 와서 여기 앉아~ 조금만 기다려!”
테이블에는 조개가 잔뜩 들어간 칼국수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순이이모 손맛이 가득 담긴 김치와 방금 구워 따끈따끈한 전도 완성됐다. 상을 가득 채운 맛있는 음식들은 보기만 해도 침이 저절로 고였다. 순이이모는 식기 전에 얼른 먹으라며 김사장님 앞에 막걸리를 놓으며 얘기했다.
“그래, 장사는 좀 어때?”
“오픈 전에 했던 이벤트가 효과가 있었는지 첫 날부터 애들이 꽤 많이 와줬어요.”
“그랬겠다. 딱 애들 취향이더라. 근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지우라는 애가 알려줬어요. 처음에는 관심을 보였는데, 그 뒤론 잘 안 보이더라고요.”
“지우? 단발머리 그 지우?”
순이이모가 되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화사장님도, 김사장님도 지우를 아는 듯 했다.
“맨날 혼자 다니더라. 누구랑 같이 있는 걸 거의 못 봤어.”
“애는 괜찮아. 좀 소심하긴 해도 눈빛은 참 맑더라.”
사람들의 입에 흘러나오는 지우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 조금 달랐다. 말이 없어 조용해 보일 순 있어도, 나는 오히려 자기 주장이 분명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새롭게 전해 들은 이야기들 속에서 지우의 실루엣이 조심스럽게 윤곽을 드러냈다. 이야기의 주제는 어느새 바뀌었지만 나는 집중할 수 없었따.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쓰렸다. 아주 살짝, 하지만 분명하게.
떠들썩 했던 점심시간과 달리 카페는 여전히 한산했다. 어쩐지 마음 한켠이 허전해 생강라떼를 홀짝이며 속을 달랬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곧 아이들이 몰려올 시간이었다. 머그컵을 정리하며 마음도 다잡았다. 쌀쌀한 날씨인 오늘은 따뜻한 라떼를 많이 찾을 것이다. 파우더 통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창 너머 교문을 바라봤다. 형형색색 우산들이 마치 파도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차량들이 학교 앞 도로를 빼곡히 메웠다. 2차선 도로를 성큼성큼 건너온 아이들이 우산을 접으며 들어왔다. 지정석처럼 망설임 없이 각자의 자리에 짐을 풀었다. 우산이 있어도 교복이 축축하게 젖었다며 여기저기서 투정이 터져 나왔다.
“녹차라떼요.”
“나는 오늘 고구마라떼 먹어야지!”
아이들의 목소리에 바쁘게 손이 움직였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각자의 취향을 담은 파우더를 섞었다. 하얀 우유에 파우더가 녹으며 각각의 색으로 물들었다. 머그컵과 티슈를 트레이에 담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조심스럽게 후후 불며 마시는 아이들의 모습.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떠들썩하던 아이들은 하나둘 학원 차를 타고 사라졌다. '디스코드에서 보자.', '내일 학교에서 보자.'는 인사들이 흩날리며 사라졌다. 하나씩 비워지는 테이블을 정리하다 보니 가게는 다시 조용해졌다. 오늘은 이걸로 끝인가 생각하던 그때, 빗속에서 초록 우산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낯익은 얼굴. 소녀는 창 너머로 가게 안을 천천히 훑더니 우산을 접고 안으로 들어왔다.
"멜론소다요."
바 테이블에 익숙하게 앉은 지우. 내심 반가웠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쨍한 초록색 우산. 어쩌면 지우는 멜론소다의 맛보다 그 색이 좋아서 고르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왜 안 왔어."
"그냥요."
짧은 대답. 처음 보는 건 아닌데, 여전히 알 수 없는 얼굴. 감정이 잘 읽히지 않는 말투와 표정.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안에 감춰진 무언가가 느껴졌다. 가끔은 ‘그냥요’라는 한 마디가 가장 진심일 때도 있다. 어쩌면 오고 싶었지만 올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지우는 말 없이 컵을 감싸 쥐고 있었다. 두 손 가득 담긴 초록빛 머그, 그 속에서 피어나는 탄산의 기포. 조용히 입을 대고 음료를 마시는 그 모습이, 유난히 조심스럽게 보였다.
“네가 알려준 그 이벤트 덕분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 고마워.”
지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고마움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 오는 거 좋아해?”
“네.”
“그래? 다들 비오는 거 싫어하지 않아? 신발도 젖고, 밖에서 놀지도 못 하고.”
”거리가 조용해서 좋아요.”
지우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봤다. 가게 앞 도로는 한산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드물었다. 비가 내리며 거리의 소음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햇볕이 쨍쨍한 날보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게 좋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 차가운 공기에 섞인 비 냄새도 왠지 위로가 됐다.
그래서 창이 크고 많은 집을 골랐다. 쉬는 날 창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햇빛에 누워 있는 것도 좋지만,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볼때면 마치 세상에 혼자 남은 듯 왠지 이 세상에 혼자만 남은 기분이 들었다. 지우는 어쩌면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라, 혼자 있는 게 편해서 혼자를 선택한 걸지도 모르겠다. 지우는 아무 말 없이 멜론소다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건넸다.
“나도 좋아해, 비오는 거리.”
지우의 시선이 천천히 나에게 닿았다. 아주 잠깐, 그녀의 입가가 살짝 올라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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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좋아하세요? 저는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는 게 좋더라고요.
최근 개인적인 일로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늦었네요. 반성합니다ㅠ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