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하고 공기 새는 소리를 내었고, 나도 모르게 차오른 감정에 벌떡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깜깜한 프로그램실 안에서 몸을 숨겼다. 밴드실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냥 조금 울고 말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제발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지 않기만을 바랄 정도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감정이 또 가라앉았다.
조용히 활동지원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불을 켜고, 거울 속 나를 마주한다. 운 티를 내기 싫어서 얼굴을 샅샅히 살핀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밴드실로 돌아간다. 회피하지 않기로, 어제 팀장님이랑 약속 했으니까.
(중략)
무기력증에 빠져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을 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그런데 깜깜한 활동지원실에서 숨죽여 울던 그 순간, 이상하게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슨 감정인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살고 싶다.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 거 같아서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냥, 살고 싶다는 그 한 문장이 계속 머리속에 맴돌았다. 살고싶다. 나는, 살고 싶다.
// 240120 살고싶다 _일기 발췌
나는 다행히 내 일을 사랑한다. 세 번의 이직을 거쳐 네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단 한번도 일이 싫었던 적은 없었다. 휴일도 퇴근도 없이 일하던 때조차도, 나는 일을 사랑했다. 그래서였을까. 일이 나를 끝까지 몰아세워도, 결과를 내기 위해 나를 갈아넣었다. 내가 상상한 것이 현실로 이뤄져서, 그 현실에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행복했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번아웃이 찾아왔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는 1년에 한 번꼴로 번아웃으로 크게 앓았다. 하지만 짧으면 3일, 길어봤자 1주일, 그렇게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잠시 쉬고 나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극복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는 단지 ‘잠시 살아난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실은 천천히, 꾸준히 잠식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원래도 집에서 휴일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침대에서 하루종일 뒹굴뒹굴, 좋아하는 컨텐츠를 보다보면 이틀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듯 회사 가기 전날 밤은 유난히 싫었다. 그래서 그때마다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과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저 바쁘고 힘들어서 그렇겠거니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어느 날 외부로 출근하던 날이었다. 집 근처에 사는 동료와 함께 출장 장소로 이동 중이었는데, 그 사람과는 당시에 사이가 조금 소원해진 상태였다. 차에 타는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터졌다. 말그래도 진짜 '왈칵.'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입을 굳게 다문 채 소리 없이 울었다. 외부 일정이라 한껏 화장한 얼굴은 말할 것도 없이 엉망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물었다. 눈물의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 답답했다. 그 사람과 사이가 어색해서인건지, 이런 상황을 만든 내 자신이 한심해서 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저, 갑자기 너무 슬펐다.
그런 일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출근길에 이유 없는 눈물이 또 나왔다. 차 안에서 조용히 울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덤덤하게 그치곤 했다. 울고 싶지 않았다. 울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빨개진 눈가를 본 동료가 물었다.
"울었어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 말 외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이 길어지면 그 앞에서 그대로 울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마침 그때 넷플릭스 시리즈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공개됐다. 휴일을 맞아 여느 때처럼 침대 위에서 아이패드를 켜고 보기 시작했다. 저녁 즈음 시작한 1화는 새벽을 훌쩍 넘겨 12화가까지 이어졌다. 베개는 흠뻑 젖었고, 너무 울어서 얼굴이 아플 정도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울증이었다.
극 중, 박보영이 침대에 누워 한없이 아래로 꺼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꼭 나 같았다.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도,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그저 좀 쉬면 되겠거니,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자신이 우울증인 걸 인정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구는 장면.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특히 회사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굴고 있었다. 너무 일이 많고, 바쁘고, 피곤해서 그랬겠거니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분명 신호였다.
나는 죽음 바로 앞에서 살고 싶다 생각했다. 나를 구원한 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