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그렇게 쏟아졌냐는 듯 비는 말끔히 그쳤다. 햇볕이 가득 내려쬐는 하루가 시작됐다. 비가 여름을 불러 온 건지 아침부터 기온이 제법 높았다. 오늘은 날씨도 맑고 날도 더우니, 분명히 아이들이 많이 찾아줄 것 같았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어제의 우울함은 사라지고, 개운하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가장 먼저 찾아준 순이이모와 사장님들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더운 날씨엔 역시 레몬에이드라며, 마치 루틴처럼. 오늘도 돈 많이 벌라는 덕담을 남기고 사라졌다. 하교 시간이 되면 분명 바빠질테니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 했다. 제빙기 속 얼음은 충분한지 다시 한 번 확인했고, 에이드가 많이 나갈테니 탄산수와 유리병에 담긴 과일청 재고도 꼼꼼히 체크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 날엔 자주 들르는 단골 아이들 외에도 한 번씩 테이크아웃 해가는 아이들이 많으니 일회용 컵과 뚜껑, 빨대도 제자리에 넉넉히 채워두었다.
학교에서 하교 종이 울리고 10분 뒤,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예상대로 대부분 아이들이 도로를 건너 카페로 몰려들었다. 모두가 아이스 음료를 외쳤고, 나는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고 건네느라 쉴 새 없이 손을 놀렸다.
“오늘도 행운의 딸기라떼요.”
이벤트 날부터 꾸준히 와줬던 아이, 하린이었다.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단순했다. 그녀가 들어올 때마다 주변 아이들이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었다. ‘오, 학교 인싸인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들의 표정과 말투, 하린을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인기 있는 존재인지 단번에 느껴졌다. 하린은 오늘도 여러 친구들과 함께였다. 찰랑이는 긴 생머리, 깔끔하게 다려진 교복, 그리고 까만 백팩에 달린 핑크색 곰인형 키링까지. 최근 품귀 현상이 일어나 구하기 힘든 캐릭터 굿즈였다. 충분히 아이들에게 동경의 눈빛을 받을만한 예쁜 아이였다.
“언니 앞머리 자르셨어요? 잘 어울리세요.”
“네, 오늘 아침에 조금 다듬었어요. 고마워요.”
길어진 앞머리가 눈을 찔러 출근 전에 급하게 집에 있는 가위로 정리 한 참이었다. 그녀는 늘 이런 사소한 변화를 알아채고,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넸다. 아마도 이런 섬세함이 아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게 아닐까 싶었다.
완성된 음료를 쟁반에 담아 하린이 있는 테이블로 가져갔다. 오늘따라 유독 시끌벅적하다고 느꼈는데, 처음 보는 아이가 있었다.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목소리도 컸다. 그 아이가 말을 할 때마다 카페 전체가 울리는 기분이었다. 평소에도 북젹였던 시간대지만, 오늘은 유난히 소리가 크게 퍼졌다. 큰 목소리에 자극받은 듯 다른 아이들의 말소리도 점점 높아졌다.
“아니, 근데 오늘 담임 좀 너무하지 않아? 하린아, 괜찮아?”
“아, 오늘 조별발표? 응, 뭐….”
“야, 그건 완전 이지우가 잘 못 한거지! 담임이 사람 좋은 척 하려고 그냥 넘어가준 거라고. 와, 하여튼 이지우 운도 좋다니까.”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몇몇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마치 모두가 같은 생각이라는 듯 마지막 말에는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익숙한 이름이 대화에 오르자, 무의식중에 손에 들고 있던 트레이를 내려 놓았다. 귀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쏠렸다.
“언제는 협조적이었냐?”
“혼자 고고한 척, 늘 관망만 했잖아.”
“나는 진작 사고 칠 줄 알았다니까?”
처음엔 농담처럼 시작된 말이 점점 감정이 실리며 공격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할수록 감정이 고조되는지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카페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지우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테이블로 다시 퍼져나갔다. 어느새 카페 안의 모든 테이블에 ‘이지우’라는 이름이 내려 앉은 듯 했다.
나는 이런 상황을 너무 잘 안다.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반복되는 익숙한 장면. 누군가의 뒷말이 시작되고, 그 말에 말이 얹히고, 어느 순간 이야기는 본질을 잃고 흉측한 괴물이 되어버린다.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모를 말들이 살을 붙이고, 점점 몸집을 불려 정체 모를 괴물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괴물의 겉모습을 보며 쉬쉬하며 피하거나, 같이 동조해버린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테이블 앞에 다다르자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떨리는 손을 다른 한손으로 꼭 붙잡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지우랑 몇 번 이야기를 해봤는데, 지우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닌 거 같아요. 혹시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니, 사장님이 지우를 얼마나 봤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세요?”
“맞아요. 그리고 오늘은 진짜 이지우가 잘못한 거 맞다니까요. 조별 과제였는데, 어제 잠수를 타고 오늘 와서는 아무것도 안 해왔대요! 결국 하린이 혼자 다하고 발표까지 했다니까요?”
“무임승차는 잘못된 거 아니에요?”
”아니, 물론 그건 잘못된 건데….”
말끝이 흐려졌다. 괜히 변명처럼 들리는 건 아닐까. 더 말을 보탰다간 분위기를 악화시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나선 게 실수였을까. 그저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어야 했던 걸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게 혹시 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온몸을 조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뻔한 말만 꺼냈다. 친구끼리는 잘 지내는게 좋지 않겠느냐, 혹시 오해일 수도 있으니 대화로 풀어보면 어떻겠냐는, 누가 들어도 시시한 어른의 말. 그렇게밖엔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끝으로 어색한 공기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아이든 어른이든 여전히 어렵다. 특히 당사자가 아닌 누군가가 개입하는 건 더더욱. 방금 전 내 말도 누군가에겐 칼이었을까. 괜한 자책이 뒷머리를 짓누르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길게 숨을 내쉬며 카운터로 다가갔다. 문 앞에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지우였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반가둠과 당황스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무언가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입을 열려는 찰나, 지우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밀고 나가버렸다. 너무 빨랐다. 부르기도 전에 이미 뒷모습은 점점 멀어져갔다. 잠깐 스친 얼굴엔, 울음을 꾹 참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나는 지우를 끝까지 쫓지 못했다. 아니, 쫓을 수 없었다. 그 어떤 말도 전할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지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날씨는 점점 더워졌고, 햇볕은 하루가 다르게 뜨거워졌다. 날이 더워질수록 카페는 분주해졌다. 끊임없이 아이들은 카페를 찾아왔고, 주문은 끊이지 않았고, 나는 여느 때처럼 음료를 만들며 정신없는 하루하루 속에 지우와의 일이 머리속에서 희미하게 흩어지기도 했다. 하린이와 친구들은 늘 하던대로 학원차가 오기 전까지 머물렀다. 가끔 지우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면, 그들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줄이곤 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조심스러운 거리감이 카페 안을 떠돌았다. 언제가 되면 지우가 다시 올까.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조용해 진 시간에 아무도 모르게 들러줄까.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해는 길어졌고, 어둠이 내려앉은 뒤에서야 나는 가게 문을 닫을 수 있었다.
더위가 길어지자, 다시 비가 내렸다. 축축한 아스팔트 냄새 위로 공기 속에 스며든 진한 흙내음. 이제는 제법 여름 냄새가 나는 장대비였다. 며칠동안 바빠서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은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단비처럼 느껴졌다. 가게도, 거리도, 아이들도 조용했다. 하교 시간임에도 아이들은 교문을 나서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차에 몸을 싣었고, 순식간에 거리는 텅 비었다. 하린이와 친구들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남은 컵을 씻어 건조대에 올려두고,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솨아-하고 빗줄기가 굵어지며 빗소리가 커졌다. 나는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누군가의 인기척에 정신이 들었다. 비내리는 풍경 사이로 익숙한 초록빛이 스며들었다. 초록색 우산.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조심스럽게 우산을 접었다. 젖은 옷자락을 툭툭 털고 살며시 문을 밀고 들어왔다. 지우였다.
지우는 아무 말 없이 곧장 바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판을 두 손으로 꼭 쥐고, 한참을 고민하는 듯 했다. 마치 타인에게 마음을 읽히는 걸 경계하듯,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고요를 깨고 지우가 말했다.
“사실을 알고 그렇게 얘기했다고 생각 안 해요.”
목소리는 담담했다.
“오해를 남기고 싶지 않더라고요.”
지우가 삼켰을 말들을 곱씹어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메뉴판을 들고 한참을 고민하던 지우는 생강라떼를 주문했다. ‘멜론소다 안 먹을거야?’하고 묻자,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생강라떼가 더 끌려서요.”
예전에 한 번 마시는 걸 본 적이 있어서일까. 나는 아끼는 머그컵을 꺼내 생강청을 담았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천천히 붓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김이 나는 머그컵을 쟁반에 담아 지우에게 건넸다. 지우는 컵을 양손으로 감싸안고 조심스럽게 후-하고 불었다. 그리고 아주 작고 조심스러운 한 모금.
그날, 문을 나서던 지우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끝내 쫓아가지 못 했다. 내 경솔했던 행동에 책임지지 못 하는 비겁함의 결과였다. 나는 어른답지도 못 했고, 용기도 부족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다시 앉은 지우는 그 모든 걸 알고도 나를 찾아왔다. 불편한 상대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상처를 입고도 다시 한 번 손을 내밀 수 있는 태도. 그 모든 것이 지우 안에 있었다.
“고마워.”
지우가 내게 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우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어느새 지우가 조용히 자리를 잡은 것처럼, 나도 언젠가 지우 마음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길 바랐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 하고, 온전한 자신이 아닌 타인이 제멋대로 만든 이미지로 살아 온 아이.
하린은 모두의 아이라면, 지우는 아무의 아이인 거 같아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사과할 기회를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저도 지우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