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앞에서 나도 모르게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려나? 다행히 병원 안은 썰렁했다. 간호사분께 처음 왔다고 말씀드리고 인적사항을 적어 제출했다. 까만 패딩을 입은 젊은 남자가 서성이다 들어온다. 그를 배려하고 싶어서였는지 핸드폰에 시선을 박았다. 까만 패딩 환자가 먼저, 한 5분 정도 뒤 영업직 남자가 들어갔다. 내가 제일 먼저 왔는데 순서를 뺏긴 것에 살짝 화가나긴 했지만 그러려니 넘겼다. 그 중 나이 든 여자분이 와서 약만 받아가겠다고 하고 내 뒤에 앉았다. 영업직이 나가고 30초 후 나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중략)
의사는 내게 불안은 많이 높지 않으나 평균보다 조금 높고 우울은 중등도 정도라고 했다. 우울치료를 하면 좋을 거라고, 약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부작용으로 소화장애가 올 수 있으니 문제가 있으면 연락하라고.
진료를 마치고 간호사가 주는 약을 받고 나온다. 생각보다 다른 병원에 다녀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신기했다. 약을 오래 먹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기분이 빨리 나아졌으면 한다. 행복한 내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저, 하루가 즐거운 내가 되었으면 한다.
// 240129_정신과를다녀오다 (일기 발췌)
나는 인정했다. 내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잘 생각하고 있다면 괜찮은 거 아닌가? 쉽게 생각했던 거 같다. 어렸을 때 풀리지 않는 문제에 고민하다 몰래 정답지를 훔쳐보던 기억처럼, 마음속으로 ‘이건 우울이야’라는 답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안도와 함께 낙담했다. 곧 나아질 거라는 생각은 위안이 아니라, 문제를 직면하기 싫어서였던 것 같다. 그렇게 또 일상은 흘렀다. 나는, 내 감정을 돌보기엔 너무 바빴다. 토하기 직전, 목구멍 가득 차있는 일들은 조금만 실수해도 우르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집중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됐다. 그때는 그랬다.
꾸역꾸역 감정을 참는 매일이 일상이었다. 차를 타고 출근해서 퇴근하는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이 괴로웠다. 입버릇처럼 빨리 2023년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그냥 이 시간이 사라졌음 좋겠다고 얘기했다. 끊기지 않는 이명처럼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는데, 참는 거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저 이 시간이 지나가길, 구원 따위는 사치였다. 아무도, 그 누구도 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나는 회사에선 그럭저럭 괜찮은 척, 집에 돌아와서는 절망에 허우적댔다.
팀장님은 내가 가면 우울증 같다고 했다. 때로는 약물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나도 동의했다. 도저히 내 의지로 극복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고, 팀장님이 추천해 주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2층에 있었고, 나는 건물 입구에 들어서며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내가 병원에 들어가는 모습을 볼까봐, 왠지 모르게 창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려움을 안고 들어간 정신의학과는 의외로 흔한 내과 대기실과 다름없어 김이 빠졌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내려앉은 대기실. 오래된 소파라 무수한 사람들이 앚아 엉덩이 크기만큼 적당히 갈아앉아 있었고, 조용히 왔다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차가운 적막이 아닌 따뜻한 고요였다. 나는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났다. 카운터에서 이름이 불렸다.
처음 마주한 정신과 의사는 다소 무표정했고, 말투는 단정했다. 그는 차분히 내 상태를 물었고, 나는 그 태도에 조금은 낯설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의사는 어떻게 왔냐 물었고, 나는 운을 띄우자마자 울었다. 의사는 내 눈물에 당황하지 않았다. 감정 없는 말투로 휴지를 주며 천천히 얘기하라고 했다. 나는 마치 준비된 각본처럼,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쏟아내듯 말하기 시작했다.
“어, 제가 번아웃이 온 거 같은데요. 작년에 좀 큰 업무를 맡았는데, 그래서 상사랑 많이 부딪혔거든요. 그것 때문에 힘들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어, 제가 얼마전에 드라마를 봤는데 거기 주인공이 우울증이더라고요. 근데, 어,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이랑 제가 닮아 보여서요. 그리고, 어, 최근에 출근하면서 출근길에 계속 눈물이 나고, 회사에서도 감정 조절이 안 되더라고요. 계속 눈물이, 그러고 싶지 않은데 계속 나요.”
토해져 나오는 말은 귀로 다시 돌아왔다. 내가 뱉는 말에 다시 상처를 받았다. 나는 때론 생각 없이 뱉어지는 말에 깨달을 때가 많다. 아, 나 이런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 이런 기분이었구나 하고.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들은 뒤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된 것 같은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최종 학력, 가족 관계, 아동-청소년기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었는지, 그리고 대인 관계는 어떤지. 나는 재작년 이유 모를 병에 시달리다 위기능장애 약을 먹었던 일과 갑작스레 체중이 빠진 사실을 이야기 했다. 의사는 그것은 번아웃이 온 것일 수 있다며, 잠깐 나가 우울과 불안 척도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진료실을 나오자 간호사가 스마트탭을 건넸다. 20여 개 항목에 체크를 하는 검사였다. 항목을 하나하나 체크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지금 하나도 행복하지 않구나.’
지난주는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 회사에서 퇴사한 직원을 만나 평소에 궁금했던 대학원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오랜만에 친한 동료와 술을 마시면서 우울증 이야기를 꺼내다 울었지만, 그마저도 웃으며 넘길 수 있어서 좋았다. 또 다른 날엔 대학 후배를 만났다. 재밌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번보다 덤덤하게 볼 수 있어 스스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하면서 함께했던 아이들도 만났다. 이제 사회인이 된, 되려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다. 즐거웠다, 분명. 그런데 객관적인 질문 앞에서는 나는 전혀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의사가 무슨 말을 할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시 진료실로 들어가 마주한 의사는 문진표를 보며 말했다.
“불안은 위험할 정도는 아니고 평균보다 조금 높고, 우울도는 높은 편입니다.”
불안을 낮추기 위한 신경안정제와 우울증 약을 주겠다고 했다. 우울증 약에는 부작용이 있으니 일단 1주일 분을 주겠다며, 1주일 뒤에 내원해라고 했다. 소화가 잘 안 될 수 있으니 소화제를 함께 넣어뒀고, 혹시나 먹다가 불편하면 바로 투약을 멈추고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진찰실을 나왔다. 정신과 약은 약국에서 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카운터에서 바로 약을 받았다. 내가 약을 받는 동안 누군가가 병원을 들어왔다. 약 복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병원을 나섰다. 놀랍게도, 의사가 내게 ‘우울증입니다’라고 말해준 그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아, 그렇구나. 나 우울증이구나. 정확한 병명이 나왔으니 이제 치료하면 되는 거겠지. 병원을 나서면서 나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크고 선명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아주 조용한 안도의 숨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