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이 이해 못 하는 대표 식물명
식물 분류학을 보다가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피식 웃었던 적이 있다. 바로 '볏과'라는 이름 때문이다. 한국어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볏과 식물"이라고 말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양에서도 벼(rice)가 이 과(family)의 대표일까?
답은 간단하다. 아니다. 영어권에서는 애초에 "대표 식물 이름을 과 이름으로 쓴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한국은 수천 년 동안 벼가 주식이었고, 그래서 그 과 전체에 아예 '볏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극히 한국 중심적인 명명 방식이다.
'국화과(Asteraceae)'도 비슷하다. 한국어로는 국화가 대표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국화라는 단일 종"은 존재하지 않고 '국화속(Chrysanthemum)'만 있을 뿐이다.
그럼 영어권에서는 어떻게 부를까?
Poaceae를 그냥 grass family(풀과)라고 부른다. 밀, 보리, 옥수수, 사탕수수, 대나무, 벼까지 모두 포함한 거대한 그룹. 특정 식물 하나를 대표로 내세우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이 밀 중심으로 살아왔다고 해서 'Wheataceae(밀과)'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벼가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벼가 억울할 이유도 없다. 대표 식물을 이름으로 쓰는 방식 자체가 없으니까.
'부추속(Allium)'을 떠올려 보자. 한국에서는 자연스레 '부추속'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부추, 마늘, 양파, 대파, 쪽파, 샬롯, 리크… 이렇게 온갖 파 종류가 다 들어간다.
영어권에서는 그냥 Allium genus라고 부르고 끝. "대표가 누구냐?"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볏과'와 '부추속'이라는 말은 우리가 밥 짓고 마늘·부추 썰어 넣고 김치 담가 먹으며 살아온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문화적 이름이다.
그래서 영어권 사람들은 이런 이름을 보면 이렇게 묻는다.
"왜 벼가 대표야?"
"왜 하필 부추가 대표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름들이다. 이런 사소한 언어 차이가, 알고 보면 우리 문화의 깊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순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