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생명을 어디까지 말할 수 있나 ―『생명을 묻다』

생명과학이 멈춰 서는 지점에 대하여

by 어제와다른오늘
(작은 이미지) 도서 『생명을 묻다』 표지 이미지(띠지 포함)

『생명을 묻다』 | 정우현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이 불편했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볼 만하다.

정우현의 『생명을 묻다: 과학이 놓치고 있는 생명에 대한 15가지 질문』은 흔히 말하는 과학책과는 결이 다르다. 생물학과 물리학의 성과를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과학이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고 어디서 멈춰 서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인용 도서의 폭만 봐도 이 책이 단순한 과학 교양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의 불편함

이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대목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비판하는 부분이다. 도킨스가 사용하는 '유전자'라는 개념은 문맥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때는 기능 단위로, 어떤 때는 염기서열로, 또 어떤 때는 염색체나 유전체 전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기적"이라는 성질을 부여할 때, 그 대상이 무엇인지는 끝내 분명해지지 않는다.


유전자는 결국 염기서열에 불과하다. 유전자 자체가 목적이나 의지를 가질 수는 없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선택하고 판단하는 주체는 유전자가 아니라 생명체, 즉 개별 개체다. 유전자는 개체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해석하고 발현하는 수단에 가깝다.


개체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 – 창발성

그렇다고 생명 현상을 개체나 세포 수준에서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창발성(emergence)'은 바로 그 한계를 가리킨다. 단백질이나 핵산은 살아 있지 않지만, 그것들이 모여 구성된 세포는 살아 움직인다. 신경세포 하나에는 '마음'이 없지만, 수천억 개가 모인 뇌에서는 마음이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이러한 성질은 단순한 물리 법칙의 인과관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름은 붙였지만, 메커니즘은 모른다. 창발성은 설명이라기보다, 설명이 멈춰 선 지점에 붙여진 이름에 가깝다.


emergence와 emergency 사이

흥미로운 점은 emergence(창발)와 emergency(비상사태)가 철자 하나 차이라는 사실이다. 둘 다 '갑작스러운 발생'을 의미하지만, 하나는 긍정적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다. 생명에서의 창발은 경이롭지만, 동시에 예측과 통제를 벗어난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비상사태이기도 하다.


생명을 설계하려는 오만

책의 후반부에서 인용되는 마이클 샌델의 논의는 생명 설계의 문제를 윤리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유전적 강화를 통해 자녀를 설계하려는 시도는, 자녀를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라 소유물로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생명을 이해하려는 욕망이 생명을 통제하려는 욕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한때 유전자 조작과 생명 설계를 소재로 한 로빈 쿡의 소설 『돌연변이』가 떠올랐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로빈 쿡의 소설이 과학기술의 오남용이 초래할 파국을 '사건'과 '서사'로 경고한다면, 『생명을 묻다』는 훨씬 이전 단계에서 질문을 멈춰 세운다. 이 책의 관심은 기술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왜 생명을 설계하려는 욕망을 갖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욕망 자체가 어떤 윤리적 결핍에서 비롯되는가에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스릴러적 상상이나 극단적 미래상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샌델이 말한 '선택하지 않은 존재를 향한 열린 마음'이라는 개념을 통해, 통제와 정복을 미덕으로 여겨온 현대 사회의 태도 자체를 문제삼는다. 생명 설계는 실패했을 때 위험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더라도 이미 인간다움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을 묻다』는 과학기술의 미래를 경고하는 책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태도를 되묻는 책에 가깝다.


세 가지 질문만을 고른 이유

『생명을 묻다』에는 모두 열다섯 개의 질문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중 세 가지만을 골라 다뤘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개념의 모호함, 생명 현상을 설명하려다 마주치는 '창발성'이라는 한계, 그리고 생명을 설계하려는 욕망이 드러내는 '창조라는 오만'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유전자는 설명의 단위로 선택되었지만 곧 개념적 혼란을 드러내고, 그 혼란을 넘어가면 창발성이라는 이름의 설명 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지점을 인정하지 못할 때, 인간은 생명을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통제하고 설계하려는 단계로 넘어간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 가운데 이 세 꼭지는, 과학이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고 어디서 멈춰 서야 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느꼈다.


질문을 남기는 책

『생명을 묻다』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생명을 도구로 환원하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는 태도로 귀결된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참고자료

김응빈의 응생물학, "이 영상을 보면 'DNA, 유전자, 염색체, 유전체'를 이해한다?!", YouTube, 2023, https://youtu.be/Lijhy8Zo5UI?si=iKAO1BNG8VDohM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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