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알면 왜 못 살아남는가 ― 『하늘이여 땅이여』

허구로 밀려난 진실

by 어제와다른오늘
(작은 이미지) 도서 『하늘이여 땅이여』 표지 이미지

『하늘이여 땅이여』 | 김진명


간략 줄거리

『하늘이여 땅이여』는 일본의 슈퍼컴퓨터가 원인 불명의 장애를 일으키는 사건에서 출발한다.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 현상은 한국의 무속과 풍수에서 비롯된 신비한 힘 ‘토우’와 연결되며, 합리와 이성의 질서에 균열을 낸다.

한편 파티마 제3의 예언을 요구하며 등장한 사도광탄은 일본 신관이 낸 문제를 모두 맞히지만, 그 대가로 목숨을 잃는다.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자가 먼저 제거되는 순간이다.

이 사건들은 종교와 권력, 민족의 뿌리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갈등으로 확장되며, 소설은 허구로 밀려난 진실이 어떻게 배제되고 소멸되는지를 따라간다.


진실을 겨냥한, 색다른 소설

김진명의 소설은 대개 정치·사회적 음모를 다룬다. 그러나 『하늘이여 땅이여』는 다르다. 이 작품은 '토우'라는 신비한 힘을 전면에 내세우며,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이야기의 중심에 둔다. 현실 정치의 음모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진실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묻는 소설이다.

이 책은 단순한 신비담이 아니다. 진실을 아는 자가 살아남지 못하는 세계, 그 냉혹한 규칙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정답을 모두 맞힌 자의 죽음

사도광탄이 일본 신관이 낸 세 가지 문제를 모두 맞히는 장면은 오래 남는다. 그 장면은 단순한 퀴즈 풀이가 아니라, 진실을 아는 자의 운명을 예고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답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결국 죽는다. 지식을 얻는다는 것,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 곧 소멸로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는 소설 속 설정을 넘어,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매장되는 내부고발자들의 현실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비밀을 알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계. 그 공포가 이 장면에 응축돼 있다.


신앙과 미신을 가르는 자의적 기준

사도광탄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독교는 왜 신앙으로 존중받고,
무속은 왜 미신인가?

결국 둘 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 행위다. 그럼에도 어떤 믿음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보호받고, 어떤 믿음은 '미신'이라는 낙인 아래 배제된다.

이 질문은 종교 비교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내재화한 주류적 시선이, 진실과 허구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토우’는 단순한 무속적 상징이 아니다. 비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된 진실이, 이 소설에서는 묵직하게 돌아온다.


진실을 심판하는 자, 기디온의 흔들림

기디온은 자신보다 더 깊은 통찰을 지닌 이를 처단해야 하는 위치에 선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자신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가. 정의와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제거하는 폭력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이 질문은 소설을 넘어 현실로 이어진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권위'라는 이름으로 판단하고, 배제하고, 침묵시키는가. 어쩌면 기디온은 진실을 말하는 이들이 겪게 될 내부고발자의 공포를 가장 잘 아는 심판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그런 기디온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안녕을 명분으로 진실을 억압한다.


허구와 진실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하늘이여 땅이여』는 끝내 묻는다. 진실을 본 자는 왜 살아남지 못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허구라 치부한 힘이, 오히려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음을 조용히 일깨운다.

이 소설은 무속적 상상력을 통해 현대 문명이 감추고 있는 맹점을 드러내며, 진실을 말하는 자가 제거되는 세계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생각은 오래 남는다.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그리고 그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이 소설이 남긴 가장 강렬한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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