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자본주의의 축소판 ― 『전지적 독자 시점』

합법적 약탈로 굴러가는 세계

by 어제와다른오늘
(작은 이미지) 도서 『전지적 독자 시점』 표지 이미지

『전지적 독자 시점』 | 싱숑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전지적 독자 시점』을 이제 딱 47화, 단행본으로는 2권까지 읽고 있다. 이 소설의 세계는 얼핏 게임처럼 보인다. 레벨이 있고, 화폐가 있으며,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세계는 공정한 경쟁을 전제로 한 게임이 아니다. 처음부터 불공평하게 설계된 구조다. 그리고 이 불공평함의 핵심에는 성좌가 있다.


성좌는 싸우지 않는다

성좌는 직접 전장에 내려오지 않는다. 그들은 코인을 사용해 후원하고 개입하며, 플레이어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를 관람한다. 플레이어에게 코인은 생존 자원이지만, 성좌에게 코인은 소비재이자 투자금이다.

같은 화폐를 쓰지만, 한쪽은 돈을 잃고 다른 한쪽은 목숨을 내놓는다. 이 세계에서 성좌들이 부유한 것은 능력의 증거가 아니라 위치 때문이다.


합법적인 약탈 구조

전독시에는 성좌의 독선을 막을 실질적 제도가 없다. 시나리오 규칙과 개연성 비용은 윤리적 통제가 아니라 절차적 제한일 뿐이다. 이 시스템은 불공정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합법화한다.

플레이어의 실패는 죽음으로 귀결되지만, 성좌의 실패는 투자 손실로 끝난다. 그래서 이 세계는 약탈적 M&A가 제도적으로 허용된 자본주의 시장과 닮아 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

플레이어는 곰처럼 재주를 부린다. 넘어지면 죽는다. 성좌는 왕서방처럼 위에서 지켜본다. 재미가 없으면 지갑을 닫으면 그만이다.

이 구조 속에서 성좌는 존경받을 수 없다. 현실에서 졸부를 곱게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부가 고통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플레이어로 남는다는 것

김독자와 유중혁은 끝내 성좌의 자리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가 이 소설의 구조 자체이기 때문이다.

『전독시』는 묻는다.

살아남기 위해 구경꾼의 자리에 올라서야 하는가, 아니면 끝까지 현장에 남을 것인가. 이 질문은 작품 속 인물에게만 던져지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그대로 돌아온다.


내려올 수 없는 게임에 올라탄 뒤에

『전독시』는 성공과 승리를 말하는 판타지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불공평한 세계에서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를 묻는 이야기다.

아직 2권까지밖에 읽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작품의 초반 핵심 서사가 눈에 들어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2권 만에 『전독시』의 실체를 간파한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이후 전개는 초반과는 달랐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다. 그래야 마지막 20권까지 완독이 가능할 테니까.

이 세계가 끝까지 유지되는 이유는 아마도 공정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이 구조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 올라탄 이상, 내려오는 선택지는 없다. 『전독시』의 세계는 기호지세로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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