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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정숙 Jan 10. 2019

엄마를 도와줘서 뿌듯해요.

어느 날 여덟 살 아들이 설거지로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아들: 엄마, 나랑 설거지 게임할까?

나: 설거지 게임이 뭐야?

아들: 누가 더 빨리 설거지를 끝내나 대결하는 거지.

나: 그런 게임이 있어?

아들: 내가 지금 생각해낸 거야.

나: 어떻게 하면 돼?

아들: 일단, 가위바위보를 해.

나: 그다음엔?

아들: 그릇을 세제로 닦는 사람과 헹구는 사람으로 나눠. 이기는 사람이 먼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거지.

나: 어떻게 해야 게임을 이길 수 있어?

아들: 모든 그릇을 먼저 닦은 사람이 이기는 거야.      


어른인 나에게는 설거지가 귀찮은 일거리일 뿐이지만 아들은 평소 설거지하는 걸 참 좋아한다. 그렇기에 설거지로 게임을 하자는 발상까지 한 것이다.


아들이 다섯 살 무렵 처음으로 설거지에 동참시킨 이유는 엄마가 집안일을 할 때면 "심심해 놀아줘"를 연발하며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아들의 입막음용이었다. 온 사방에 물을 튕겨가며 세월아 네월아 오랜 시간이 걸려 그릇 한두 개를 닦아내는 아들의 설거지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뒤치다꺼리 일거리가 늘어났다. 하지만 아들이 그 어떤 장난감 놀이보다 더 즐거워하니까 이후부터는 함께 설거지하도록 종종 허락해주었다.


아이는 회를 거듭할수록 설거지에 익숙해졌고, 조금씩 점점 더 많은 일감을 요구했다. 처음엔 그릇 한 두 개 쥐여 주던 것이 이제는 세제 닦기와 헹구기 담당으로 나누어서 해도 충분히 나와 속도가 맞을 만큼 능숙해졌다. 그릇의 종류도 플라스틱, 접시뿐만 아니라 커다란 냄비에서 도자기 식기까지도 문제없이 닦아낸다. 온 사방을 물난리로 만들던 아이가 이제는 설거지를 마친 후 행주로 싱크대에 튄 물기까지 훔쳐낼 정도로 야무져졌다.


설거지 외에도 다양한 집안일에 아이를 동참시킨다. 아이에게 집안일을 맡길 때 기본 원칙은 엄마가  같이 하고, 서로 의논해서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다. ‘너는 어디를 맡을래? 나는 안방을 맡을게’ 또는 ‘내가 청소기로 밀게. 네가 회전 물걸레로 닦아줄 수 있어?’ 이런 식이다. 분리수거도, 집안정리도, 운동화 빨기도 엄마와 함께 하는 한, 아이에게는 일이 아니다.

어른이 ‘집안일’이라고 생각하는 일 중에 아이가 유일하게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은 빨래 개는 일이다. 도대체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빨래 개는 일은 시키지 않는다. 내 원칙은 아이가 집안일에 자발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싫어하는 일 대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세제를 넣어 작동시키고, 세탁이 완료되면 세탁물을 꺼내어 건조기에 넣고 꺼내는 일 정도를 부탁하면 그건 기꺼이 도와준다.


아이가 어렸을 때 유치원도 보내지 않고 잠자는 시간 10시간 정도를 제외하고 하루 14시간, 주 5일 동안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했을 때 아무리 품앗이 활동하고 먼 나들이하고, 친구들 모임을 해도 하루는 너무 길었다. 아이는 끝도 없이 ‘놀아줘 심심해’를 달고 살았다. 창의력과 손재주가 부족하고 부지런함과는 거리가 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차피 해야 할 집안일을 아이와 함께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시간이 잘 흘러간다. 오늘 하루도 그런대로 잘 보냈다는 뿌듯함을 안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아이는 엄마와 일상 놀이를 할 때 뿌듯함과 성취감과 몰입감을 느끼며 즐거워한다. 그 어떤 놀이를 할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자신은 어리지만, 어른처럼, 어른과 똑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자주 경험하며 자기 효능감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렇기에 내 아이가 나중에 아빠가 된다면 나와 함께 했던 '집안일 놀이’를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을까 싶다.  


영유아 발달심리 전문가로 유명한 김수연 박사는 이른 나이에 집안일을 많이 해본 아이일수록 인생 전반에 걸쳐 책임감, 능숙함, 자립심, 자아 존중감을 많이 느끼고 삶에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특히 만 3~4세 때 집안일 참여도가 20대 중반의 성공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어릴 때 집안일을 하지 않다가 사춘기 지나서 시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하니 집안일을 통해 아이에게 긍정적인 정서를 형성하고 싶다면 어릴 때부터 놀이처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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