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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정숙 Aug 30. 2018

유능감을 키우는 최고의 방법

소신 육아

“이거 실화냐?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해?” 일곱 살이던 아들이 능숙하게 김장 김치를 담그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김치 버무리다가 배추 속 잎 한 줄기에 매운 양념 속을 올리고 돌돌 말아 한입 가득 넣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어도 믿기 어렵다고 한다. 일곱 살의 솜씨 치고는 너무 능숙하다는 것과 시뻘겋고 매운 김장 김치를 어른처럼 맛나게 먹는 어린아이를 주변에서 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가족은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주말농장의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임신 때는 태교 삼아,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놀이터 삼아 텃밭을 일구었다. 아이는 네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텃밭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쟁기로 밭도 일구고 씨도 뿌리고 물도 주었다. 그렇게 정성 들여 키운 채소의 향을 맡으며 수확하는 재미도 붙였다.      

그 덕분에 아이는 풋고추, 오이, 토마토는 밭에서 따서 바로 씻어 먹을 정도로 채소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다섯 살부터는 텃밭에서 재배한 김장 배추, 무, 알타리 등을 직접 뽑고 손질도 했다. 누런 겉잎을 떼어내고 뿌리를 칼로 잘라낸다. 소금물에 담근 뒤, 소금을 덧 뿌리고 중간중간 뒤적여 주기도 했다. 절인 채소를 헹구고 양념 만드는 일도 거든다.

모든 재료 준비가 끝나면 커다란 고무장갑을 끼고 엄마 옆에 앉아서 김장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한다. 다섯 살 아이의 손에 어른 고무장갑(요즘은 어린이용 고무장갑도 있다)은 너무 커서 줄줄 흘러내린다. 고무줄로 고정해도 잘 맞지 않다. 엉성하고 어설픈 상태로 어른 흉내 내며 김장 속 넣는 걸 아이는 무척이나 재미있어했다. 아니, 사뭇 진지했다. 흡사 도공이 도예 작품을 빚듯, 한 줄기 한줄기 혼신의 힘을 기울여 양념 속을 넣는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처음으로 김장 김치 속을 넣었던 해에는 손놀림이 아주 서툴러서, 배추 한쪽에 양념 속을 넣는데 30분도 넘게 걸렸다. 해가 갈수록 김장 속 넣거나 버무리는 품새가 그럴듯해지고 있다. 김치를 버무리다가 배추 한 줄기 떼어내 속을 넣고 맛을 보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입을 크게 벌린 채 김치를 입안 가득 넣고 맛을 본다. 딱 엄마와 할머니가 보여주던 모습 그대로다.

아이는 어깨너머로 어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여 그대로 모방한다. 김치를 만드는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아이에게는 매운 김치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갓 버무린 김치 양념 속 고추와 마늘의 맵고 알싸한 맛도 달달하고 짭조름한 배추잎과 함께 기꺼이 맛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도 겨울이면 김장체험을 하는 곳이 많다. 집에서의 김장과 차이가 크다. 기관에서는 절인 배추를 한 아이당 1~2쪽씩 나누어주고 이미 만들어둔 양념 속을 주어 배추잎에 바르게 해준다. 지나치게 단순하다. (물론, 이런 경험도 소중하다. 매일 밥상에 오르는 김치를 자신이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을 주니까) 엄마와 김장김치를 할 때는 배추를 뽑아서 (구입해서)  손질하고 절이고 양념 만들고 속을 넣는 과정까지 12시간이 넘게 걸린다. 유치원 등에서 체험할 때는 길어야 1시간이면 끝이다.   

   

모종을 텃밭에 심어 키우고 수확해서 손질하고 절이고 양념하고 발효시키는 전 과정까지 본다면 3개월 정도의 정성을 들인 끝에 먹을 수 있는 게 김치라는 것을 아이는 몸으로 깨우친다. 한 접시의 김치가 밥상 위에 오르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아이는 음식을 귀하게 생각한다. 음식을 남기면 버리게 되는데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이에게 어떤 일을 경험하게 할 경우 가급적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에 동참시킨다. 그것이 제대로 배우고 깨우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놀이 전도사로 유명한 편해문 작가도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라는 책에서 내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아이들은 일과 놀이를 통해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놀이는 부모 옆에서 함께하는 일상인데, 요즘 시대는 아이들이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일상적인 ‘일’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궁여지책으로 체험 프로그램에 비용을 지불하고 참가하지만 진짜가 아니다. 쿠키 만들기 체험 수업을 예를 들어본다. 재료를 섞어서 이미 잘 만들어진 똑같은 양의 반죽이 모든 아이에게 제공된다. 그 재료로 아이들은 똑같은 장식을 하고 똑같은 크기의 똑같은 모양의 쿠키를 찍어내듯 만든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찰흙으로 쿠키 모형을 만든 것과 진짜 쿠키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먹을 수 있다 없다는 것만 빼고...     


밀가루를 흘려가며 계량하고, 소금과 설탕, 버터도 섞고 반죽도 해봐야 쿠키를 만들려면 밀가루 소금 설탕 버터가 필요하다는 걸, 밀가루는 많이 필요하고 소금은 조금만 필요하다는 것 등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반죽을 떼어 내어 제멋대로 모양도 만들어보고 삐뚤빼뚤 나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작품(?)을 만들어야 충분한 몰입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살아있는 지식이 되어 웬만하면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금 번거로워도 요리만큼은 전 과정에 아이를 동참시킨다. 요리는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므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무의식적인 불안감이 적단다. 그런 이유로 발도르프 학교를 포함해 많은 대안학교들은 대체로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최우선으로 키우고자 노작 활동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전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간단하고 쉬운 요리도 많다. 매일이 어렵다면 어쩌다 한번, 주말에 한 번쯤이라도 아이들과 장보기부터 손질, 요리, 식탁 차리고 먹고 치우는 전 과정을 놀이처럼 함께하면 재미도 느끼고, 정서적인 교감과 애착, 자기 효능감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음은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요리 활동이다. 경험이 반복될수록 숙련되어서 나중에는 뒤치다꺼리가 많이 생기지 않는다. 처음 시작할 때는 서툴러서 뒤처리가 번거롭지만, 아이가 표현하는 기쁨의 크기를 경험하면 뒤처리의 노고가 감당할만해진다. 번거롭고 귀찮아도 엄마와 함께 요리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은 어떨까? 그 어떤 놀이동산, 체험학습보다 아이가 느끼는 즐거움의 강도, 만족감이 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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