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를 끝낸 그 이 앞에 한 움큼 나와 있는 양말들이 왜 모였나 눈을 동그랗게 뜬 나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요즘 빵구 난 양말 깁고 있는 여자는 또 어딨 담?’
그새 내 맘을 읽었는지
“엄지발가락 쪽만 조금 기워주면 돼.”
“......”
‘으이구, 그게 더 성가시거든.’
새벽 5시 반 출근 준비 끝낸 그에게 차마 말로 내뱉진 못했다.
단추나 바짓단 치맛단이야 왔다 갔다 바늘땀이라도 몇 번 오가지, 빨아 말린 양말 짝 맞추기 할 때도 보지 못한 작은 구멍 메우기가 더 애매하다는 거. 요즘 사람들 양말에 빵구 나는 사람이 있을까 그걸 기워 신는 사람 또한 있을까 싶다.
그 이 발톱은 어찌 된 게 얼마 신지 않은 새 양말까지도 뚫는 힘이 있다. 아무리 신어도 구멍 나기 쉽지 않은데, 그 이 발톱으로 인한 빵구.
구멍만 메우면 멀쩡해지니 버리기는 더더욱 아까운 거. 한두 켤레 빵구날 때마다 깁다보면 난 일 년 내내 빵구 난 양말 깁는 여자가 될 거다.
모을 수 있으면 최대한 모아 기우려고 하는데, 바느질에 취미도 없는 데다 하루 쉬는 일욜날 구멍 난 양말 기우기로 보내야 한다는 건 썩 내키는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빵구 난 양말은 쌓이고 또 쌓이고.
내가 어렸을 땐 구멍 난 양말을 자주 기워 신은 거 같다. 엄마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는데...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10센티미터쯤 되는 두툼한 큰 바늘을 꺼내서 바느질을 하실 때가 많았다.
이불 홑청을 뜯어 손빨래를 거친 다음 바지랑대 팔랑이는 바람을 쐰 후 대청마루에 펼쳐 놓고 이불을 꿰맬 때였다. 한쪽에서 뒹굴뒹굴해다가 언능 안 일어나냐며 야단을 맞았을 텐데... 폭신폭신 이쪽저쪽으로 뒹군 기억이 난다.
으악, 엄마의 바느질 잠시 멈출 때가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장면이다. 그 무시하게 생긴 바늘을 엄마 머리카락 언저리에 바늘꽂이로 사용했던 거. 엄마 머리 밑이 찔릴까 봐 걱정을 했더랬다. 그 당시 엄마가 지금 내 나이쯤 될 거 같은데, 난 지금 하라고 해도 상상만도 불가능이다.
그 외에도 단추나 훅 달린 옷들이 많았는지 수시로 단추 떨어지면 달아달라고 했다. 중학교 가사 과목의 수예 시간 바느질을 배운 후엔 내가 달아보기도 했을 테다. 단추가 떨어져 눈 안에 들어온 날엔 귀한 목걸이 줄 터져 보석 챙기듯 잘 챙겨야 했다. 반짓 고리 안에 단추, 지퍼, 양복 남은 천 쪼가리, 줄자, 바늘꽂이 등 없는 거 빼고 다 들어있지만, 그 옷에 맞는 똑같은 단추를 잘 챙기지 않으면, 톡톡 튀는 단추를 달 수 있기 때문에.
바느질할 일을 떠올리니 별게 주르륵 따라 다 올라오는 듯. 다른 이들의 발가락은 꼭꼭 숨고 싶은 게지. 그 이의 발톱만 발 꼬락 내 벗어난 공기 마시며 세상 궁금증, 호기심 빵구난 곳으로 내다보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어찌 그리 막으려 하는 건지....
‘양 발의 양말 색도 달리 신는 요즘, 시원한 공기로 숨통 트여하는 그이의 엄지발톱이 내다볼 구멍을 꽁꽁 막으려니 아쉽도다!! 깜깜한 동굴 속에 가둬야 하니...’
별 엉뚱한 상상을 하며 바늘에 실을 꿴다. 갇히는 발가락은 답답하겠다.
그 이의 빵구 난 양말로 인한 부끄러움은 덜할 테고. 짱짱한 양말 신고 다니며 식구들의 의, 식, 주에 보탬될 돈 벌어 오는데, 지장이 있으면 안 될 테니. 애쓰는 그이를 위한 빵구 난 발구락 양말 잘 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