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그 쪽 분들 표현 좀 하고 삽시다.
가족끼리 애정표현은 많이 할수록 좋다.
“엄마, 울 아빠가 표현이 많이 늘었어.”
무슨 말인가 싶어 따닝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 아빠가 딸냄이 사준 옷 잘 입을게 하더라구.”
아빠의 성향과 성품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는 울 따닝은 무뚝뚝한 아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자체가 신기했나 보다.
얼마 안 있으면 그이 생일이라 아빠에게 드릴 티셔츠를 소파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 보면 울 따닝도 그렇지. 보통 집 애들의 애교 많은 따닝이었다면,
‘아빠, 아빠 내가 아빠 주려고 옷 사 왔어. 빨리 입어 봐!! 얼릉!’
이럴 텐데, 울 따닝은 간밤에 소파 위에 뚜껑을 살짝 열어 올려놓은 거다.
그 아빠의 그 따닝이라니. 둘 다 무뚝뚝하기로는 도토리 키재기일 정도니 말해 무엇하리.
돌이켜보면, 참 이런 아빠 또 있을까 할 만큼 아이 둘한테 지극정성이었다. 큰 따닝을 낳고 3개월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 보는 일만 하는데도 나는 힘이 들었다. 주말이면 자유 시간을 갖고 싶었다.
매주 토요일은 아빠랑 보내는 날을 반강제 정해둔 듯 맡겨놓고 외출하였다. 백화점도 한 바퀴 돌며 눈요기하고, 서점에 들러 이 책 저책 뒤적이며 책 향기 맡고 실컷 읽다가 나올 땐 맘에 드는 책 손에 들고 나오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 그러고 나면 일주일 밤낮 바뀌어 울어 치다꺼리하는 것도 거뜬히 해낼 수 있고, 괜한 짜증과 툴툴거림도 덜 나왔다. 그걸 알기라도 한 듯 나 혼자 외출을 즐기게 해 주었다.
콧바람 쐬고 입이 헤벌쭉해져 들어와 보면 우유 타서 먹여 트림 시켰고, 기저귀 갈아줬고, 팔베개해서 뉘어놓고 같이 잠들어 있을 때가 많았다. 나는 그렇게라도 하고 들어와야 숨통이 트이고, 살아갈 에너지를 얻곤 했다. 그이와 따닝을 강제로 붙여놓는 시간이 된 셈이었다.
울 따닝은 밤낮이 바뀌어 밤이면 일어나서 놀거나 울어대는 통에 아침 일찍 출근하는 그이는 옆방에서 따로 잤다. 같이 잤다간 시간마다 깨는 아이와 자는 둥 마는 둥 모두가 피곤에 쩔어 있을 테니까. 그런 탓에 토요일 낮시간 아빠랑 같이 지내고, 밤 시간엔 같이 자는 날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밤 시간 잠을 잘 수 있는 주중의 하루 있는 유일한 날. 일주일 중 그날 만을 기다렸을 수 있지 않을까.
한 번은 고향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토요일이었다. 일주일 중 밤 시간에 맞춰 한번 잘 수 있는 날이 그렇게 간절할 수 없었다. 잠을 하룻밤도 안 자고 못 배기는 나였으니... 앞뒤 물불 가릴 새 없었고, 마음의 여유라곤 바닥을 긁고 있었다.
고민 고민했을 텐데, 결국 친구 분과 그이, 아이랑 같은 방에 셋이 자게 하고 나는 혼자 이불속에 들어갔다. 낯선 사람의 기운을 감지했나. 울 따닝이 밤새 울어재끼는 바람에 한숨도 못 잤다며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었다. 나도 참 딱한 처지였을 텐데, 어쩌다 놀러 왔던 둘도 없는 그이의 그 친구 분께도 많이 미안하다.
둘째인 남동생이 태어난 후에도 큰 따닝에 대한 애정은 변함 무였다. 내가 있는 날엔 주방에 거의 들어가지 않는 그이가 내가 교육이다 뭐다 하여 외출한 날엔 그렇게 요리를 잘한다나? 상상이 안 되는 일이니 다 큰 따닝과 다 큰 아드닝을 위한 요리를 해낸다는 거다.
울 따닝과 아드닝을 사로잡는 특별요리는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할 수 있는 김치볶음밥.
엄마가 해주는 김치볶음밥은 김치국물 꾹 짜낸 희멀개서 싱거운, 아빠가 해주는 건 새빨간 국물이 들어가 짭쪼롬한 맛이 제대로 살아있다나.
아빠가 퇴근해서 올 시간 기다린 듯 와르르 달려가 양 팔에 한 자리씩 차지하며 부둥켜 안기던 녀석들이 다 자라서 아빠의 옷을 사 줄 정도로 많이 커버렸다. 다정함과 믿음직스럽다는 걸 마음으로 가득 느끼는 분들.
'어이, 그 쪽에 있으신 가족 분들, 거 좀 표현 더 하거나 제대로 하고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