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어휘 중에는 정감 있고 따뜻하고 포근함을 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하루에 한 번씩 꼭 같이 하는 물건인 이불. 목화솜이불이라면 뽀쏭함도 함께 할 테지.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몸을 부풀렸다 빼기도 하고 아예 몸 전체를 바꾸어 주면 제 역할의 본분을 톡톡히 하는 이불. 나는 이 말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그이와는 둘이서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정감 넘치는 단어의 주인공 이불을 따로 덮지 않았다. 지지고 싸우고 볶아 등을 돌리고 자더라도 같이 함께 자야 한다는 게 있었던 거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를 생각하기라도 한 듯 그리 살았다.
잠자다 그이가 이불 면적을 많이 필요로 할 때면 내 등짝이 살짝 드러나서 몸을 움츠려야 할 때도 잠든 채 꿈속을 헤매다 이불을 친친 감거나 돌돌 감아 내 쪽으로 쏠리면 다시 재정비하여 이불을 나눠 덮곤 했다.
그이가 1년간 지방 파견근무로 그이 자리에 울 따닝이 누워서 같이 잘 때였다. 울 따닝과 잘 때도 당연히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거라 생각했다. 하루 같이 자고 나더니 불편함이 너무 많아 한 이불속에 도저히 같이 잘 수 없다며 자기 방에 있는 이불을 안고 와서 내 옆에 누웠다.
잠을 실컷 자고 한 밤중 잠이 깨어 내 옆을 보니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같이 자는 게 맞나 싶어 서운했다. 쉬이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내 생각만 한 것에 이르렀다.
이불을 들썩이며 화장실도 드나들고 가습기 물 떨어지면 자다가 일어나 물수건이든 물을 채우느라 부스럭거리고 목이 마르면 물 마시러 가기도. 그 옛날 엄마, 아빠가 나이 들어하던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던 거다.
‘아이, 잠도 제대로 못 자게.’
깊은 한잠 자고 중간에 깨어 들썩거리는 나의 행동을 참아주지 못하는 따닝의 행동이 당연한 건가 아무튼 나는 큰 벽이 가로막은 듯 서운함만 생각했던 거다.
벽을 탕탕 두드려 깨부술 수 없는 따닝의 자리에 얼마 안 있어 그이가 돌아와 잠자리의 주인을 찾겠지만, 그때 나는 벽이 가로 놓이지 않게 더 큰 이불 마련해서 같이 밀고 당기리라.
보이지 않는 벽도 같이 잠자리에 들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