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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Oct 16. 2021

'어이, 당신!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삽시다.'

그럼에도 설악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부부나 가족끼리 여행을 갔다 돌아올 땐 아무 일 없으면 정말 양호한 상태. 대개 빈정 상함이나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관심의 초점이 상대나 가족에게 맞춰주기보다 나에게 집중이나 맞춤으로 인한 것으로 빚어지는 오해가 아닐는지.


상대의 기분이나 미세한 감정은 아랑곳 않고 자기감정에 집중하고 취하다 보니 같이 또 같이 가 아닌 따로 또 따로 국밥이 되어버린 꼴이다.


바람이 선선해지는 가을이 오면 산을 오르고 싶다. 연중행사라 할 만큼 자주 찾지 않는 산을 찾고 싶어 산에 가자 산에 가자 후렴구처럼 흥얼거렸다. 10월 첫 주말부터 연거푸 이어졌던 2주간의 3일 연휴. 집순이긴 한데 그냥 뒹굴거리며 보내면 안 될 거 같았다.


“울산바위 가 보자.”

보채는 아이 달래듯 툭 던지는 말에 울산바위라 함은 설악산의 품에 안긴 바위가 아니던가. 설악산으로 간다는 그 자체만으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4년 전 대청봉을 올랐고, 2년 전 한라산의 백록담을 목전에 두고 센바람으로 막혀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다시 대청봉으로 잇고 싶었다.

대청봉의 대자를 꺼내기라도 하면 안 간다고 슬그머니 발 뺄까 봐 아무 말 않고 승낙을 한 것이다.


설악산 하면 대청봉이다. 초입부에 위치한 울산바위라면 흔들바위, 비선대 어드메에 있을. 중, 고등학교 수학여행 코스로 수백 명의 단체관람이 가능했던 곳. 산책 정도일 게 뻔했다.

아무리 오래전 폴짝거리며 뛰던 10대 때 수학여행으로 걸었던 곳의 기억 속도 그리 힘든 것은 없었던 듯. 등산의 이름으로 오르기 조금 약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등산을 잘하는 것과 산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건가. 난 등산을 잘하진 못하지만, 산을 정말 좋아한다.

이 맘 때쯤 늘 산을 오르고 싶은 거다. 산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그이가 큰 맘을 낸 거 같아 무조건 좋다고 했다. 설악산의 깊은 품은 아니라도 너른 품에 잠시 안기다 오는 것도 좋을 거라며 내 맘에 주문을 건 것이다. 설악산이 내뿜는 진한 향을 맡고 오는 것만도 어디랴.


출발하려 했던 날 아침부터 비가 부스르 내렸다. 중간중간 그치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다음 날은 오전엔 잠깐 흐렸다 오후부터 비가 내릴 거라 했다. 아무리 낮은 곳에 올라도 비가 온 뒤엔 미끄러울 거 같았다. 그이는 이왕 맘을 먹었고, 오후에 비가 내린다 하니 오전에 일찍 다녀오자며 통보하듯 소식을 알려왔다.


이른 새벽, 아이들과 움직이지 않으니 둘이 시간 맞춰 출발하기 단출하고 가뿐했다. 차가 막히지 않고 술술 뚫렸다. 아직 어둑하고 잠을 일찍 깼으니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내 코 고는 소리에 놀라 깨곤 했다. 다시 눈이 풀 바른 듯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대체휴일로 하루 쉬고 나흘 일한 주지만, 월화수목금토 일한 만큼 피곤했다.


운전하는 그이도 평소보다 일찍 깨어 졸리고 잠 오긴 매한가지였을 텐데. 체력이 바닥인 듯 자꾸만 까무룩 잠이 드는 나 스스로 어쩌지를 못하겠다. 조수석인 옆에서 말도 걸고 먹거리도 챙겨주지는 못할망정 코를 골고 자 버린 거다.

나도 모르게 그이는 그때부터 심사가 뒤틀렸나 보다. 이게 나중 큰 불씨가 될 줄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으니.


아침밥은 도착해서 산을 오르기 전  사 먹으려 했다. 이른 시간부터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주차장 맞은편 김밥 집은 근처도 못 가봤다. 안내요원의 지시대로 위로 위로 밀려 올라가서 차를 대야 했다. 다시 내려오기도 뭐하니 음식점이 있는 곳은 점점 멀어졌다.


아무리 산책길 같은 울산바위가 있는 곳이라 해도 왕복 3시간. 아침밥 시간 되어 밥을 못 먹었을 때 괜한 짜증을 낼 텐데... 살짝 걱정이 되긴 했다.


날이 밝아지며 설악산의 경관이 드러났다. 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두 눈이 커졌다. 조금 전의 배고픔을 위한 끼니 걱정 같은 건 한 순간에 싸악 사라져 버렸다. 나만.


울산바위를 향해 오르기 시작점에서의 후끈한 따순 바람은 뭐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사우나실에서 느끼는 훅 더운 바람.

상쾌한 바람을 콧속 가득 느끼며 오를 생각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하는 바람 온도였다. 10월 초순에 느끼는 설악산 초입에서의 따순 바람이라니. 땅 속 깊숙한 곳에 용암이라도 끓고 있는 것인가. 지구가 병이 난 건가.

이상타 요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산을 올랐다.


비가 자주 온 뒤라 계곡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가슴을 뻥 뚫어줄 듯 시원하고 명쾌했다. 온 가족이 같이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좋은 건 같이 느껴 보고 싶은 마음이건만, 아이들의 맘은 따로 놀았다.


산을 오르는 길은 상류답게 큰 바위가 많다. 오르는 길 군데군데 바위로 계단을 만들고, 빈 곳은 나무둥치를 잘라 메워놓았다. 계단 오르기가 한결 가볍고 수월했다. 그이는 계단 오르기가 난코스라고 했지만.


1시간쯤 올랐을까. 흔들바위가 드러나 보였다. 수학여행 때 기대하고 올랐던. 막상 가까이 갔을 땐 장난감 사진기에도 등장했던 그 유명한 곳의 흔들바위가 겨우 이거? 했던 기억이 난다. 이름처럼 흔들어 보면 큰 바위가 흔들리기라도 해야 할 텐데. 꿈쩍도 않는 흔들바위라니 이름값을 못한다 생각했었다.


이번엔  어른 남자 셋이서 흔들어 보았다. 미세한 움직임이 보였다. 흔들리긴 하는 모양이다. 흔들바위 앞 아주 큰 바위 밑에는 절이 있었다. 바위를 그대로 둔 채 밑 부분을 이용해 절 공간을 만들다니 놀라운 건축기술이다. 영험한 바위 기운 가득해 보였다.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따닝이랑 아드닝 원하고 바라는 일 잘 이루어지게 두 손 모으게 했다.

수학여행 땐 그 절은 없었던 거 같은데... 어릴 때라 기억에 없는 건지.


그땐 흔들바위를 오르면서 울산바위는 올려다보기만 했던 거 같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라 그런지 울산바위 곳곳에 축대를 세워 계단이 만들어졌다. 울산바위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게 잘 닦아 놓은 듯. 설악산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건 좋았다. 하지만 바위한텐 많이 미안했다. 아래서 올려다 보기만으론 부족했나.

울산바위 그대로의 보존은 아니었다.


아, 울산바위 정상으로 오를수록 바람이 세차다. 모든 걸 쓸어갈 정도로. 바람이 갑자기 훅 불 땐 다리가 휘청거렸다. 남자 어른들도 무섭다는 얘길 하는 걸 봐선 바람 위력이 얼만큼인지. 조금 전 바위에 축대를 꽂아 왜 계단을 만들어 놓았나 하는 생각을 고쳐하게 만든다. 그 계단의 난간을 붙잡지 않으면 바람에 쓸려 날아가 버릴지도 모를 거 같으니.


산 정상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이유야 가지가지.

울산바위 정상도 마찬가지였다. 무서울 만큼 세차게 바람이 불어댔다.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쏠려 사진 찍으니 우스꽝스럽다. 납작 엎드리듯 수그려 있다 바람이 깜박 조는 타임에 재빠르게 걸어 나왔다. 주변을 휘이 둘러보며 천천히 경관을 음미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산을 오를 땐 그이가 아침잠도 설치고 밥도 먹지 못한 탓에 힘들어했다. 언제나처럼 내려가는 길은 내가 힘들었다. 주르륵 죽죽 흐르는 물처럼 그이는 뒷모습도 보이지 않고 내려가 버리고. 먼저 도착해 기다려 주겠거니 오를 때 보지 못한 굴참나무들 이파리도 줍고 사진도 찍으며 내려왔다.


배는 고프고 밀고 들어오는 차들을 보자니 조바심이 났나 보다. 이 여자는 털 끝조차 보이지 않고 슬슬 짜증이 올라온 듯. 언제 내려 오냐 빨리 안 오면 버스를 타든 걸어오든 혼자 해결하라는 거다.

이건 무슨 상황인고 싶다.


우리는 지금 간만에 야외에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힐링을 하러 온 것이 아니던가. 쫓기듯 달려오고 쫓기듯 다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대체휴일이 하루 남았고, 끝난 뒤 일주일 휴가를 할 사람이. 하룻밤 묵고 가면 큰 일 날 사람처럼. 무엇이 저토록 그이를 닦달케 만들었을까.


나름 열심히 내려온 거였다. 여유를 맘껏 부리며 내려왔다면 한 나절도 모자랐지. 그이는 오히려 내게 배려도 모르는 사람이라며 몰아붙였다. 운전기사로 여기냐면서. 황당하기  그지없던 순간이다. 이렇게 쫓기듯 돌아가야 한다면 안 나오는 게 맞는 거였다.


푸른 산들과 우람한 바위들, 물소리, 바람소리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설악산에 더 머물고 싶은 맘이 죄였다면 큰 죄였으리.

오늘 밤 가족 넷이 깨어있고 집에 있는 시간, 치킨 한 마리가 배달되었다. TV에선 영국의 위드 코로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리포터 자신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며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생활한다는 거다.

"내년엔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겠어."

아이들은 기대와 설렘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일본이라도 갔다 올까? 온천 좋잖아." 그이가 거들었다. 거기까지 했더라면 좋았을 걸.

"1박 2일로."

"아이, 1박 2일이 뭐예요?  비행기 타고 제주도를 가도 1박 2일은 아니에요."

아드닝과 따닝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듯하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내가 하는 말이 그 말이라고.

동네산책을 나가도 몇 시간이다. 거의 몇 십년만에 본 울산바위! 후닥닥 내려오라 했단 말을 하려는 찰나, 눈치 빠른 그이 하는 말씀

"나 혼자 갈 건데..."

혼자 가든 둘, 셋넷이 가든 오비이락도 아니고,

'이보슈, 어이 당신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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