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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Sep 29. 2020

내가 내민 쌀밥, 어미 냥이가 갖다 놓은 쥐 밥

                                                                                                                                                                                                                  

 사무실 근처엔 매일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뒷문 열어 환기시키고 전날 내려앉은 먼지를 닦는데, 꼼짝 않고 나룰 지켜보고 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도 눈길은 주지 않았다. 

어느 날 고개를 잘못 돌리다 그만 두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애절하게 쳐다보는 게

뭔가 원하는 것이 있어 보였다. 


말이 안 통하니 해 줄 수 있는 고작 키 작은 냉장고 문만 열어 볼  뿐. 

음료수 몇 병과 바나나 한 개가 들어 있었다.

냉동실엔 각얼음 한 통이랑 개업했다고 갖다 주신 꽁꽁 언 떡 한 팩.

아무리 봐도 바나나 하나만 곧바로 먹을 수 있는 거다.

스슥 까서 듬붕듬붕 잘라 휙~던져주었다. 

가까이 가서 코를 갖다 대보더니 다른 곳으로 슬금슬금 가버린다.


 사무실 뒷건물은 생선을 손질하여 생선가시 음식점에 납품하는 공장이 있어

생선을 한 번씩 주는 모양이던데, 고양이는 바나나를 안 먹는 건가(?) 

냥이가 거기 앉아있는 걸 알면서 눈을 맞추지 않은 건 오래된 기억 때문이다.


 결혼 후, 내 뱃속에 첫째가 5개월째 꼬물꼬물 커가고 있었다. 

우리 집 빌라 2층 위에 옥상이 있어 빨래 널기 좋았다. 아침에 널고 퇴근 후, 저녁 무렵엔 걷어서 내려오곤 했다.


어느 날, 옥상에서 배불뚝이 어미 고양이를 만났다. 나도 어미도 배불뚝이 신세가 똑같았다.

고양이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나만큼 새끼 키우느라 힘들겠다 싶어 가끔씩 밥을 가져다주었다. 


배가 남산만큼 나온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고 문을 열다 말고 

"꺄~~~~~~~~~~~~~~~악!!"

뒤로 나자빠졌으면 큰 일어날 뻔했다.

비명에 가까운 소릴 듣고 벽 하나 사이에 둔 옆집 아줌마가 쫓아 나왔다.

"새댁,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밑에.... 밑에 좀....."

현관문 앞에 쥐 한 마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옆 집 아줌마가 나와서 두 손 걷어붙이고 웬 쥐가 여기 있냐면서 깨끗이 치워주셨다. 

그 후에도 두세 번 더 나를 놀라게 했다. 


그때마다 기겁하는 나를 제쳐두고 옆 집 아주머니 잘 치워주셨고. 

난 새끼들 잘 키우라고 밥을 가져다줬는데, 나를 놀라게나 하고. 미워서 생각하기 싫었다.


요즘 매일 아침 찾아오는 손님 덕분에 내 맘 구석 창고에 끼여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맛있다고 내민 쌀밥이나 어미 냥이가 맛있다고 갖다 놓은 쥐 밥이나

각자 기준에선 최고의 밥,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정말 고놈 당시 1,2층에 여러 가구 살았는데, 우리 집 앞은 어찌 알고.....

서로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했으니  미워하고 원망했던 맘이 많이 미안했다.

그때 새끼들은 잘 낳아 길렀을까?


 아침마다 쪼그리고 앉아 나를 지켜보는 이 녀석,

혹시 그 어미 고양이의 새끼의 새끼?

그렇다면 더 반가운 일 아니겠는가.


 시간이 지나고 어떤 인연이 되어 다시 만나더라도 

가슴 따스한 기억이 떠오르는.

거기다 눈물 한 방울 그렁그렁 맺힐 수 있다면

고급진 감정 정화의 시간이 아닐런지.


 오늘 아침엔 당당하게 앞 문을 통해 문 앞까지 걸어 들어오더라.

반가운데 어색한  웃음 지으며 

"안녕?"

인사는 했는데, 아직 끌어안진 못했어.

끌어안을 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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