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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Dec 08. 2021

아주 특별한 음악회

청암 박태준 회장 10주기 추모음악회

살면서 숨죽이며 자신의 존재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해야 할 때가  있다. 몸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잠재우고 맘은 한곳에 집중하며.


미리 배치해 놓은 연주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악장의 신호에 따라 화음을 맞춰보더니 무대 위의 불빛이 좀 더 조금 더 밝아진다. 박수소리만 더 크게 나면서 다른 모든 소리는 붙들어 매지 않아도 자동 소멸되는 듯 일제히 꺼졌다.


오늘의 주인공 지휘자님 등장이다. 일흔을 넘긴 연세임에도 엉거주춤 찾아볼 수 없다. 예술가의 진한 향기 풍기듯 아우라에 매료되고 압도되어 두 손은 기도하듯 모으고 앉았다.

미소년 같은 해맑은 미소를 띠며 등장해선

“금난샙니다.”

인사말에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느껴져 친근하고 정감이 다.

환영의 박수소리를 듣고 나서

“박수소리가 무겁게 느껴지는 건 철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모이신 자리라 박수소리도 무거운가 봅니다.”

이 위트 넘치는 말로 분위기를 가볍게 끌어올리셨다. 이후에 나오는 박소 소리는 모두 자신이 낼 수 있는 한 최대한 가볍고 밝게 내려는 노력을 하였다.


연주회를 준비하기 위해 한 소절 소절 맞추고 또 맞추기를 무한 반복하였을 터이니. 그 노고를 단원들께 박수소리로 사기를 북돋우고 자부심을 갖게끔 하고픈 맘임을. 총괄하시는 분은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 맘과 청중의 맘을 모두 살피며 지휘를 하실 테니까.


청암 박태준 회장 10주기 추모음악회가  잠실  롯데  콘스트홀에서  열렸다.  이 음악회의 지휘를 맡으신 분.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립하고 시의 지원하나 받지 못했을 때 제일 처음 문을 두드린 기업체가 포스코. 문전박대하지 않고 흔쾌히 도움 주셨고, 그 힘을 받아 오늘날 오케스트라가 탄탄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는. 존경하는 회장님께 감사의 맘을 담은 연주가 될 거라고 소개하셨다.


테헤란로에 있는 포스코 사옥의 1층 로비가 맘에 들어 연습장 또는 공연장으로 사용 제안을 했었다는. 로비에서 바쁜 일이 늘 벌어지는 곳이니 연습장으로 쓰긴 불편할 테고, 공연장으로 괜찮으시겠냐는 물음으로 되물었다고 하셨다.


해외에선 공연장으로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도 이용하니 층고가 높은 포스코 사옥의 로비라면 언제든 가능하다는 답변을 하셨다는 지휘자 금난새 님.


기업에선 사업과 긴밀한 관련 없는 공연장소 제안이라 흔히 안됩니다 로 잘라 말할 수 있을 텐데, 관계자 분께서 로비에서 음악회라(?) 정말 괜찮으시겠냐고 되물었을 때 지휘자님은 감명받으셨나 보다. 그리하여 성사된 회사 로비에서 무대장치를 꾸미고.

1999년 12월 31일 밤 10시 시작된 연주회.  베토벤의 합창 전곡을 연주하고 자정을 맞이하며 합창 부를 때의 그 전율. 말만 들어도 그 때 그 감격이 전해져 왔다. 2000년을 맞이하는 축제의 밤이 회사 로비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인연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추모음악회까지 흔쾌히 수락하셨을 터.




지휘자님은 어렵게 느껴지는 클래식 곡을 어린아이도 알아듣고 가까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해설로 아주 명쾌하게 들려주셨다. 퇴근하고 바로 출발했는데도 더 일찍 도착된 사람들이 많아 2층 가장자리에 앉았다. 연주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내려다 보이는 자리도 좋았다. 역시 예전부터 난 타악기 소리에 끌린다. 양 손을 벌렸다 합쳐지며 내는 심벌즈의 화려함. 한 번씩 존재감을 주는 큰 북소리. 절정으로 내닫거나 분위기 반전일 때 등장하는 드럼 소리.


유영욱 님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를 할 때는 흐느낌이 느껴질 정도의 애절함을 표현하였다.

곡 선정 신중하셨을 텐데, 지휘자님께서 평소 동물의 사육제를 작곡하신 생상을 좋아하시나 보다. 장난기 있고 개구쟁이 면도 엿보이는데, 그런 부분이 닮아서 그런가.

1부에선 생상과 라흐마니노프의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라 한 곡씩 준비했다신다. 2부에선 소프라노와 협연하고 플루트와 협연하며 박태준 회장님을 그리워하셨다.


지휘자님께서 평소 얼마나 박태준 회장님을 존경하고 그리워하시는지.

연주하는 곡 속에 연주자들과 호흡하며 한 소 절한 소절 한 맘으로 녹여내고 있는 게 전해져 전율이 일었다. 어느 곡에선 눈가가 촉촉해질 정도로 빠져 들었다.  


21년 12월을 지나고 있는 이때 예술의 향연 속에 푹 빠져 들었던 연주회. 포스코가 세계 일류 철강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 몸 담았던 사람들 속에서 창업주 박태준 회장님을 기리는  추모음악회.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이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행운의 연주회. 감사와 축복하는 삶으로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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